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누구도 빼빼로 데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모두들 핑계 대기 위해 만든 날에 불과 하니까요

남자친구는 여자친구를 안아보고 싶다는 말 대신에 빼빼로를 선물하죠.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에게 잘 좀 하지 라는 말 대신에 빼빼로를 선물해요. 제과 업체는 쉽게 돈 벌고 싶다는 말 대신에 빼빼로데이를 홍보 하죠. 화장품 가게 나 의류업체는 숟가락 좀 얹어 보겠다는 말 대신에 빼빼로데이 특별 이벤트를 준비 하죠.나 같은 솔로는 자신의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 빼빼로데이를 빈정대죠. 언론인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만만한 안줏감을 찾아 빼빼로데이를 비난 해요. 핑계와 핑계가 풍선처럼 부풀면서 거대한 빼빼로데이를 만들었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봐요.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남자친구에게 빼빼로를 선물하는 일 따위로 고민하지 마세요. 그건 그냥 농담 같은 막대 과자에요. P243


언제부터인가 빼빼로데이라는 정체불명의 기념일이 11월 11일을 기념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빼빼로는 연인들이건, 친구들이건, 가볍게 나눌 수 있는 종류의 선물이라는 점에서 빼뺴로데이는 뭔가를 고백해야 하는 이름도 로맨틱한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 데이에 비해 가볍고 부담었다. 더욱, 빼빼로의 길다란 생김새는 빼빼한 바삭함과 아주 작은 양의 초코렛 만으로도 초코칩 흉내를 낼 뿐 아니라 그 작은 양을 한 손으로 집어 오도독 오도독 몇 입에 걸쳐 먹을 수 있다는 경제적 잇점도 있다. 게다가 빼빼로데이는 우리나라 과자인 빼빼로에서 유래한만큼 우리의 위대하신 중2쯤 되는 10대들에 의해 탄생된 것 같아 족보도 없는 외국의 기념일을 무작정 따라한다는 비판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부드럽고 달콤한 약간의 초콜릿과 경쾌한 바삭거림이 혼합된 빼빼로만큼이나 빼빼로데이를 보는 시선은 가볍다.

사실 연인들이나 혹은 다른  친밀한 관계에 있어서 있어 모든 기념일은 두려움의 대상일 때가 종종있다. 어릴 때는 어버이날이나 부모님의 생일이 그랬고, 커서는 배우자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이나 어린이날이 그랬고, 싱글일 때에나 더블일 때에나 크리스마스니, 발렌타인데이니, 심지어 짜장면을 먹어야 한다는 블랙데이(?)조차도 요란스런 마케팅과 마지못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사이에서 포비아적 두려움을 발생시킬 소지는 있다. 저자 박생강이 주목한 것은 빼빼로데이였고, 무슨 이유에서건 연인들끼리 나누어 먹는 11월 11일처럼 생긴 과자를 두려워한다는 소재는 어쨌거나 조금은 현실적이고 있을법한 아이디어지만, 이 이야기는 소설 속 화자의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빼빼로가 두려운 남자는 부드러운 매력을 가진 남자지만, 빼빼로를 보면 헐크처럼 변해버릴 지 모르는 본성을 지녔다. 이야기의 진전을 기대하자, 소설 속에서 나온 김철민은 빼빼로를 두려워하는 남자 대신, 고급 수제 빼빼로를 만드는 스윗스틱 사장을 실리칸이라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으로 등장시킨다. 


빼빼로포비아란 빼빼로를 두려워하는 소설 속 가상의 질병으로, 화자이자 주인공이 자신의 소설 속에서 만들어낸 정신병이다. 소설 속의 소설은 소설 속의 소설임을 밝히지 않은 채로 다분히 있을 법한 전개와 상황 속에서 전체 소설의 약 1/5 정도 진행되다가, 돌연 현실 속으로 빠져나오지만, 소설 속 소설의 바깥쪽에 있는 동일한 인물의 다른 캐릭터들은 도무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황당한 이야기 속 탁구공처럼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기이한 이야기를 펼친다. 7세때부터 번지점프를 하며 모험을 즐기는 실리칸들은 성인이 되면서 각자 흩어져 다른 행성으로 여행을 오는데, 그렇게 도착한 실리칸이 두 발로 걷고 말을 할 줄 아는 유기견과 함께 스윗스틱 이라는 제과점을 운영하면서 제과점의 아르바이트생인 주인공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모험에 가담하게 되는 내용이다. 끔찍할 수 있는 장면들, 개가 손가락을 먹고, 두 다리가 절단된 상태에서 각각 상체와 하체가 다른 생명체로 존재하는 등의 황당한 내용들이 소설속의 내용을 채우지만, 전혀 끔찍하지 않은 비현실적 세계가 태연하게 펼쳐지는 이 소설은 김중혁작가의 1F/B1 속의 소설들을 연상시킨다. 김중혁의 소설들이 전혀 있을법하지 않은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당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어떤 과학적 상상력을 펼치는 것과는 달리, 박생강의 소설은 다분히 설화적이다. 어떤 외계인이 지구에 내려왔다가 이러저러하게 살다가 돌아갔어.로 요약할 수 있는..



대개 이런 류의 소설이 SF 혹은 환상소설의 장르에 속한다면 무의식의 세계와 의식의 세계를 왔다갔다하며 독자의 골머리를 쓰게 난해한 경향이 있지만, 이 소설은 뻥 뚫닌 고속도로마냥 단순하고 명료한 문체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쉽게 빠르게 읽힌다. 열린책들에서 국내 소설을 내는 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첫 국내 소설인듯하다. 그동안 열린책들에서 소개해온 해외 문학의 저자들, 베르나르베르베르, 아멜리 노통브, 요나스 요나손 등을 연상시키는 톡톡튀는 재기발랄함과 전혀 새로운 소재를 가벼운 필체로 다룬다는 점에서 열린책들의 다른 해외 문학 베스트셀러들과도 만나는 지점이 있다.  딱히 어떤 종류의 소설이라고 장르지을 수 없는 종류의 소설을 쓰는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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