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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 김영하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7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시아의 길거리 음식을 다룬 한 TV 프로그램을 보던 중 친숙한 풍경이 눈에 띄었다. 라오스 혹은 베트남의 도시의 거리였는데 , 포장마차에서 김밥을 마는 앳된 여자의 모습이었다. 이 나라에도 김을 밥에 싸서 먹나요? 진행자가 물으니, 한국 음식이라고 했다. 삼촌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어서, 귀국했을 때 알려준 음식이라고 했다. 김밥. 한 때는 소풍날이나 운동회날 처럼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만 새벽에 어머님들이 정성스럽게 싸던 음식이었으다. 어느새 김밥은 김밥천국 같은 흔한 분식집에서 천원 남짓 지불하면 급하게 한 줄 우걱우걱 배를 채울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이 되었다. 라오스 거리에서 김밥을 싸던 여자의 손길 뒤로, 머나먼 이국 만리 노동에 쩔은 피곤한 몸을 뉘였을 한칸짜리 쪽방, 혹은 허름한 공장 기숙사 한 켠의 숙소를 생각했다. 누추하고 좁은 방에서 까만 봉지에 담긴 김밥 한 줄을 꺼내 맛있게 먹었을 그녀의 삼촌을 생각했다. 아마도 소주 한 병, 오뎅 국물도 함께 마셨으리라. 아줌마 국물 많이 주세요. 멸시와 천대의 눈빛을 견디는 생활 속에 작은 위안이 되어준 뜨거운 오뎅 국물과 단단히 말아 싼 김밥 한 줄, 그리고 소주 한 잔. 힘겨운 노동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하루하루 견디며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던 어느 순박한 외국인 노동자의 고단한 인생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며 지나갔다.
구한말,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던 나라를 야곰 야곰 팔아먹는 댓가로 호위호식하던 일부 친일파들 말고, 어느 누구인들 따스한 보금자리에서 안락한 생활을 영위했겠을까. 멕시코로 떠나던 자들에게 빈 곳간을 지키던 허울 뿐인 '제국'은 희망 없는 땅이었다. 군인들은 급료를 받지 못했고, 황족이 굴레가 된 가문은 끝내 목까지 차오르던 시퍼런 칼날의 위협을 견딜 수 없었다. 왕을 지키던 내시는 갈곳이 없어졌고, 순교를 강요받은 신부는 신분을 감추고 어디로든 떠나야 했다. 미풍처럼 불어오던 개화의 바람은 버려진 소년과 소녀들에게 미지의 땅을 향한 달뜬 경외와 희망을 불러왔다. 그리고 도둑과 무당 역관들, 제 땅에서는 스스로 버려졌다고 여긴 1033명이 있었다.
우리는 가끔 꿈을 꾸듯 떠남을 동경한다. 현실이 비루할 때, 발붙인 땅에서 풀 한포기조차 자랄 수 없이 황폐하다고 느낄 때, 쳇바퀴처럼 늘 제자리인 현실이 감옥처럼 답답할 때, 바다 건너 멀고 먼 반대쪽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위안이 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두려움과 불안을 이길 때, 이 정든 세계를 정녕 떨치고 떠나야할 만큼 현재와 미래가 절망적일 때, 가슴 터지도록 두려움과 설레임을 가득 안고 떠날 수 있다. 더도 덜도 말고 죽을만큼 열심히 일하면 많은 돈을 벌어 돌아와서 먹고 살 한 조각의 내 땅을 살 수 있다는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지리라 철썩같이 믿고 희망 가득한 미래를 그리며 떠나는 배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질 채찍질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신분제 사회에서 살아왔건만, 사람과 짐승과는 구분하는 사회에서만 살아왔기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던 채찍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채찍 문화가 전혀 없던 조선인들에게 그것은 굴욕이기 이전에 놀라움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이 굴욕이라는 걸 알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다. 중략. 마소에게나 휘두르는 채찍을 사람에게 휘두를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p126
산허리를 돌아 계곡을 건너 그늘과 물소리 새소리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굴곡진 땅만 알고 있던 그들에게 뜨거운 태양을 가릴 아무 것도 서 있지 않은,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그대로 드러낸 황량한 멕시코의 땅은 얼마나 이질적이었을까.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던 지형, 공기, 언어, 관습, 문화, 먹거리들은 그들이 아무 필터 없이 맞닥쳐야 했던 당혹스런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달 몇일을 거친 파도에 흔들리는 차가운 화물선 바닥에서 영역 싸움을 하는 짐승들처럼 자신의 몸 하나 누일 곳을 지키며 견디고 또 견뎌 찾아온 낯선 땅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 그 이질감과 낯섬 뿐이었으면 얼마나 다행이었을텐가. 미지의 땅이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실상 노예와 다름 없는 계약 노예임을 깨닫기까지는 도착한 후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였다. 흑인 노예들처럼 줄지어져서 팔려나갔고, 오로지 먹기 위해, 아주 보잘 것 없는 까슬까슬한 옥수수 낱알로 만든 음식을 아주 조금 먹기 위해 온몸이 터지고 깨지고 피가 흐르고 진물이 나고 굳은살이 생길 때까지 일해야 했다.
초가삼간보다 못한, 흙바닥 토굴같은 집에서 웅크려 앉아 밥을 먹던 황족의 가장은 돌아 앉아 책을 읽고 버티며 배달되지 못할 편지를 황제에게 썼고, 아버지를 대신해 열여섯 아들은 싫어도 할 수 없이 가장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1033명의 개인이 그곳에 모질게 스며들었다. 박수무당은 신을 부르고 굿을 했다. 전직 역관은 스페인어를 배워 통역사가 되었다. 도둑은 도둑질을 하다가 관리자가 되어 농장주의 편에 섰다. 계약 기간이 끝났어도, 계약 노예에서 해방되었어도,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갈 돈도 없고, 돌아갈 집도 없고, 돌아갈 고국도 없었다. 노예가 되어 고통스럽게 에네켄 잎을 베는 동안 고국은 사라져버렸다. 혁명의 불길이 남미를 덮쳤을 때, 황제의 군인들이었던 사람들은 흩어져 용병이 되어 고귀한 혁명 정신 대신 돈을 위해 싸웠다. 말이 없던 사내는 이발사가 되어 혁명가의 머리를 잘라주고 혁명가의 오른팔이 되었다. 노루피 냄새가 나던 황족의 딸은 끓어 넘치던 청춘의 열정을 소년에게 바치고 둘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만나지 못해 애타게 서로를 찾아 헤맸다.
조금씩 그들이 가진 조선의 정체성은 희석되어 갔고, 서로를 무섭게 할퀴던 역동의 시간들이 지나, 마야족, 스페인족 두루두루 섞여 2세와 3세들이 태어났으리라. 사유하지 않는 건조한 문체가 소설을 연결하는 매체가 되었다고 해서, 그 방대한 이야기 속에 사유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한 권의 책으로 알려준 책. 사랑의 밀어가 없다고 해서 사랑의 절절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책. 문단 내에서 흡수되어 사라진 행간 속의 이야기는 시간의 간극을 넘어 아득한 상상 속에서 더욱 더 풍부한 서사를 담는다.
박정훈이 무뚝뚝한 얼굴로 그녀를 데리고 이발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정은 메리다로 돌아갔다. 귓전에 다시 셀라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p348
대사 없이, 배경 음악도 없이, 눈물도 없이, 붉게 변해 가던 코끝 찡한 이별 장면이 더 먹먹하게 오래도록 남듯이 건조한 문체의 행간 사이로 끝내 사랑조차 엇갈린 남녀의 운명적 사랑은 그 말없음과 생략 속에 속절없이 더욱 애절하게 다가와 가슴에 닿는다. 그들의 사랑이 말없이 그렇게 막을 내릴때, 평생을 두고 이루어지지 못한 바람이 덧없는 인생 삶의 무게에 스러져갈 때, 독자는 공백으로 사라진 문장을 대신해서 그들의 삶을 채웠다. 수없이 많은 시간 속에 세대가 거듭 바뀌며 천천히 동화되어 갔을 그들 1033명 개개인의 스스로 이야기, 행간 속의 생략된 이야기를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완성했다.
책을 읽고 난 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그들이 뿌리내린 곳에 제물포 거리라는 곳이 있었다. 고향을 잊지 못해 제물포 제물포 매일 노래를 부르던 망향민이 식당 이름을 제물포로 지었고, 어느 샌가 한인들이 모여들었을테지. 그리고 거리 이름이 제물포 거리가 되었다. 공간 이동을 한다고 해도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들이 떠나온 제물포는 과거의 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향수는 이루지 못할 상상이고 실현되지 않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모두 과거로부터 쫓겨난 망명객들이다. 아마도 제물포 식당에서는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고향을 못잊고 고향에서 먹던 음식들을 멕시칸 음식에 섞어 팔았겠지. 그 때 그 모진 노예 생활을 끝낸 후 운좋게 돈을 모아 해방된 고국, 반토막나고 다시 또 서로 적이 되어 싸웠던 모진 역사 속으로 저벅저벅 돌아온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다시 멕시코의 뜨거운 햇볕과 지평선을 가슴에 품고 살아갔을 지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그는 벌어온 돈으로 작은 포장마차를 열었으리라, 그가 포장마차에서 팔기 시작한 음식 속에는 머나먼 땅 모진 시간을 견디게 했던, 김밥처럼 단단하게 허기진 뱃속을 채우던 멕시코 음식의 자취가 남아있었으리라. 어쩌면 떡볶이 속에, 어쩌면 흔한 야채 튀김 속에 다시 떠나 그리움이 되고 향수가 되어 버린 또다른 종류의 망향민의 먼 과거 속 자취가 담겨 아득하게 우리 삶에 스며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