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 - 생에 한 번, 반드시 떠나야 할 여행이 있다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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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흔한 여행서가 아니다. 아니 여행서라고도 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여행, 문화와 유적을 둘러보고, 멋진 풍광을 만나고, 낯선 음식들을 먹고, 사진을 찍고, 느낌을 말하고 하는 그런 종류의 여행서가 아니다. 많은 곳을 다니고, 성찰을 하고, 자신을 둘러보고 하는 종류의 여행과도 다르다. 이 책의 저자 독일의 파비안은 자신이 고안한 자신만의 방식의 이 여행을 수련 여행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는 워킹 홀리데이라고 알려진 개념이 있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발급받는 비자인데, 1년 정도 호주나 캐나다 같이 우리나라와 상호 비자 제휴를 맺은 나라에서 머물며 일을 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귀하게 자란 아들 딸들이 외국어 공부도 하고 돈도 번다는 환상을 가지고 떠나지만, 도축장이나 농장, 막노동판, 혹은 한인업체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 비슷하지만 핵심이 다르다. 체류를 위해 아무일이나 닥치는대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우선 '수련 여행'을 한 저자의 여행방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여행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첫째, 돈없이 여행했다. 그는 통장에 약 30만원 정도를 가지고 떠났다. 해외 여행을의 필수 조건은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돈은 떠날 자유를  앗아간다.  떠나고 싶어 일을 하기 시작하면, 떠나고 돌아왔을 때 돌아갈 일자리를 잃기가 두렵기에 망설인다. 원대한 계획을 가질 수록 더 많은 경비가 필요하다. 청춘에게 떠나고 싶을 때 훌훌 떠날 수 있는 돈이란 좀처럼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파비안은 여행을 가기 위해 노동력을 저당잡히는 대신 여행을 가서 벌기로 했다.

 

더 이상 안전한 삶에 대한 미련이 내 발목을 잡게 둬서는 안된다.

 

둘째,  그는 준비되어 있었다. 여행을 가서 일을 한다는 앞서 이야기한 워킹 홀리데이와 비슷하지만, 그는 다르게 접근했다. 그는 쉽게 찾을 수 있는 막일, 착취당하는 제3국의 이민자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일,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커리어에 어떤 식으로라도 도움이될 수 있는 일, 그리고 그가 '일'로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어디든 어느 나라에 가서건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그것으로 적어도 머물고 먹을 수 있는 만큼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 대단한 건 아니다. 그는 아직 서른살, 대학을 막 졸업했고, 프리랜서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인테리어 학부를 졸업했지만, 전공과 관련된 경험은 풍부하지 않았고, 디자인과 사진은 학비를 벌기 위해 계속 해왔던 일인 것 같다. 일을 하는 댓가로 여행의 최소 경비인 숙식만 제공받으면 되는 일을 했다. 재능 기부를 통해 자신이 전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잠잘곳과 먹을 것만 제공받겠다는 소박한 마음가짐이 그에게 전문 일자리를 제공한 셈이다.

 

언어가 다른 문화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일을 하려면 어떤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걸까? 게다가 그는 한 나라에 3개월 이상 체류하지 않기로 한다. 그나라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되는 일 중에서, 단기로 끝낼 수있는 일, 단순노동이 아니면서 전문성의 범위 안에 있는 일, 그런 것이 어떤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만국 공통의 언어가 통용되는 예술쪽의 직업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저자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지만, 프리랜서로 사진을 찍고 웹디자인을 했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디자인, 문화 쪽 키워드가 통하는 계통의 일을 찾아 끊임없이 이메일을 보내고 자신을 피알했다. 말로 하는 일을 제외한다면 어떤 계통이라도, 파비안이 했던 방식대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가 찾은 직업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상해에서 건축 사무소, 인도에서 실험적 건축 프로젝트 그룹의 일, 말리이지아에서 디자인 위크 홍보대사,  호주에서는 무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진기자의 보조업무 등이었다. 계속 블로깅을 하며 인맥을 이용하여 세계 각국의 친구들에게 일자리와 관련된 조언을 구했고, 일자리가 구해지는 곳을 따라 여행을 했다. 그리 많은 곳을 간 것도 아니었다. 2년 동안 대략 대여섯 나라에서 일하고, 그 속에서 그 곳 사람들이 걷는 후미진 골목을 걷고, 그곳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그곳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사는 똑같은 삶을 일상으로 경험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나는 이 도시의 진짜 에너지를 느꼈다. 그 에너지란 아마도 전통과 현대의 충돌, 최상의 부와 최저의 빈곤이 상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화로운 에너지란 없다. 새로운 힘은 언제나 지키료는 관성과 나아가려는 동력 사이에서 발생한다.

 

셋째, 다섯 개 대륙을  골고루 가기로 한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든 대륙에서 적어도 한 번은 일을 한다는 것이 그의 여행 십곕명 중 하나였다. 집에서 500km 반경 내로 떠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그리운 연인을 만나기 위해 어겼다. 계획대로 꼭 되지는 않는 것.  그는 한 군데 머물지도, 떠돌이처럼 떠돌지도 않았다. 여행의 목적은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을 위해 한군데에 계속해서 머물지도 않았다.

 

안전하고 익숙한 것에서 멀어질 대 진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38

그러나, 시련이 따랐다. 가장 큰 시련은 그가 처음부터 운명처럼 우려했고 그래서 더 다짐했고 서로에게 약속했던 일.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서로 헤어지지 말자는 연인과의 약속이었다. 그가 자신의 집과 500km 반경 내로는 여행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룰을 어기고 연인이 있는 땅을  밟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설계한 그녀의 인생에서 그가 있을 자리를 빼버림으로서 그의 부재에 적응했다.  

 

저자는 이 여행의 기획을 중세시대 장인이 되려면 기술교육을 마친 뒤 필수 코스처럼 해야 했던 여행과, 17세기중반부터 19세기초반까지 유럽의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했던 그랜드투어에서 가져왔다. 그는 유럽의 특권 계층들이 여행을 통해 전환점을 마련했던 것처럼 인생의 도약이 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낯선 곳, 낯선 음식, 낯선 사람들, 아무도 시선도 주지 않고 존재마저 투명인간처럼 느껴지던 상해에서의 어느 날, 그가 외로움에 지쳐 술에 취해 겨우겨우 집에 들어가던 새벽녂 그는 찡하는 순간과 대면하게 된다. 지인의 부모님 집의 옥탑방에 짐을 풀고 숙식을 시작하였으나, 그에게 쌀쌀맞게 대하고 유령취급하던 집주인이 새벽까지 그가 들어오지 않자, 온 집안에 불을 밝혀놓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풍경을 마주한 것이었다. 그가 다가가자 그들은 살며시 등을 밀어 그를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현관등, 거실의 방 불이 차례로 꺼진다. 독일인들은 좀 다르긴 하지만 겉으로 친절을 베풀고 서로를 배려하는 말을 하는 문화가 몸에 밴 서양인의 눈엔 동양인들의 표정없음이 차갑고 화난 것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문화적으로 다른 동양적 코드의 배려와 진정어린 마음씀의 몸소 체험한 것이었다. 그는 아침마다 따뜻한 빵과 조간신문을 사기 위해 잠옷 바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상하이 시민들, 일요일이면 공원 연못에서 금붕어를 낚는 사람들과 함께 상하이에서 그들과 함께 그 고단한 일상을 삶속에서 고스란히 녹여 내고 있었다.

 

"어떤 친절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울림으로 남아 다른 이들에게 전파되기도 한다". 유학시절 뉴욕의 핫도그 장수가 베푸는 친절에 참혹한 외로움을 넘길 수 있었던 아짐은 쿠알라룸프르에서 진행되는 디자인위크 준비위원장으로, 자신이 받은 친절을 그대로 그 땅의 이방인 파비안에게 베풀었고, 그는 우연이라고치기에는  너무나도 과분한 대접을 받으며 쿠알라룸프르에서의 여행을 시작한다.

 

2010년 1월 상하이에서 시작한 여행은 말레이지아의 쿠알라룸프르를 거쳐 인도의 벵갈루루,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에디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 그리고 마지막 유럽으로 돌아와 애인에게서 이별의 통보를 받을 때까지 1년간 1라운드가 끝난다. 실연의 아픔을 딛고 다시 벵갈루루에서, 쿠알라룸프르로, 호주의 브리즈번, 그리고 다시 쿠알라룸프르에서 샌프란시스코, 코바의 아바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도밍고, 콜롬비아의 메데인을 끝으로 그는 2라운드의 여행을 끝냈고, 매일 썼던 일기와 블로그 사진등을 토대로 책을 내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가 전문성을 버리지 않고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그의 지칠줄 모르는 구직활동과 여행에 대한 불타오르는 의지도 있지만, 쿠알라룸프르와 같은 곳에서 큰 국제적 행사의 운영요원과 홍보 대사를 맡게 되는 것과 같은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맡을 수 있었던 행운은 백인이라는 그의 인종적 특성과 수려한 용모도 한 몫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말이 제법 잘 통하는 영어권의 나라 호주 브리즈번에서 그토록 구직 활동을 했어도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반증한다. 디자인위크라는 국제 행사에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나타난 독일 청년이 재기발랄하고 유머감각과 쇼맨쉽을 가졌을 때,쿠알라룸프르라는 국제 도시에서 수려한 용모의 독일 청년은 자국민에게 홍보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부풀어졌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저 유행처럼 베낭을 메고 책자 하나를 들고 자기를 찾겠다고 떠나려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여행이라는 환상을 버리기 위해 혹은  여행이라는 환상을 진짜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를 깨달을 수도 있고, 그의 여행을 통해 여행이 아닌 삶의 여정으로서의 자신의 일상과 일들을 바라보는 성찰을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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