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한입 더 - 철학자 편
데이비드 에드먼즈 & 나이절 워버턴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은 자신이 무지한 대상에 대해 적대적이다. 인간 관계에서도 일단 한 번이라도 말을 섞고 나면 그 사람에게 가졌던 무언의 경계가 풀리면서 알게 모르게 형성되었던 적대감이 없어지듯, 학문이나 개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철학이 내게 적대적인 건 내가 철학을 모르기 때문이고, 그래서 내가 먼저 철학에게 적대적인 표정으로 으르렁거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알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래서 일단 철학과 한 마디라도 말을 섞고 나면 달라질 지도 모른다. 


의인화는 여기까지. "철학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철학 한 입 더>는 그동안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눈길이라도 우연히 부딪칠까 줄곳 메시지도 없는 휴대폰만 들이다보며 눈길을 피하던 낯선 이웃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눈빛을 마주하고 말을 건네는 작은 관심이다. 


영미권 언어는 이래저래 장점이 많다. 이런 주제로, 딱딱한 철학을 굳이 뼈대와 핵심을 제거해 대중의 언어로 노골노골하게 변형시켜 원형의 형체도 모르게 바꾸지 않고도, 팟캐스트 방송을 수년동안 지속하고 기록적인 다운로드를 갱신하며, 책으로 써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렇게 먼 나라의 번역판으로까지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대중을 위한 철학서, 인류 역사를 통으로 훑으며 획을 그은 철학자들의 핵심 사상을 살짝 살짝 한입씩 맛만 보게 하면서도, 그 어려운 개념들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철학의 철학을 버리지 않았다. 핵심을 비켜가, 에세이류의 말랑말랑한 정서적 치유를 지향하지 않고 철학적 개념을 이야기한다. 


표지 맨 앞장은 사과 한 입 아니 두 입을 베어먹는 그림이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에 가면 사과를 모두 다 먹고 씨대만 남은 그림이 나온다. 이 그림은 책을 통해 철학이라는 사과를 한입 한입 베어먹다가 사과 한 알을 다 먹는다 라고 전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마지막 그림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림 속에는 사과 한 광주리가 있는데 그 광주리에 담긴 모든 사과가 다 한입씩 베어문 사과. 그렇게 그림을 그린다면 이 책을 더 정확히 설명해주는 것 같다. 한 입 베어문 철학자의 어떤 사상. 그것으로 그 철학자의 사상 전체의 맛을 다 알 수도 없고, 배도 부르지 않지만, 한 입이라도 먹어본 자만이 그 사과의 맛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세상에 사과는 세상의 사과나무만큼 많이 있으므로, 같은 시간 내에 한 광주리의 사과라도 골고루 먹어보려면 한 입씩 베어먹어보면 된다. 철학 한 입으로 진리를 깨닫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인류가 진리를 찾아 조금씩 걸어간 그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그 찾기 과정이 일보 일보 진전으로만 이루어졌는지, 지금 현재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때떄로 후퇴와 후퇴를 거듭해서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와 원시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게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제껐 걸어왔고 계속해서 걷고 있다는 것이, 그 자취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첫장에는 (현존) 철학자들(팟캐스트 출연진)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철학자에 대한 기습 설문(?) 내용을 다룬다. 20%의 철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가로 데이비드 흄을 꼽았고, 편집부에서는 이를 조금 의아한 결과라고 한다. 철학과 안친한 사람들에겐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뭐 조금 더 많이 들어본 철학자가 아니라고 해도 별로 의아할 것도 없다. 세어보니 흄 외에도 눈에 띄는, 철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들은 니체, 칸트, 비트겐슈타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섯명 이상의 표를 득표했고, 니체 벤덤 존 슈투어트 밀도 세 표 이상씩 득표했다. 좋아하는 이유는 뭐 훌륭하다는 거다.  


철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고 난 후 책에 소개된 철학자 중 가장 흥미있는 철학자를 대라고 한다면 분명 데이비드 흄은 아니다. 사실 독자로서는 그들의 사상보다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어떻게 전달하느냐 하는 방법에 따라 흥미가 좌우된다.  인터뷰어들이 얼마나 흥미롭게 자신이 관심있는 철학자에 대한 소개를 대중에게 잘 어필했느냐 라는 것 말이다. 비유가 적절해서 그 철학자가 대표하는 사상을 아하! 하고 이해할 수 있는 꼭지를 독자로서는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 중 기억나는 것은 헤겔의 변증법을 전달한 로버트 스틴의 말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변증법, 변증법, 말로만 듣던 변증법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2500년이 넘도록 자양분이 되어 온 소크라테스의 대화술을 시대 순으로 나열된 철학자들의 사상의 편린 속에서 확인했다. 팟캐스트에서 진행을 맡은 데이비드 에드먼즈와 나이젤 워버턴 역시 철학자들이고, 매 회마다 바뀌는 대담 대상자들도 모두 대담 속 인물을 연구한 현존 철학자들이다. 여러 해 동안의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고, 이미 <철학 한 입>이 전편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 마이클 샌달에게서 가끔 들었던 공리주의 철학자와 관계있는 존 롤스가 그나마 이해하기가 쉬었고,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은 한 입만으로도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대체로 윤리와 도덕, 정치와 같은 현실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실용적인 내용을 담은 철학은 아무래도 이해가 쉬웠지만, 18세기 이전의 철학들은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여기서 다루는 철학은,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서 시대를 따라 올라오면서 대표적 철학자의 대표적 사상에 대해 대담한 내용을 텍스트로 바꾼 것이다. 팟캐스트로 방송되었다고 하는데, 애플 기계가 없어서 아이튠즈에서는 확인 못했고, 안드로이드 팟빵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방법,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틱한 사랑,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몽테뉴, 데카르트의 코기토, 스피노자가 말하는 정념에 대해, 존 로크가 말하는 관용, 데이비드 흄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버클리의 수수께끼,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인간 본성, 루소가 말하는 현대 사회, 에드먼드 버크가 말하는 정치학, 칸트의 형이상학,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 존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니체가 말하는 예술과 진리에 대해, 헨리 시지윅의 윤리학에 관해, 실용주의와 진리,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하이에크 자유주의, 존 롤스가 말하는 정의, 자크 데리다가 말하는 용서에 대해 총 23명의 철학자와의 대담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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