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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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지 않은 소설을 쓰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진부하지 않은 소설을 만나기도 어렵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해진 형식의 틀을 벗어나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진부하지 않은 소설을 읽는 일은 모험이고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또, 진부하지 않다고 해서 모두 최고의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훌륭한 예술은 발상의 전환, 새로운 시도, 침신한 구성과 소재가 필수다. 이 소설 어딘지 진부한듯 하면서 파격적이다. 


20세기초 봇물터진 서양문물에 도취한 명문가 지식인들의 나르시스적인 엘리트 의식에 흠뻑 절은 듯하면서도 고색창연한 고가의 풍경을 한없이 느리고 정적인 악보위에 써나갔다. 거의 반이 지나도록 진도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가는 이야기를 펼칠 의지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강릉 선교장을 연상케하는 노관이라는 명문 고가의 풍경과 일상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고즈넉한 고가의 풍경은 직유의 융단 폭격으로 압사할 듯하다. 생경한 비유는 때로 그려내고자 하는 이미지에 적절히 매치되지도 않았고, 사춘기 소녀의 시쓰기 습작 노트를 무작위로 조합하여 나열한 문장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전개 없이 반을 읽어나가면, 그 다음 단계로 이야기의 폭격이 시작된다. 이번엔 감정의 과잉이다. 비밀이 파헤처지는 광경도 진부하다. 잘 배치된 추리소설같이 하나씩 실마리가 풀려나가는 게 아니라, 폭로하듯 촌스러운 독백이 과도한 감정과 함께 이어진다. 


이렇게 이상야릇한 책이 독자에게 제목 그대로 신비한 비밀 정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책을 덮고 나서 왜 자꾸 그 곳에서 살다 나온 것 같을까. 시간이 멈춘 곳 같은 그 노관에서  자신때문에 하루하루 절망으로 죽어가던 시동생에게, 초연하게 차를 대접하고 음악을 듣던 요의 어머니가 머리에 떠나지 않는 걸까. 사랑을 극복한 것인지, 애써 숨기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책의 제목은 비밀정원, 이야기 자체로만 본다면 제목이 암시하는 비밀은 막장드라마처럼 진부하다. 비극적 사랑은 운명의 회오리 속에서 비껴갔고, 무고한 생명이 잉태되었으며, 고택의 가문을 지키고자 비극은 끝까지 비극을 지킨다. 그러나 비밀은 진짜 비밀은 흔한 막장 드라마 코드가 아니다. 그것은 노관의 집주인인 어머니이다. 비밀 정원은 요의 어머니의 마음 속 정원이다. 그 속에 숨겨온 사랑, 끝내 이승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랑. 사랑의 씨앗이 잉태되어 손만 뻗치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데도 초연했던 그 마음이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딸의 존재를 알면서, 지척에 있는 딸에게 초연한 것 역시 이 소설의 미궁같은 매력이다. 기존 소설이었다면, 혹은 일일 드라마였다면, 딸의 존재가 소설의 축으로 이어지거나 갈등의 매개체가 되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형성에 기여했을 터인데, 이곳에서 딸의 존재는 마치 그녀가 요에게 보낸 동화처럼 초월적이다. 이 두가지 요소, 두 여성에 대한 비밀스런 마음의 문에 끝내 빗장을 끝까지 열어두지 않은 것과 최대의 결핍을 절제로 표현한 것,. 그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고 새로움이다.  


사실 율이 삼촌의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사랑은 너무나 오버스러워서 20세기를 통과해온 세대로서도 그대로 읽어 주기가 메슥스럽다. 사랑의 감정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지더려빠진 놈 약먹었나 싶다.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미숙한 사춘기 소년의 거친 사랑의 찬미와 같은 그의 시도 유치해보인다. 그러면서 밤늦도록 멈추지 못하고 책장을 계속 넘기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의 마음 속 정원에 무엇이 있는지 그 비밀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철저히 베일을 벗지 않는다. 실제로 비련의 여주인공이고, 이러한 소설에서 가장 많이 독자와 교감하고 감성을 전달해야 할 사람이지만 소설에서는 철저히 그 사람의 감정이 없고 묘사가 배제되어 있다. 어머니는 저 멀리 깊숙한 안채에서 모든 것을 감독하고 지시할 뿐 독자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명맥이 끊어질 듯 겨우 이어가고 있는 대가 노관의 안주인으로서 고작 책을 읽고 손님을 대접하는 정도의 묘사가 전부이다. 대사도 거의 없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은 자주, 화자의 생각을 빈틈없이 독자에게 세세하게 전달하고 아주 밀접하게 독자와 교감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은 소설 속의 인물과 가장 내밀하게 소통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1인칭임에도, 화자인 요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대화가 표현하는 감정, 요가 묘사하는 고택의 풍경, 그것을 통해 독자가 느끼는 것이 반대로 화자에게 이입된다. 스토리는 그가 우연히 듣게 되는 대화에서 형성된다. 


심사에서 '과잉과 결핍'이라는 단어에 격하게 공감하였는데.. 작품 전체에 흐르는 과잉과 결핍은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천명관의 <고래>를 읽을 때, 그 말도 안되는 스토리들을 너무나 통쾌하고 진지하게 읽었었던 것처럼 비록 심사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기존 소설의 정형화된 틀에서 많이 벗어난 이 작품은 혼불문학상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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