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의 딸 2 - 로마의 여인들
프랑수아즈 샹데르나고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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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신분제 사회에서 결혼은 귀족의 결속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오늘날의 재벌가가 그러하듯이. 그러니 사랑 따위, 맹세 따위 개나 줘버리면 그만이다. 그들은 거부하지 않았다. 소녀도 소년도 자기에게 배당된 짝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사랑은 사랑대로 했다. 누가 숙청당하거나, 죽거나, 권력의 재편성이 필요할 때 그들의 결혼도 그렇게 간단히 재편성되었다. 이혼이 쉬운 만큼, 사생아와 의붓자식들과 의붓형제들과 의붓 형제의 형제들과 마치 레고 블럭처럼 이리 저리 원하는 모양의 권력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마음대로 붙였다 떼어졌다 하며 원하는 대로 해체와 조합을 반복했다. 원년이 2-~30년 앞으로 찾아올 고대 로마시대때의 일이다.


책의 1/5 가량은 읽기가 힘들었다. 먼저 읽은 리뷰어들의 리뷰를 통해 수많은 등장인물과 긴 이름과 긴 지명이 가독성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듣고 각오를 했고, 그래서 처음부터 가계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매번 장면이 바뀔 때마다 가계도의 화살표를 이리 저리 바꾸고 x 표를 치고 이름을 지우고 새 이름을 새겨넣고... 그러면서 차차 누가 중요한 인물이고 누가 주변인물이고, 이 책의 흐름이 대략 어떤 식으로 계속된 것인지가 안개 걷히듯 서서히 걷혀져간다. 그려나가기 시작한 가계도가 점점 익숙해져서 대략 찾지 않아도 누가 누구의 딸이고 누구와 결혼했다가 누구와 이혼해서 그 딸이 누구랑 또 결혼했다가 다시 누구랑 이혼했는지를 일일히 대조해보지 않더라도 대략 알 수 있을 때쯤 되니 책 <클레오파트라의 딸 2편>이 이 끝났다. 줄거리를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빠간색 박스에 들어있는 인물은 여자 성인이고, 파란색 박스에 들어있는 인물은 남자 성인이고 녹색 박스에 들어있는 인물은 팔라티노 언덕의 옥타비아의 집에서 와글와글 함께 모여살고 있는 형제, 자매, 의붓 형제, 사돈의 형제, 원수의 딸, 원수의 아들, 포로의 자식들이다. 그들이 소년 소녀였을 때부터 시작하여 모두 결혼해 떠나고 돌아갈 곳도, 미래도 없는 셀레나만 남게될 때까지의 막장 드라마같은 짝짓기 놀이다. 악티움 전투를 계기로 삼두정치를 끝장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옥타비우스 아우구스트의 시대에 그의 누이 옥타비아가 취미로 수집하여 기르는 아이들이다. 그녀의 취미는 아이 수집이었다. 늙은 마르쿨르스와의 첫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세 명의 자기 자식과, 안토니우스와의 두번째 결혼에서 낳은 두 명의 딸, 그 안토니우스가 첫번째 결혼에서 낳아 데려온 아들, 그 안토니오가 이번엔 자신을 배신하고 이집트의 황제 클레오파트라에게서 낳아온 셀레나와 그녀의 쌍둥이 형제 알렉산드로스, 이렇게 자신과 자신의 X배우자들의 모든 핏줄을 거두고, 황제인 남동생과 남동생의 부인이 전남편에게서 낳아온 자식까지 모두 맡아서 길렀을 뿐 아니라, 정복한 국가의 왕자들을 포로로 데려와 길렀다. 


이 책은 클레오파트라와 가이우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우스 아우구스트에게 악티움 전투에서 패한 후,  둘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명의 딸 셀레나를 당시 사회상을 고증을 통해 재현한 역사 소설이다. 역사 소설에 얼마만큼의 허구가 들어갈까?  역사가 많아지면 소설적 상상력의 결핍이 문학적 가치를 훼손시키지만, 소설적 상상력이 고증의 범위를 침범하면 역사를 왜곡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들은 선택한다. 아주 작은 단서만으로 마음껏 시대적 판타지를 엮어갈 수 있는,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은 영웅의 주변에 맴돌다 스러져간 주변인을. 셀레나는 고대 로마 판타지 서사의 끝판왕, 클레오파트라의 딸이다. 호화로운 환경에서 왕족으로 보호받던 셀레나가 하루 아침, 참혹한 가족의 몰살을 온몸으로 경험한 후, 홀로 적국의 포로가 되어 남겨진다는 것은,  그리고 그 소녀가 마침내 살아남았다는 한 줄의 역사가 작가 프랑수아주 상데르나고르에게 준 영감은 열병과도 같았던 모양이다.


작가는 소설에 직접 설명자로서, 화자로서, 그리고 소설가로서 등장하여 개입한다. 독자들에게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를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따로 챕터로 뽑아, 남겨진 문헌의 기록을 되짚으며 기록 속에서의 그녀, 그녀들, 그녀들의 남자들, 그 남자들의 여자들에 대해 고증을 곁들인다. 역사소설로서의 새로운 시도로 볼 수도 있겠다. 역사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절실하게 드는 궁금증들, 정말 이랬을까? 이 때의 풍경이, 이 때의 사람과의 관계가, 이 때의 문화가, 이 때의 풍습이 정말 이랬을까? 하는 궁금증들을 시원하게 풀어주지만, 한편으로는 기껏 감정이입했던 소설의 맥이 툭하면 자꾸 끊긴다. , 이것이 소설이다. 이것이 허구다. 작가는 지금 허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역사소설 특유의 드라마틱하고 과장된 반전 없이, 조금은 잔잔하게 진행되고, 더디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작가는 살아남은 셀레나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증오와 차단으로 방어하는 당돌한 소녀에서 어느덧 성인이 되도록 결국 모진 마음의 상처를 이기고 살아남은, 지혜로운 여성으로 성장시킨다. 너무 오랫동안 읽는 바람에, 다른 책들을 읽지 못했다. 진도가 빠르게 나가지 못했던 이유는 고대 로마에 대한 역사 지식이 짧아, 매번 궁금증이 일었고, 소설의 배경 속에 언급된 역사적 사실들과 문화적 풍습이나 의상, 주거 등에 대한 자료를 찾아다니느라 책읽기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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