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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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는 것은 잘 사는 것

잭 니클라우스가 1964년 유에스 오픈 대회에서 평소의 감각을 잃고 강력한 우승 후보에서 23위의 초라한 성적으로 돌아온 후 원인을 찾지 못하고 계속 슬럼프에 빠질뻔한 위기를 구해준 건 자기 자신의 꿈이었다. 믿어지지 않게도 꿈속에서 완벽하게 쳐낸 스윙 포지션이 최근 슬럼프에 빠진 이후에 했던 자세와 조금 다르다는 걸 잠에서 깬 순간 알아낸 것이다. 잭 니클라우스는 클럽 잡는 방식의 미세한 차이가 문제였던 것을 꿈속에서 성공한 스윙을 통해 알아내고는 한밤중에 일어나 곧바로 골프 코스로 갔고 꿈속의 스윙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다음번 대화에서 준우승함으롯서 재기에 성공했다. 화학자 케쿨러는 꿈속에서 뱀이 스스로의 꼬리를 잡아 삼키는 모습을 보고 벤젠 분자의 육각형 구조 모형을 생각해냈다.  그 발견으로 케쿨러는 귀족 작위까지 받았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떠올릴만큼 상업적 성공을 거둔 트와일라잇 시리즈 역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스테페니 마이어의 꿈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녀의 꿈속에서, 아름다운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뱀파이어는 소녀의 피를 빨아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트와일라이트 시리즈를 썼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한국의 스테파니 마이어가 될뻔했는데. 간단히 적으면 이렇다. 어느날 꿈속에서 미래의 어떤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가 전개되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밤에 일어나 스토리를 적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sf 소설을 쓰면 J.K 롤링과도 같은 세계적인 대성공을 이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밤중에 깨어 불을 켜고 연필과 종이를 찾아들지 않고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스마트폰이 이룩한 사소한 경이이다. 아직도 내가 스테페니 마이어가 되지 못한건, 몇 페이지를 적다가  스토리를 채 적기도 전에 다시 잠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잠에 들면서 남겨진 스토리는 낮에 계속 써야지 생각했는데 그 다음 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초고가 아직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해리포터 시리즈에 버금가는 흥미진진한 전개지만, 그 다음 스토리는 나도 궁금할 뿐. 역시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실제로 도움이 된 적이 있다. 내 직업이 컴퓨터로 프로그램이라는 걸 하(했)는데, 수많은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 중,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사흘 낮과 밤을 모니터만 들여다봐도 안풀릴 때가 있다. 밤낮으로 생각한다는 건 실제로 꿈속에서도 그 생각을 한다는 거다. 물론 그럴 의도는 추호도 없다. 낮에 일하고 나면 밤엔 달콤하고 로맨틱한 꿈을 꾸고 싶지 누가 꿈에서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꿈을 꾸고 싶을까. 하지만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는 실제로 꿈속에서도 모니터와 늘 씨름하고 있고, 깨어났을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나 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위에 적은 SF 소설의 경우처럼 농담처럼 말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게 정상적인 뇌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꿈이 현실의 문제(Problem)를 해결하는 이 문제(Issue)를 연구하기 위해 1960년대 심리학자들이 했던 창조성의 정의를 살펴보면, '연합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해 특정 요구 조건을 충족 시키거나 어떤 면에서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크릭과 미치슨의 이론에 따르면 뇌가 버릴 것과 저장할 것을 선별하는 작업 즉, 마음의 서류함을 정리하는 작업은 램수면 동안에 일어나는 데 이것은 꿈의 무작의성을 설명한다. 다시 내 식대로 말해보면, 인간의 창조성이라는 것은 뇌 속에 축적되어 있는 수많은 경험과 지식의 꼭지점들을 서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조합하는 과정인데, 잠이 중요한 이유는 잠자는 동안 뇌는 하루 종일 작업하느라 어질러진 책상과 책상 서랍을 정리하듯 오래된 정보들과 새로운 정보들을 꺼집어 내고 분류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저장할 것은 저장하고 하는 정리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꿈은 무의식속에 묻혀 있던 아주 오래된 기억들, 생각지도 못했던 욕망들을 표출하는 것이고, 또한 하루 종일 이루고자 간절히 원했던 어떤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식대로 해석하면 학생들에게 잠을 4시간만 자고 죽어라고 공부하라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의 갈래를 합치고 조합하고 하면서 창의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여러가지 실험에서 보면, 어떤 신체적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나 일을 배울 때에도 잠이 가져오는 효과가 컸다. 단순 암기가 아닌 여러 분야의 지식과 통찰을 토대로 풀어야 하는 시험(수능이 그런 것을 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을 잘 보려면 잘 자야 한다. 잠을 24시간만 안재워도 전쟁을 하는 군인들은 아군을 적군으로 알고, 파일러트는 수백명의 승객과 함께 엉뚱한 곳에 이륙을 시도한다. 미국에서는 피로관리라는 분야가 이미 인력관리 차원에서 여러 산업에 필수적으로 도입되었고 생산성에 있어서도 큰 효과를 보았다고 전한다. 어떤 문제가 안풀리면 새로운 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이마옆앞겉껍질(전전두엽피질)이 그것을 관리하고 잠은 이 부분의 활성화를 돕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잠을 잔 것과 같은 효과.

졸피뎀이라는 수면제가 있다. 부작용이 없어서 의사들도 곧잘 처방해주는 이 약은 약을 복용한 이후 잠이 들었다가 깨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불면증이 몇일간 계속될 경우 이 약을 한 알 먹으라고 처방받았지만, 너무 조금밖에 안주기에 반알만 먹어도 효과가 있기에 1/4알을 먹으면서도 몇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불면증 기간동안 매우 큰 효과를 본다. 그런데 내가 이 약의 효과에 대해 맹신한 한 가지 이유는 내가 밤에 잠을 잘 잤건 잘 못잤건 머리 속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채 완전 백지 상태이기 때문에 그 텅빈 머리가 가진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고 믿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약의 위약 대비 효과는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20분 단축시켜줄 뿐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잠을 더 잔 시간이라고는 고작 11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긴 시간동안 자신이 얼마나 잠을 자기 위해 애썼고 깨어서 뭘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잠잤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약효를 맹신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어처구니없음의 절정인데, 의사의 말이 더 가관이다. 대부분의 수면과학 전문 의사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잠을 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가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게 맞다. 내가 새벽이 가까와오는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다면 기억이건 잠이건 그 잠못드는 힘겨운 시간을 여전히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것이고 그약을 계속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을 한 것 같은 인생의 나쁜 기억들도 그렇게 지울 수 있으면 좋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어차피 싸울 땐 흠뻑 취한 경우이고 기억도 대체로 지워져있기 때문에 뭘했는지는 잘 모르므로..


잠과, 꿈, 몽유병, 불면증과 그 치료 방법 등 온갖 종류의 잠에 대한 지식이 총망라된 책이다. 기자가 썼기에 잠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과 이야기들이 가득하고, 쉽게 잘 읽힌다. 잠이라는 주제가 한정된 것 같지만 사실상 파고 들어가면 인지과학, 신경과학, 뇌과학, 수면과학, 행동과학, 불면증, 기면증, 수면치료,수면 보조 장비 등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는 만큼 그 깊이가 깊지는 않다. 뇌과학이나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전혀 필요치 않은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쓰인 책이라는 뜻이다. 의료 장비 회사의 별로 궁금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인물 묘사나 매출 같은 얘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흥미면에서, 재미면에서 기대에 부흥하는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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