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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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책 제목 중에서 이렇게나 책 내용을 잘 설명하면서도 명쾌하고 센스있고 진부하지 않은 책 제목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번역을 한 것인지 아니면 직접 한국 사람이 쓴 것인지 모르고 읽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번역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명료한 문체도 특징이다. 쟝르로 봤을 때, 내게 경제 서적은  경제 정치를 같이 묶어서 답없는 탁상공론이라는 부류로 분류해 놓고 가끔 뭐 그런 게 있나부다 하는 부류의 회피 대상 서적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읽을만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쓰여진 책이었다.  



<빚으로 지은집>은 미국 경제가 2000년부터 2006년 사이에 역사상 유례없는 부동산 경기의 호황을 누리면서 소비 확대, 대출확대로 이어지고 그 이후의 거품붕괴로 인한 대침체기를 겪은 현상을 가계대출의 측면에서 통계적으로 분석해, 경제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그 문제들을 고쳐나갈 수 있는지를 아주 친절하고 분석적으로 쓴 책이다. 원제는 <House of Dedt)이고 부제는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인것처럼, 왜 가계 부채가 위험한지에 대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문체 자체가 읽기 쉽게 잘 쓰여졌고(번역체 냄새도 전혀 안나고), 기초적인 용어에 있어서도 본문 내에 설명을 적어 놓고, 영문과 번역을 함께 표기하기 때문에 나같이 문외한인 사람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내 식대로 더 쉽게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거다. 우선 주목할 내용은 현재와 같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 내에서 주택시장의 붕괴는 그 피해를 가장 가난한 층에게 가장 먼저 전가시킨다는 거다.  주택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면 그 하락에 따른 손해는 전적으로 대출자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금융 시스템의 신용 등급이 높은 저축자들은 선순위가 되어 집갑 폭락에 대한 손해를 거의 받지 않지만, 돈이 없이 주택을 구매했던 대출자들은 그동안 몇년간 빚을 갚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깡통주택 소유자나 마이너스 상태가 되어 주저 앉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뭐 대충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IMF를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낮은 대출 금리를 끼고 집을 산 사람들이 금리가 높아지고 집값이 하락하자 전재산을 잃게 되는 일들이 주위에서 속출했었다.  IMF 시절에도 돈이 많은 사람들은 높은 금리를 이용해서 더 많은 돈을 벌었고 하락한 주택을 구매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대 경제에서는 자주 시스템이 붕괴하고 대침체기니 침체기니 하는 기간을 자주 겪게 되는데, 그 원인을 이 책에서는 대출의 증가로 명료하게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심각한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의 급증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공황때와 대침체 때에도 그랬고, 지난 10년간 유럽의 최악의 경제 위축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빚을  모든 경제 위기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여러 나라들에서 발생했던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들에 대한 객관적 자료들을 분석해서 매우 명쾌하게 설명한다.

보험이 위험을 분산시킨다면 빚은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위험을 증폭시킨다. 한 나라의 경제를 위기로 이끄는 주범인 부채는 한사람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소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재앙적인 피패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가장 가난한,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우리 금융 시스템에서는 채무자가 단순히 금융권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우리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고 일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주택담보 증권 및 채권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2007년에 발생한 주택시장 버블 붕괴 현상의 이면에는 그런 다양한 종류의 채권들이 존재했다. 당연히 주택 담보 대출을 받으려면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선별하는 작업이 철저하게 선행되어야 했는데 어느 한 순간부터 이러한 자정과정이 무너지고 자들이 채무 불이행이 확실한 사람들에게까지 모기지 상품을 팔고 있었다. 주택 시장의 과열을 부축이는 주택 증권들의 이면에는 그 이전 1997년 우리나라에게도 몰아닥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위기와 그것을 낳은 1990년대초에 광풍처럼휩쓸고간 주택시장의 버블과 붕괴를 통한 달러화의 급격한 유입이 있었고 경제위기 기간동안 썰물처럼 급격히 빠져나가던 외국 투자자들로 인해 우루루 도미노처럼 도산해가던 자국 경베 시스템들을 지켜보던 동아시아국가들이 경제 위기를 보낸 후 배운 값비싼 수업 달러 비축이라는 것을 실천한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위기를 겪은 아시아국가들이 달러들을 사들이자 미국은 사상 유례없는 현금이 흘러들어왔고 그것은 주택담보대출 상품에 투자처를 확보한 것이다.  은행들은 혈안이되어 모기지를 팔고 있었고 주택가격은 승승장구했으며 순자산의 증가는 더큰 빚과 더 큰 소비를 불러왔다.


거품이 꺼지자  빚은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위험을 전가시키고 자산 가격을 떨어뜨리고 소비 감소를 확대시킴으로써 대재앙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위험으로 작용했다. 이 때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직접 빚을 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무언가가 불공평하다고 느껴지고 웬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한다. 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 전체에 만연된 개개인의 빚은 개인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과 또 한가지 그러한 빚들은 소비를 감소시키고 실업을 증가시키고 경제 위기를 가속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은행과 채권자들에게도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임분담모기지와 같은 구체적인 모기지 상품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이 책은 단순히 날로 심화되어가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의 이면에 있는 경제 체계를 이해하고 분개하라고 있는 책이 아니라, 그 대안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이고 약간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고 해야 하지만, 국내 현실을 생각해보면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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