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3
이광연 지음 / 한국문학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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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와 각종 결제 시스템이 요즘처럼 결제의 주류 수단이 되기 전, 현금출납기나 계산기가 일반화 되기 도 한참 전, 그러니까 요즘 세대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 쯤 되는 아날로그 시대엔 가게나, 식당 어디에서든 현금이 쓰였다. 현금 유통 경제 시스템에서 빠른 암산을 통한 산술 계산은 필수적이다. 그 땐, 작은 동전들도 책상 한구석의 빈 병에서 모여 잠자는 대신 하루에도 전국을 몇바퀴를 돌며, 활발하게 이사람 저사람의 손으로 헤아릴 수 없는 거리를 이동하였다. 그 시절엔, 가게든, 시장이든 아주 작은 자리수의 정교한 단위까지 덧셈과  뺄셈 나눗셈 같은 암산을 순식간 마치고 거스름돈을 건네주는 빠른 계산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장사꾼들에게까지 일반적으로 행해졌었다.  


수학도 하나의 고유 언어이다. 음악적 언어가 오선지 위를 날아다니는 음표들과 음악 기호이듯, 수학에 쓰이는 기호와 수식은 세계 공통의 언어다.  아기들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의 요구를 엄마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표정만 보아도, 아이의 요구를 알 수 있다지만, 아기들의 요구가 오로지 먹고 싸고 안기고 싶은 단순한 종류일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의 뇌가 자라고, 욕망이 커질수록 아이들의 욕구는 언어를 통해 전달된다. 아이가 그 언어적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언어의 습득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불과 이십여년 전만 해도 매표소나 가게, 시장 등 어느 곳에서든 매일 되풀이하여 연습하는 초등 1학년 아이들의 학교 시험보다 훨씬 빠른 계산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기들의 언어 습득 시스템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계산을 제대로 빠르게 해야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장사를 하는 분들에게는 비록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노인이라 하더라도 말을 해서 의사 교환을 하듯, 빠른 암산이라는 계산 언어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내 짧은 견해로는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강제적인 계산 환경의 노출이 수학적 사고의 기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수학이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과 같은 단순 연산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의 습득에 있어서 꾸준한 언어적 접촉 없이는 자연스런 마더텅이 형성되지 않는 것처럼, 수학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산술 연산은 수학 언어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분명, 뇌가 일반 언어와 수학 언어를 처리하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부분의 신경망이 어떻게 유전학적으로 환경적으로 엮여 있는 지 개인마다 다르다. 수학을 잘한다고 문학을 잘하지는 않는다. 수학을 잘 하고 수학적 마인드가 강한 사람들이 타고 나기도 하고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문과와 이과가 칼 가르듯 갈라져있고 문학이나 인문계 사고가 깊은 사람이 수학적 사고에 약하다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 우리는 수학을 마치 외계인의 언어로 이해하는 엘리트들과 마주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수학은 일반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희미하고 답답한 것들을 명료하게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훌륭한 언어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에게 덧셈과 뺄셈 나눗셈의 원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사과라든가 나비라든과 피자 같은 것들을 이용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처럼 수학의 작동 원리의 저변에는 세계를 이해하는 스토리텔링이 숨어 있다. 그런 면에서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는 매혹적인 제목이다. 우리가 탐험하는 세계에 숨어 있는 수학적 기본을 잘 설명해 놓았을 것으로 믿고 기대하며 책을 받았다.

 

수학은 문명의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오늘날의 지식정보 기반의 사회는 수학적 무결성과 완전성을 기반으로 한 과학과 공학이 핵심이다. 우리에게 주입된 수학적 기호와 수식은 그 개념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지루하고 어렵고 아득히 먼 외계언어가 된다. 그러나, 개념이 이해의 차원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언어가 된다. 이 책은 역사와 생활 예술 등 세계를 이루는 모든 영역의 구석구석 숨어 있는 수학의 원리를 찾아내서 보여준다. 인문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융합과 통섭의 관점에서 수학의 여러 영역을 탐색한다. 음악 속의 수학, 경제 속의 수학, 영화 속의 수학, 건축 속의 수학, 동양 고전 속의 수학, 수학과 역사 속 인물의 관계, 미술에 적용된 수학이 각 장마다 소개되어 있다.  


내가 기억하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은 저항하던 뒤칸 승객인 앤드류의 팔을 열차 밖에 내놓게 하여 꽝꽝 얼려 부서뜨리는 장면이다. 아들을 빼앗긴 앤드류는 정확히 7분 동안 열차 밖으로 팔을 내놓게 되었고, 냉동된 팔이 하얗게 얼게 하는 7분. 감독은 그것이 수학적으로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열차 내의 수족관 물고기들은 균형을 위해 개체수의 74%를 유지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주방장은 이리 저리 마구 돌아다녀 숫자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대형 수족관의 물고기들을 몇마리씩 잡아야 윌포드의 시스템 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동양고전과 조선시대의 수학에 대한 소개도 쉽게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서 흥미로웠다. 이런 다양한 영역에 숨어 있는 수학적 원리를 끄집어 내서 설명하고, 수식을 통해 함께 풀어주는 이 책은, 수학적인 사고가 약하여 기호를 읽는 데 골치아픈 사람들에게도 인문학적 탐구심이 있다면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게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영역을 다루다보니 개념만 소개하고 깊이 있는 수학적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다. 수학책은 아니니까. 


읽다 재미있어서 이광연 저자를 찾아보니, 어린이 및 청소년에 관련된 책도 많이 냈고, 인문수학 부분의 책을 꾸준하게 출판하고 있다. 이런 책은 으례이 저명한 외국의 저자가 쓴 해외 번역본에게 우선 눈길이 가게 마련인데, 비슷한 류의 유명한 해외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쓰잘데 없는 자기 얘기를 스토리텔링처럼 잔뜩 붙여놓은 것을 보고 실망했었던 경험이 생각난다. 이 책은 만족스럽다. 통섭은 최재천 박사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내에도 조용히 많은 저술 활동을 하면서 인문 영역과는 생경한 영역을 함께 묶어내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우리가 아니 내가 잘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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