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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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읽는가>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난다. 강의 노트를 그대로 토시 하나 안빠뜨리고 열심히 필기하는 학생들이 포착한 것은 말성 언어다. 책에 쓰이는 글성 언어보다는 말로 하는 말성 언어가 이해를 빠르게 돕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재채기라든가 농담 같은 것들까지 몽땅 적으면서 말로 했던 강의 내용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수업시간에는 미처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내용조차도 당시를 회상하며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학생들의 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책에도 말성 언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라디오 방송이나 인터뷰의 내용을 흉내 내거나 그대로 텍스트로 옮겨 적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책의 경우 글성 언어가 경우에 따라 독자에게 다른 효과를 준다. 첫번째, 잘 정제된 글성 언어를 기대하고 읽는 책이 말성 언어일 경우 대체로 가벼워지는 경우가 많다. 책장이 계속 넘어가도록 농담도 아니고 실없는 소리라든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작가 자신의 경험도 아닌 기호나 인간관계 같은 허접스런 얘기가 늘어졌을 때, 그 책은 가벼워보이고 때로는 독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까지 있다. 김중혁/김연수가 함께 써낸 책 중 <대책없이 해피엔딩>이 약간 그랬다. 방송인이라든가, 네임벨류를 이용해서 전문성도 없이 그냥 술집에서 나누고 휘발해 버리면 좋을 얘기들로 책을 만드는 책들이 주로 여기 속한다. 


반대로 방송이나 인터뷰처럼 가벼운 대화로 이루어진 말성 언어를 기대하고 읽었는데, 추상적 어휘와 개념 언어들로 이루어진 글성언어로 가득찬 책들도 있다. 작가들의 작가관이 주제인 인터뷰집이라든가 과학, 철학 등을 설명하는 방송을 텍스트로 옮긴 책들이 그렇다. 지난 달에 읽은 <철학 한 입 더>는 팟캐스트 방송에 나갔던 내용이라고 해서 철학을 가볍게 소개했을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단어가 다소 어렵게 기술되어 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잘 쓰여진 글성언어를 텍스트로 읽을 때, 가장 좋은 점은 공감과 이해가 빠르고 작가와 친밀도가 높아진다. 김탁환 작가는 요즘 많이 유행하는 팟캐스트 문학 프로그램과 같은 문학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을 공중파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모양인데,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분으로 같은 포맷으로 말을 하듯 전달하는 말성 언어의 책을 썼다. 마치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자근자근 자신이 읽은 어떤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청취자들에게 들려주듯 글자들을 전달하는 것이다. <읽어가겠다>는 젊은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23개의 문학작품 골라 차분하게 그 문학작품을 해설하듯 책을 읽어주듯 작성된, 책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리뷰도 이렇게 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힌트를 얻었다. 그동안 나는 어떤 작품에 깔린 숨어 있는 뜻을 너무 애써 파려 들었고, 문학적 가치에 대해 되줍잖게 평론가들을 흉내내서 평가하려고 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생겼다. 소설가가 바라보는 소설들은 독자에게 속삭이듯 편안하고 아늑하게 다가온다. 리뷰를 쓸 때, 대개는 줄거리에 대해 쓰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 타고난 이아기꾼인 소설가 김탁환은 자신의 마음으로 읽은 부분을 독자들에 다시 전달하면서 원작과는 또다른 종류의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김탁환 버전의 미니 이야기를 원작과 비슷한 양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도록 잘 만들어냈다. 


낯선 남자가 엄마에게 키스하니까 케이티는 무척 놀랐겠죠. 케이티는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납니다. 그 순간 그레타는 딸의 손을 잡으려 하지만 딸은 손을 놓고 물러서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이 중요합니다. 그레ㅏ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그래서 딸에게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아 될 대로 되라. 이대로 간다. 이게 맬리스 먼로의 소설이지요.(135)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씻어야 한다는 겁니다. 독일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인간임을 스스로 되새기기 위해 우리 몸을 가꿔야 한다는 것이죠. ....(166) 인간으로 살 것인가 숫자로 살 것인가. 이런 갈등 속에서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제목을 다시 살펴 보지요. 수용소에는 참으로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평생 잊지 못할 인간들과 그 인간들이 저지르는 사건들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합니다. (167)...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죄수 중에서 그 체험을 글로 남긴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프리모 레비처럼 자신의 생애를 모두 바ㅏ쳐 그것을 되풀이해서 쓰고 쓰고 또 쓴 작가는 드뭅니다... 수용소 안에서부터 인간다움으로서의 글쓰기를 체험하였기 때문에 프리모 레비의 증언들이 더 생생하고 힘이 실리는 게 아닐까...(169)


주로 해외 문학을 대상으로 하나씩 하나씩 소개될 때마다, 나도 그 책들을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꼭 한 번 읽고 싶어졌다. 이런 종류의 감수성으로, 이런 부분들을 느끼면서 읽으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떤 책들은 책을 직접 읽은 것보다 더 절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좋은 문장을 골라서 인용했고, 필요한 배경과 작가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고, 전체 줄거리 속에서 등장인물의 행동과 내면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책을 한권 한권의 책 소개가 끝날 때마다, 마치 직접 책을 읽은 것 같은 울림을 주는 것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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