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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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의 대학생이 이런 스케일의 조선을 무대로 한 소설을 써냈다는 사실에 조금은 무력해진다. 이 나이 먹도록 뭘했나 그렇다고 되돌아가 다시 살 수도 없는 일이고. 상상력의 차원을 따지면야 젊고 신선한 감각에 기댈 수 있는 잇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 상상이 하나의 소설로서의 긴 호흡을 가진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 넣는 디테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디테일은 전적으로 상상에서만 나올 수는 없다. 한 번도 보지 않은 것 전혀 지식이 없는 곳에서 나올 수 있는 건 고작 감정의 정도 변화 뿐이므로 그걸로 긴 에세이는 쓸 수 있을 지언정 소설을 쓰기는 어렵다. 


조향사라는 직업이 실제로 조선에 존재했다는 기록은 없는 것 같다. 개항 이후에도 한국에 조향사가 생긴 지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대형 화장품 회사 연구소의 한 부서 정도나 될까. 그런데 이 젊은 친구는 향을 매개로 향만드는 일을 추구하는 여자의 사랑을 창조해냈다. 문학만 공부했더라도 아직 장편 한 권을 마무리할 만한 소양을 갖추기 어려울 나이에 그 책을 끌고 가는 매개를 향으로 할 만큼의 향에 대한 지식을 쌓고 빈 곳은 상상력으로 메웠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할 뿐 아니라 존경스럽다.


로맨스 소설을 읽을 나이가 아니라서 후루룩 만화책 읽듯 읽어버릴 요량으로 주말 차에 가지고 다니다가 어제 저녁 단숨에 읽었다. 퍼플 로맨스 소설상 공모작 대상이라기에 달달하고 닭살돋는 허황된 현실성 없는 사랑 얘기에 한 번 빠져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를 조금 엇나갔다. 대학생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다소 평이하지만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안정적인 문체, 감정의 절제, 전통 혹은 자연의 향과 약제에 대한 전문지식,역사 소설에 필요한 자잘한 디테일과 어휘들.. 아마도 심사 과정에서는 그런 것들이 높이 평가되지 않았나 싶다.


고전이지만 문체와 대화체는 완전하 현대어로 되어 있고 주인공의 사고 방식과 말과 행동도 당시 배경이 되는 사뢰에 만연되어 있던 유교적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오래전에 이영애가 주인공을 맡았던 티브이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처럼 사랑을 내던지고 스스로 궁에 들어와 차근차근 조향사의 길을 걷는 독립적이고 당찬 여성이다. 신분이 높은 양반집 규수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대군에게 뜨거운 목욕물을 끼앉고 쫒아가 놀다가 도포까지 빼앗아가기도 한다. 이런 설정들은 우리가 그동안 티브이에서 보았던 유교적 관습과 너무 동떨어져 조금 황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꺼안고 입맞추고 집앞으로 찾으러 가 서성이는 모습은 사랑에 있어서는 수동적으로만 여성을 그려내던 기존 사극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라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먹어 순수한 마음이 사라져서 그런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녀의 남자 단과는 어릴 때부터 정혼한 사이이고 단은 그녀와 함께 살기 위해 그녀를 데려와 초가 삼간에 살림을 차리고 누이와 셋이서 살아가는데 함께 잠을 자지 않는 것 같다. 뽀뽀만 해도 부끄러워하며 피한다. 스무살이나 된 여자와 그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가 서로 사랑하고 한 방을 쓰고  부모도 없는데  둘이 잠자리를 같이 안한다?  헐~~~ 그럴리가.  그때 조선이라면 스무살이면 과년했고 그보다 남자가 나이가 많다면 상투를 틀지 않고서는 어디 나가 남자 대접도 받기 어려웠던 시대인데 둘이 왜 서로를 힘들어했는지 그 부분이 이해불가의 영역이다. 뭐 그렇다고 정혼까지 한 상태에서 그리 알콩달콩 서로를 보담고 아끼며 살면서도 소위 요즘말로 케미가 없어서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병자 호란에 청으로 끌려가 향을 더 잘 배우고  봉림대군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며 극적 진전이 계속되다가 끝에 가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끌어들인다. 그동안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비밀들이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로미오와 줄리엣적인 죽었다 살았다 죽은척 살은척 시체 바꿔치기 신공 단순한 사건으로 인한 오해 등 각종 진부한 방법의 미스테리적 사건들을 통해 사랑의 운명이 길을 찾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야기에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다보니 갑작스레 막장 코드로 정신없이 극을 몰아 막을 내리게 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그냥 아쉽게 끝난 사랑이었더라도 그 향을 간직하는 방법으로 잔잔한 톤으로 서정적 마무리를 했더라면 조금 더 격조 높은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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