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
헬렌 오이예미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옛날 옛날 어느 산골에 할머니하고 할아버지 하고 살고 있었어. 그런데 너무 적적했던거야 그래서 산신령한테 아기들 갖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했대 그랬더니 어느날 강가에 할머니가 빨래를 하러 갔는데 사과가 둥둥 떠내려오더래.   그래서 할아버지랑 나누어 먹으려고 집에 가져가서 반으로 뚝 잘랐더니. 글쎄 거기서 갓난 아기가 응애 응애 하고 나오더래. 할아버지하고 할머니는 너무 기뻤대.


어릴 적 할머니의 무릎에서 듣던 얘기다.  수십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외울만큼 하고 또하고 또하고 했던 얘기는 지금 생각해보니 반전도 없고 클라이맥스도 없을 뿐더러 인물의 성격도 드러나지 않고 내면 묘사도 없다. 개연성도 없고 말도 안된다. 게다가 사과를 자르려면 칼이 푸욱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 아기가 있다니.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구전되고 반복적으로 들어도 계속 재미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산 북클럽 카페에서 이 책을 먼저 읽은 몇몇 블로거들의 답글들을 보니 끝까지 작품 설명을 참조하지 않고 읽었는지 어느 시점에서 설명을 참조했는지가 관심대상이었다.  나는 아주 조금, 한 50쪽 가량 읽었을때 이미 역자노트를 읽었음에도 뭐가 뭔지 한참 몰랐는데 삼분의 일 지점에서 설명을 봤다는 독자도 끝까지 오기로 스스로의 힘으로 해독하며 읽었다는 독자도 모두 존경스러웠다. 처음엔  황당하지만  읽을 수록 점점 비현실적인 설정들에 푹 빠져들게 되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옛날 이야기 같이 황당한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여기 저기서 시작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틈틈히 소설가인 미스터 폭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미스터 폭스의 상상속 인물 메리 폭스가 또다른 이야기 갈래를 형성하는 이 소설은 전혀 새로운 형식이다. 


중간에 번역 문체가 너무 거칠고 맥락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역자를 찾아보니 최세희 번역,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비롯한 줄리안 반스의 소설과 많은 번역을 한 역자시다.  일부는 여전히 껄끄럽지만 아마도 원본에 충실하다보니 문화적으로 이해불가한 문장을 유지하는 역자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읽는 재미가 훨씬 반감되었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저자의 발랄 깜찍한 문체를 그대로 만날 수 있었다. 


최근 특히 이달에 들어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의 소설 책들을 참 많이 만났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새로운 형식의 책이다. 구전 동화나 신화와 같이 신비하고 황당한 스토리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한 점,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드처럼 몇 겹의 중첩된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 찾아보면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어떤 하나의 일관된 통일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점, 그래서 저자와 독자간의 숨바꼭질 놀이를 계속하려면 몇번이고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점, 앞서 했던 말 같지만 조금은 다른 점 하나 더. 많은 이야기가 결국 버전을 달리한  하나의 이야기이며, 결국 작가의 이야기일 거라는 점 등이 그렇다. 


그러니까,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스토리에 대한 작은 힌트를 주자면, 소설가인 미스터 폭스에겐 상상속의 여자 메리 폭스가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이 가상의 인물이 현실 속에서 나타나고, 와이프 대프니에게도 나타나면서 세 사람의 미묘한 삼각관계와 동거가 계속되는 동안 그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 가지가 스토리배틀의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그 작은 이야기는 하나의 독립된 단편 소설 처럼 완전한 형태인 것도 있고, 할머니가 사과를 똑 자르면 아기가 응애응애 하고 나오는 것처럼 완전 황당한 스토리도 있고, 형식도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대략의 줄거리는 사실 별 주목할 게 못된다.  그 각자의 이야기들이 메리 폭스와 미스터 폭스와 미세스 폭스를 통해 전달되는 과정, 그 이야기를 구성하는 반짝반짝 어디서도 보지 못한 유머러스하고 귀여운 문체들은 직접 읽지 않으면 절대로 전달될 수 없는 이 책의 가치이다. 


줄리안 반스도 그렇고 작품을 고르는 최세희 역자의 안목이 존경스럽다. 간혹 눈에 띄는 오탈자는 유감. 한 번 더 읽고 내용 보충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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