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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평점 :
김중혁 작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은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잘 그릴 줄은 몰랐다. 일러스트 차원의 그림을 잘 그리는고 못그리고 하는 기준은 사실 개인의 취향과 트랜드에 많이 좌우되며 무엇보다 작가의 개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책 속의 그림들은 김중혁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그냥 취미로 자기 책의 일러스트를 위해 끼적거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티브이를 잘 안 보는 나는 하나의 채널에 고정하지 않고 그냥 여기저기 돌리다가 아무것도 못보는 편인데 생활의 달인이 나오면 채널을 안돌리고 계속 보게 된다. 영세한 작은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고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흘린 땀방울이 존경스럽다. 한쪽에서는 기계가 돌아가고 사람들은 그 기계의 속도를 맞춰 작업하는 장면 자체가 이상한 종류의 노스탤지아에 젖게 만드는 면도 있다. 찰리와 쵸콜릿 공장 같은 영화에서도 내용보다 자동화된 생산라인이 쏟아내는 쵸콜릿 공장 풍경에 더 마음을 빼앗겼었던 기억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공장을 찾아나선 작가의 마음은 천진스럽다. 기자로서 탐방기를 쓰기 위해 매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공장을 찾아 나선 길에서 만난 풍경, 떠오른 생각, 만난 사람들로 시작해서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에 대한 단상, 그 물건의 역사, 공장의 역사,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이 비고적 가벼운 필체로 적혀 있고 공장의 생김새와 전체 모습이 그림과 함께 잘 묘사되어 있다. 간장공장공장장의 가이드를 받으며 일본 공장의 균주를 코를 푼 휴지에 담아온 일화는 문익점의 목화씨 일화만큼 흥미롭다. 브래지어 공장과 콘돔 공장처럼 민망스러운 공장을 방문해서 콘돔과 브래지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고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피아노공장과 대장간에도 방문하여 이제는 대를 이을 젊은 직원이 없는, 고도로 숙련된 직원들에 의해 악기와 농기구들이 생명을 얻는 장면도 묵도한다.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잡지책을 읽듯 가볍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처럼 공장들이 궁금한 사람들은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실제 공장의 모습을 읽으려고 샀는데 아이러닉하게도, 가장 흥미로웠던 글은 김중혁의 글공장 엿보기였다. 글쓰기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공장에 빗대어 글감 분류 작업과 생산 공정을 기술한 글을 통해, 그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은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차창 밖을 보니 김중혁 작가가 방문했음직한 공장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일반인들에게도 가끔 개방하면 들어가서 보면 재미있을 듯하다.
여러 개의 책을 함께 읽다 보면, 우연인지 필연인지, 동일한 주제로 묶을 수 있는 소재들을 자주 발견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주말동안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을 읽었는데, 노동자를 대치하는 자동화 기계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무거운 내용이었지만, 김중혁 작가가 직접 공장에서 느꼈던 점들을보다 이론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었다. 김중혁작가의 시선 속에서, 사람 보다는 기계가 주로 움직이고 사람들은 관리만을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유리감옥>은 바로 인간이 그러한 자동화의 노예가 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분석이 주가 되는 내용이다. 공장탐방기는 가볍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 자동화된 공장들이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고, 인간을 어떤 상태로 바꾸고 있는지를 찬찬히 깊이있게 생각할 타래를 제공하지는 않았는데, 유리감옥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