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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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게 모르게 편을 가르고 적을 만든다. 남과 북이 대치되어 있는 우리 나라의 이 특수한 국면은 남북의 두 권력 집단에게는 편리한 통제 수단과 탄압의 구실을 만들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의 그것이 조금 더 극단적일 뿐이지 다른 종족이라고 다른 국가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의 책 <적의 말하다>의 첫 글에서 에코는 과감히 말한다. 인류 문명의 아주 초창기부터 본질적으로 적이란 실제로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자들이라고. 


우리가 우리의 '적'으로 알고 있는 '적'들이 언제 우리의 목숨을 노렸는가. 편의상 권력이 가진 세계를 단순화하고, 그 권력과 나라를 지탱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결집시켜 방어라는 수단으로 기만하는 것이 '적'이라는 것의 실체다. 그 '만들어진' 적들은 오늘날은 물론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건 이방인과 소수자들을 타겟으로 손쉽게 적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아름다움의 본질적 특징이 종의 평균적 대표가 되는 데 요구되는 모든 것을 가지는 '온전함'이라면 중세시대에는 이 기준에 따라 평균과 멀리 떨어진 신체적 특징을 가진, 흑인, 난쟁이, 나병환자가 적으로 둔갑하였고, 한 때는 매춘부에 대한 혐오감을 모든 여성에게 확대 해석하여 모든 여성은 인류의 적이 되었다. 그럼 지금은. 의식 수준이 나아졌다고 해서, 미국의 대통령이 흑인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서 적이 사라졌나? 적을 만드는 정치적 장치가 사라졌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적이 되어 증오하는 일이 사라졌나. 심화되었나.


<적을 만들다>라는 칼럼은 2008년 볼로냐 대학교에서 열린 <고전의 밤>에서 발표한 후 <정치 찬가>에 실린 글이다. 칼럼 내에 고대와 중세 시대의 신화와 기록과 문학을 다양하게 인용하고, 깊은 지식을 펼쳐놓고 현대 정치에서 적의 '필요성'에 대해 꼬집는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시인이나, 성인, 또는 변절자들의 특권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글에는, 전쟁의 필요성은 적을 규명하고 만들어 내는 필요성과 일치하는 것이라는 미국의 한 국가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한다. 전쟁은 한 공동체가 자신을 <국가>로 인식하게 하며, 전쟁의 견제 세력이 없다면 정부는 합법적인 자신의 영역을 설정할 수도 없을 것이며, 오직 전쟁만이 계급 간의 균형을 보장하고 반사회적인 요소들을 해결하고 이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때의 파괴적인 전쟁이 이 보고서의 가르침을 따른 것일까. 국가가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회의 낙오자들을 전장의 화염 속으로 내몰아 죽게 하는 것은 적의 실체를 국민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것과 낙오적 인간들의 퇴치 목적을 숨기고 있다면 나치와 무엇이 다를까.


군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희망이다. 생명과 죽음의 힘을 거머쥔 전쟁 시스템만이 사회 조직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다른 기관들도 피의 대가를 치르게끔 한다. 37


책에 소개되는 글들은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지 않는, 제각기 다른 목적, 다른 기관의 요청에 의해 다른 주제와 구성, 문체들로 이루어진 움베르토 에코의 글모음이다. 방대한 지식의 향연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에코의 글쓰기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라서 잘 정리되어 있고 친절하고, 쓸데없는 주석이나 인용이 대부분 생략된 서적에게 익숙한 한국 독자에게는 매우 산만하고 정신없다는 것 빼고는 나무랄 곳이 없다. 단지 그 산만함이 문제다. 그의 지식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종횡하며 끝없이 엉켜있고, 그 출처와 인용을 조금도 생략하지 않는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전문적인 내용이 많고, 학술 논문이라고 하기엔 하나의 주제가 어떤 결론을 향해 수렴하지 않고, 협소하지 않으며 짧은 글마저도 결코 한문장 한문장 휘리릭 넘겨버릴 수 있지 않은 통찰의 밀도가 단단한 에코식 글모음이다. 책을 아끼고 싶었으나, 줄을 안그을 수가 없었고, 줄을 긋기 시작하니, 인용문을 빼고는 거의 다 그어야 해서 줄긋기를 포기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가끔 안그을 수 없는 곳이 사방 팔방 널려있다. 에코는 소설가이면서, 사상가, 철학가이며 건축, 미학 등 다채로운 부분에서 폭넓고 깊이 있는 통찰과 지식을 가진 세기의 지성인이다. 이 책은 에코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넓고도 깊은지를 헤아릴 수 있는 좋은 샘플링이 될 수 있다. 정치, 철학, 문학, 천문, 지리, 윤리, 예술를 비롯하여 위키리크스에 관한 고찰과 속담을 이용한 위트 있는 창작물까지 매우 다양한 주제를 타고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이제껏 비판없이 형성되어 왔던 그리고 수용해왔던 의식의 세계가 얼마나 편협하고 왜곡되고 기만적인 것이었는지를 반성하게 된다. 


두번째 글인 <절대와 상대>는 <절대>를 주제로 삼은 밀라네지아나 축제의 간담회에서 발표한 글이다. 여기에서 에코는 절대를 이해하는 것이 늪에 빠진 허풍선이 남작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끌어 늪지에서 빠져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 비유를 들었다. 결국 사유를 위해 필요한 언어라는 것이 몽롱하고 흐릿하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것을 설명하기 어렵고 따라서 신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암흘속에서 모든 암소는 검다고 여기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미지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상상하도록 단순히 부추기고는 결국 우리의 기대를 좌절시킨다. 48


창조론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정액의 힘을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옮겨지고 인간성의 타락도 마찬가지다. 이 딜레마를 고대의 종교에서는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앞에서 소개한 맨 앞의 두세 글 외에 꽉찬 기대감으로 읽어내려간 글은 <천국밖의 배아들> 편이었다. 아직까지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낙태 문제를 현재 천주교에서 다루고 있는 방식과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를 비롯한 고대의 학자들과 인식과 그 변화들에 대한 을 지적인 통찰을 전한다. 



이쯤하자. 여기서 포기한다. 이 선에서 책의 내용을 허술하게나마 요약해보려는 부질없는 내 의지를 접는다.  그의 책은 요악할 수 없다. 그는 세상을 한 마디로, 한문장으로 정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의 글은 어떤 한 결론을 향해 수렴되어 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주제 자체의 탐험에 그 의의가 있다. 우리는 책을 통해 수많은 문학 작품과, 신화와 과학과 미학과 역사와 온갖 종류의 지식을 심지어 한보따리의 속담들과도 만난다.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이라는 부제는 이 글이 왜 이렇게 주제와 형식과 양이 제각각인 글들의 모음이 되었나를 설명한다. 학술행사의 오프닝을 위해 쓰인 글들이 많은 만큼 주제가 다양한 것인데, 의학 윤리, 기호학 협회, 섬에 관한 학회, 고전 학회에서부터 이탈리아의 주간 일간지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를 하는 학술단체와 각종 매체에서 그의 글을 원했다. 정치적으로 우리나라와 많이 닮은 이탈리아 베를루스쿠니 체제 하에서의 정치적 색채를 띤 글들도 볼 수 있었다. 


소음은 은폐와 같다. 소음을 통한 검열의 이데올로기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침묵해야 할 것이 있으면 더 많이 떠들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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