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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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그리고 공자 이렇게 우리가 4대 성인이라 배운 성현들은 제자들과 떼로 떠돌아 다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성현들의 말씀은 주로 제자들의 붓을 통해 이천년, 이천오백년동안 시간과 공간을 무한 확장하며 민족과 나라에서 대륙으로, 세기에서 다음 세기 또 그 다음 세기로 퍼지며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직접 스스로가 신의 아들임을 밝히고, 나를 따르라 내가 빛이요 하늘이요 진리다 라는 종교적 메시지를 퍼뜨렸지만 순수하게 내면의 탐구를 위해 도시의 시장통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이사람 저사람 길을 막고 서서 산파술이라는 말고문 대화술로 삶의 진실을 깨우치도록 이끈 경우도 있다. 


 




 


공자는 기원전 500여년전의 인물로 역대 성인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 전 인물이지만, 짧은 내 지식으로 판단컨대 현대인의 사회 생활에 필요한 처세를 가장 실용적으로 접근한 인물이다. 우리 조선의 600년 통치의 정신적 대들보가 되어 온 유교와 유학이 지난 한세기 동안, 무차별적인 서구 문물의 공세에 묻혀,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형식만을 남긴 채 서서히 붕괴했다면 그 파괴란 우리 조상이 선택적으로 강요했던 유학의 형식 뿐일 것이다. 겉치례와 허례. 그것은 없어져도 좋다. 설령 거기에 전통이라는 이름이 딱지 처럼 붙어 있더라도 말이다. 거기에 무임승차한 숱한 제약과 독버섯처럼 자라고 퍼져 생활과 문화를 장악했던 지배층의 위선이 여성차별과 신분제 강화의 수단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던 파렴치한 역사의 면모를 우리는 보았다. 다시는, 절대로 유교적 전통이 어떤 부류의 인간에게는 그것 자체로 굴레와 속박일 뿐인 그 회환의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형식이 죽어간 그것은 이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어느 종교든 어느 학문이든 인류 문명을 전 과정을 통해 그 숱한 변화와 파괴와 학살과 혁명을 뚫고 살아남은 것이라면  그것은 위대하다.  공자가 존중했던 삶의 형식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예의와 법도라는 낡은 생활 방식으로 한 나라 모든 인간의 생활 방식을 철저하게 구속하고 지배했지만  망국과 재건을 통해 들여온 서구의 합리적 방식의 삶이 정신까지 만족시킨 것은 아니다.  이 선택이 가져온 물질적 삶은 곤궁한 영혼이라는 부산물을 낳으면서 어쩌면 그 때 그 제약적인 생활보다도 더욱 피폐할 정신적 삶에 현대인은 나날이 지쳐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기 이 틈새로, 2500년간 이어온  죽지 않은 메시지들이 현대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생활에 맞추어 찍은 듯 부활하고 있다.  왜?. 물질은 종교가 될 수 없지만 가르침과 깨달음은 비록 학문과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 자체로 종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르침이 종교가 되는 법칙은 간단하다. 신뢰와 믿음의 댓가로 풍요로운 정신 활동을 가져다 주는 것, 그래서 따르고 믿어 진리가 되는 것. 그게 종교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번잡한 크고 작은 수많은 선택의 순간순간들을 만난다. 어쩌면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이 없는 삶은 이미 삶이 아니라 죽음이다. 아무리 육체가 제한된 공간 제한된 사람들 속에 갇혀 있다고 해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의식적 무의식적 선택 앞에 직면하고 때로 두려워한다. 하물며 요즘 젊은이들은 결정장애의 한 형태인 햄릿증후군이라는 신조어적 질병을 만들어냈다. 성장 동력을 잃고 노쇠해진 탐욕스런 자본주의는 그러한 정신적 피폐 현상마저도 시장으로 보고 호시 탐탐 기회를 노린다. 결정을 대신해주고, 헬리콥터처럼 그들을 떠나지 않는 엄마를 대신할 의존형 인간을 위한 서비스 산업 만들어내기까지하니 말이다. 우리는 이미 물질적 최전방의 삶, 내 정신적 문제까지도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사회로 내몰려 있다.

 

만일 이 때 삶의 크고 작은  결정에 기준삼을 수 있는 정신적 대들보가 있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직면한 그 어떤 선택도 죄와 기도와 용서라는 번거로운 전략에 더 이상은 기댈 필요가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꿰뚫을 수 있다면 정신적 삶은 실용적 선택과 만난다. 학문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고 믿음이 행동이 되지만 종교적 예식을 버릴 때 우리는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종교와 학문이 일치되는 접점이다. 인문학과 자기계발서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삶의 무수한 선택 앞에서 선택의 기준을 심어주는 책, 공자님 말씀에서 허례는 빼고 처세와 실용적 선택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책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를 본질로 삼고 예로써 행하고 겸손함으로써 말하고 신의로써 이룬다. 그래야 군자다. 논어 위령공(278쪽)

 

맞는 말이다.  겸손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겸손하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재주가 많고 덕이 많은데도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겸손이다. 아무나 겸손해질 수 없다. 평범해 보이는 말 속에 설령 진리가 있다 한들 그것을 어떻게 알아차릴까.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진보하지만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찾는 사람은 퇴보한다. 이 얼마나 간단한 사실인가. 이 말을 체화시켜 내가 입을 열 때마다, 내가 행동을 할 때마다 자잘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면 조금씩 나는 더 진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자공의 뛰어난 언변과 학식이 선생과 동료들에게 신뢰를 받지만 결국 그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되는 스토리가 소개되어 있다.  그 이유는, 출중한만큼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단점을 지적하는 방법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점은 동시에 가장 큰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뛰어난 언변이 무기라면, 겸손하지 않는 한, 그 날카로운 언변의 칼끝이 향하는 곳은 결국 자기 자신임을 인식할 때 그의 사회 생활은 장기적으로 신뢰와 존중 속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책을 읽으며 서양의 토론식 수업인 하크네스 테이블이 연상되었다. 공자는 말씀하신다. "배웠으되 생각하지 않으면 허황된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독선에 빠진다... 문제를 보고 근본을 생각하면 작은면을 보고도 전체를 꿰뚫을 수 있고 현상을 보고도 본질을 알아볼 수 있다(87쪽)"라고. 그러나 혼자서는 부단히 노력한다 해도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생각에 미치는 데 한계가 있다. 공자는 A=B이다 라고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질문하고 대답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그 대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다시 질문하고. 중간 중간 부연 설명만 할뿐.  제자들의 깨달음은 토론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마음의 양식도 되지만 결국은 실용적인 처세에 도움이 된다.


이 책이 공자의 애제자였던 자공의 관점에서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진 글이라 어느 정도의 허구도 가미되었겠지만 공자는 다른 성현들과는 달리 노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 권력의 실세들과 교류하며 통치 철학을 결정하고 조언하였다. 권력자들의 경계와 권력싸움에 자주 밀려나 오나라 제나라 등을 떠돌며 거친 광야의 국경선에서 초조한 기다림을 견뎌야 했던 시련도 있었고, 기용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때로 자괴감에 빠졌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그는 종교적 지도자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삶 속에서 배우고 가르치던 현실 속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인성과 도덕과 통찰력이 타고났으므로 그에게는 항상 어디를 가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다. 비록 그가 뜻을 품었던 현실 정치에서 배제되고 고립된 삶속에서 방황하는 날들이 있었지만, 그의 지혜는 국경을 넘나들며 제자들을 통해 퍼졌고, 세기를 넘고 넘어 현재 디지탈 시대 속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 우리의 안방에서도 활자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공자의 철학은 철저히 현실적이고 융통성이 있고 멀리 내다보기에, 생각과 배움이 허황과 독선에 머물지 않고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며 갈팡질팡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길 잃은 마음 속 지평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책 자공의 입을 통해 재현된 공자와 그 제자들이 몰려 다니며 나눈 깊은 대화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들은 복잡한 현실 속에서 길을 잃고 번민할 때 믿고 의지하는 지평이 되어, 불안하게 흔들리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 나를 다잡아주는 기준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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