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여기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청춘 남녀가 있다. 그들은 각자 서로와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린다. 상대에게 아무리 헌신하고 구애해도 소용이 없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느님에게 SOS를 치는 것이라면 모를까 둘은 관심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그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요행에나 맡기듯 하느님에게 기도를 한다.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느님과 천사들은 고민한다. 잘 되는 걸 무엇으로 기준삼을지. 잘되는 게 뭘까. 키스하는 것? 속된 천사와 하느님은 혀를 사용하느냐 아니냐를 따지지만 어쨌든 키스까지 간다면 그 둘은 이루어졌다고 치기로 한다. 얼마전 읽은 장하성의 온도계의 철학을 보면 애초 기준이 없는 단지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온도라는 측정을 위해 부딪혔던 수 많은 시도롸 타협들이 있던데 애정을 재거나 두 사람의 친근함 혹은 이성친구로서의 가까운 정도를 재기 위한 방법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될까. 청춘남녀가 이성친구로 서로 가까워졌다는 걸 알 수 있는 척도로 키스를 기준한다는 발상은 그리 낯설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지만,두 사람의 찌질한 자신감 결여와 비사회적인 성격 등을 고려할 때 우리가 그들이 키스했다고 해서 저들의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우리가 연애할 때야 손을 잡기 시작한다거나 키스를 한다거나 혹은 말로 널 사랑해 라고 말한다거나 그런 애매모호함으로도 서로에게 배타적 연인으로서의 기능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요즘 청춘들은 내가 듣기에 정확히 시작선을 말로 긋고 시작하는 듯하다. 물론 잠을 자거나 한다면야 웬만하면 서로에게 헌신하기로 한 사이라는 암무직적 동의가 있다고 봐야겠지만 썸을 타네 마네 어장관리를 하네 어쩌네 하는 숱한 개념들 위로 우리 사귐 하는 확실한 동의가 필요한 시대이니 어쩌면 키스로 그것을 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한 대기업 구태의연한 경영에 머무르는 천국주식회사의 단면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책을 읽고 나니 어디선가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본 듯했는데 다른 분이 쓴 리뷰를 보니 그게 부르스 올마이티였다. 하느님이 휴가를 간다며 짐 캐리에게 기도를 처리하거나 하는 하느님의 일을 맡기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코믹 버전의 영화로 엮은 내용이었는데, 요구도 많은 인간을 제어하는 신의 입장에서 선택의 고충을 소재로 한 점에서 비슷한 류라고 할 수 있겠다. 부르스 올마이티에서는 하느님이 혼자서 분주하게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일일히 손수 돌보아야 했지만 이 소설에서는 천국위에 주식회사를 세우고 하느님른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아 혼자하던 일을 직원들에게 맡긴다. 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종교적 현상은 모두 이 천국주식회사의 각 부서에서 담당하고, CEO인 하느님은 인간들이 벌이는 프로 스포츠 경기나 조작할 뿐 별로 인간사에 애정도 관심도 없다.


소설의 주인공 크레이그는 하느님의 주식회사에서 일하는 천사로 뚱보에다가 일중독에 빠진 기적부의 직원이다. 기적부의 전직원은 중력과 같은 자연 법칙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규칙을 지키면서 인간에게 뜻밖의 기적을 선사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말이 기적이지 기적부 직원들조차 기적을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유도한 대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우연을 정교하게 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이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사이 크레이그는 아주 자잘한 기적들을 일어나게 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의 최근 성과는 가령 이런 것들이다. 더위에 지친 소년 소년에게 차가운 물벼락을 선사하기 위해 거리의 소화전을 설짝 터뜨린다. 궁핍한 한 인간의 낡은 자켓 주머니에 뭉칫돈을 발견하게 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도록 암시적 힌트를 곳곳에 나타나게 한다 등등.


두 인간을 정확히 같은 시간에 정확히 같은 장소로 모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 가지의 변수를 조정해야 했다. 그건 창의성, 정확한 타이밍, 구역질 나올 정도의 방대한 조사량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세부 사항 중 어느 하나라도 망치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됐다. -p184-




한편 기적부보다 하급 부서인 기도수취부에서는 계약직 사원인 일라이자가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한다. 그녀 또한 남다른 사명감으로 기도를 7단계 분류체계를 고안해 내고 중복된 기도들을 함께 묶고 주요 기도들을 선별해서 올리는 등 열심히 일한 댓가로 기적부 정직원으로 승진하고 크레이그와 함께 일하게 된다. 자신이 이제껏 해왔던 기도 분류 작업이 사실상 하느님 앞에서는 쓰레기가 되어버린다는 실상을 알데 된 일라이자는 당돌하게도 사실을 따지러 하느님을 만나러갔다가 일을 오히려 그르친다. 전지즌능하지도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쫓던 CEO는 가뜩이나 골치아픈 지구를 폭파해버리고 천국주식회사를 정리해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폭파 직전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기도부에서 올라온 기도 중 한 건을 한 달 내로 이루게 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그들이 고른 기도는 서로 좋아하는 모태솔로 남녀 둘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위에서 얘기한 샘과 로라가 두 천사들에게 지구를 구하기 위한 미션 대상으로 포착하게 된 전말이다. 서로 좋아하는데 왜 천사의 힘이 필요할까. 서로 좋아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상대방에게 말 한마디 걸기도 어려운 멍청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끌리는 상대에게 작업을 거는 대신 하루 종일 집무실에 앉아 골프채나 휘둘러대는 무능하고 한심한 하느님에게 기도로 도움을 청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들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는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건 상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서로를 만나게 해줘도 서로에게 자연스레 다가가서 연인이 될 수 있도록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타고난 루저에 내세울 것 없는 외모와 변변찮은 직업 등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스스로를 방어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천사가 서로 끌리는 두 인간을 맺어주는 미션이 시작되면서 두 인간은 천사들에 의해 관찰자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같은 전개를 기대했지만 두 주인공이 준수한 외모와 개성 만점인 캐릭터의 조합이라는 공식에서 한참 비껴가 있다. 우리는 로맨특 코미디들 역시 허상이라는 걸 안다. 찌질하기도 하고 멍청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스스로의 매력을 상대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한다는 허상을 관객과 독자들에게 심어준다. 그러나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에서는 조금도 무엇이 기대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일지라도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가 있고 그 끌림이 당치 않다는 자괴감에 빠질만큼 내게 처한 현실과 나란 인간이 가진 것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삶이 고단하고 찌질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돌아오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 한 자락을 꿈꿀 수 있기에 인간인건지도 모른다.


SNL 작가라는 저자의 경력이 말해주듯 가벼운 코믹 풍자극의 느낌이 강한 이 소설. 쉽고 빠르게 읽힌다. 가볍기에 신을 믿는 독자들도 별 저항없이 웃으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연을 코딩하는 묘사가 흘미로웠고 인간과 다름없는 모습의 천사와 하느님에 대한 세부 묘사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애초 천국을 주식회사라로 묘사했다는 설정에서 개연성이라고 해야 하나 설득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누굴 위한 기업인지, 기업이라면 고객은 누구이고 이윤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천국주식회사를 정리하고 레스토랑을 경영하겠다는 데 고객은 누가 되고 또 경쟁상대는 누구인지 하는 체계적 배경을 단단히 납득하게끔 만들어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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