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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평점 :
매일매일 똑같은 사람과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밥을 먹고, 매일 보는 사람들과 함께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상에 아무 변화가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지루할까. 권태로운 삶에 변화를 주는 것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일상중에 마주치는 작은 일들 속에 예상치 못한 작은 반전이 있기에 우리는 때로 꿈꾸고 소망한다.
매일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던 부부에게 희망이라면 대단한 게 아니라 단지 그 상태를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거다. 그렇지만 그 벗어남, 헤어짐의 뒤에 또 어떤 반전이 숨어 있을 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선택하기 보다는 불행한 현재를 유지한다. 결정 뒤에 찾아올 지 모르는 더 끔찍한 반전이 겁나기 때문에, 반전없이 그대로의 삶에 만족할만한 숱한 핑계들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만일 이별 후에 다시금 서로를 향항 사랑을 발견했다면 로맨틱 문학작품이, 이별 후에 복수를 시작했다면 장르소설이 될까. 대개 소설 속에는 훨씬 더 자극적이거나 로맨틱한 반전이 있다.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로서의 삶이 전개되어 나갈 때 우리는 반전이라 부를 수 있다.
모파상의 짧은 단편들을 읽으면 반짝이는 별빛과도 같은 아주 작은 수많은 반전들과 맞닥뜨린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거나, 혹은 윤리적 도덕적 관습적 가치 체계에 맞서는 대단한 반전이나 복수와 같은 것들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다양성을 설명해주는 것들이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상상도 못할 대단한 반전이나 혹은 매혹적 문체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로 접하는 짧은 단편 속에는 반전보다는 대개 어떤 상황이나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통한 주제의식과 더 자주 만난다. 그래서 단편은 자주 이해하기 어렵다. 모파상의 단편은 그렇지 않다. 그가 19세기에 쓴 짧은 단편들은 예측을 조금 벗어나는,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들이다.
그 반전들은 때때로 따스한 결말에 안도감을 준다. <어느 농장 아가씨 이야기>에서 하녀 로즈는 마을 청년 아이를 임신하고 버림받아 고향 유모 집에 맡기고 돌아와 일을 계속 하지만 주인의 청혼으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결혼한다. 그러나 그들에겐 6년동안 아이가 없고, 남편은 자식에 대한 욕구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사이가 나빠지는데 결국 로즈는 폭력을 견디다 못해 그를 떠날 작정으로 혼전 아이가 있다는 비밀을 터뜨린다. 반전은 여기에 있다. 혼전 임신을 거의 범죄 수준으로 비난했던 당시 사회의 불문률을 깨고 남편은 기뻐하며, 왜 그 얘기를 이제야 하느냐며,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를 데려다 키우자고 제안한다.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따스한 반전도 있는 것이다. 남편에게 중요한 것은 둘 사이에 아이었을 뿐, 그녀의 과거 따위, 아이의 핏줄 따위, 사회적 관습 따위 개의치 않았다. 짧은 단편 속에 퍽이나 긴 스토리가 담겨 있지만, 짧은 문장과 대사와 여백의 세 요소가 짧은 얘기를 길고 오래도록 머물게 한다.
모파상과 함께 한 덩어리의 연상작용으로 따라다니는 비곗덩어리는 처음 읽었다. 1880년 에밀 졸라를 비롯한 6명의 젊은 작가들이 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취재한 단편집 <메당야화>에 실린 작품이다. 아마도 우리 구세대들에겐 교과서에서 모파상과 함께 짝으로 외운 낯익은 작품이지만, 누가 읽었을지 의문이다. 모파상은 이 뛰어난 작품으로 화려하게 문단 데뷔를 확고히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반전은 슬프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도시를 빠져나가기 위해 마차에 함께 탄 숱한 인간 군상들 속에 이질적인 여자 한 명. 그녀는 몸을 팔아 먹고 살던 창녀였고 멸시의 시선을 받지만, 여행 중 배고플 때 음식을 나누고 여관에서 장교의 통행 허가를 받기 위해 장교에게 몸을 바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지는 비련의 여자다. 그러나 정작 이 스토리를 이끄는 작가의 시선은 그녀를 멀찍이서 건조하게 바라볼 뿐 어떤 감정이입도 없다. 그녀가 필요하자 귀족과 부르주아들은 그들의 목적인 통행허가를 얻기 위해 똘똘 뭉쳐 그녀가 희생하기를 은밀히 요구하지만, 막상 그들 뜻대로 떠날 수 있게 되자 이제 떠나는 마차에서 그녀는,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영웅이 아니라 그들이 경멸하는 매춘부로 다시 돌아와있다. 그것도 마차가 떠나기 직전 아침까지 적군인 프로이센 장교와 몸을 섞은 더러운 여자로 말이다.
그 전에 우리는 시대를 떠나, 생각해 볼만한 또다른 도덕적 딜레마와 마주치게 된다. 여관에 몇일씩 몸이 묶여 장교의 허락 없이는 꼼짝 달싹도 못하게 된 일행에게 필요한 건 장교가 원하는 걸 주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센 장교는 '고맙게도' 다른 귀족 부인의 몸이 아닌 매춘부의 몸을 원한다. 매춘부는 지독한 모멸감을 느끼고 몸을 허락하지 않고, 일행들도 처음엔 그녀를 이해하는 척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들의 여정이 언제 다시 이어질 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태가 되자 차츰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몸을 팔던 창녀에게 장교와의 하룻밤이 무슨 대단한 일일 거냐는 거다. 모두를 위해 그런 일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그들은 작전을 세우고 그녀를 끈질기게 설득한다.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그들의 목적이 달성 된 다음 날 태도를 바꾼 후에야 구역질나지만, 그 전에 나는 그들의 말에 어느 정도 설득당했다.
첫번째 딜레마는 전체를 위해 한명의 희생을 은근히 강요할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한 부분이다. 목숨이 달린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여행이 계속 지체된다면 그들은 적국 프로이센이 지배한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만일 목숨이 달려 있었다면 그녀는 더욱 노골적으로 그들에게 이용되었을 지도 모른다. 두번째는 그 희생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해 온 직업적인 여성었을 때 그렇게 대단한 희생이냐는 질문에 대한 것이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귀족 부인이 아니라 다름아닌 원래 몸을 팔던 사람이다. 어쨌든 그녀는 원치 않았지만, 했고, 함으로 인해서 전체는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자신은 똥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모파상의 단편에는 이런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도덕적 딜레마에 많이 부딪힌다. 사랑은 숭고하기만 한 것인가. <의자고치는 여자>는 허망하고 비참한 짝사랑의 비애를 이야기한다. 당시 의자 고치는 직업은 떠돌이 집시와도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거지꼴의 집시같은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실에 불쾌해하던 남자 부부는 그 여자가 자신에게 유산을 남기고 죽었다는 말을 듣자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그녀가 타던 마차까지도 요구한다. 자신을 원치 않는 상대를 평생 사랑하는 일은 바보짓이다. 사랑이 아름답다고 누가 그러는가. 모파상은 그것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의 소설 속 사랑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간결한 문체 속 사랑은 언제나 날카로운 그의 해학과 만난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소년을 안고 입맞춤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주었고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부모의 돈까지 훔쳐내고 모았다. 그렇게 해서 가진 순간의 입맞춤 순간의 포옹. 그게 어떤 의미일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쁜 사람을 단죄하는 우화처럼 짧은 이야기는 그 어리석은 사랑이 아무 의미도 없음을, 허무하다는 말 조차도 사치라는 걸 알려주는데, 그걸 직접 알려주는 게 아니라 꼭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알려준다. 서양 문학사를 제대로 잘 모르지만 19세기라면 액자 구조 같은 문학적 구성의 프레임이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을 때라고 짐작되지만, 그의 단편 중 거의 대부분은 유사 프레임 구조로 되어 있다. 작가의 시선은 완전히 배제된 채 누군가의 얘기를 전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단편들은 대체로 그런 종류의 예상치 못한 작은 반전을 품고 있다. <들놀이>는 굉장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면서 우리의 안방과 극장을 차지하는 비껴 지나가 버린 안타까운 사랑의 전형적 형태를 보여주면서도, 그 건조한 시선의 결말에 이르러서는 서늘한 사랑의 본질을 느끼게 한다. 어느 화창한 봄날 가족과 약혼녀와 함께 들놀이에 나선 여자가 약혼자와 아버지가 잠든 사이 그 날 낮 함께 어울리던 청년과 뱃놀이에 나선다. 그 짧은 뱃놀이 중 둘은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지만 아쉽게 헤어지고 얼마 후 남자는 여자가 그 날 함께왔던 꺼벙한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다시 찾은 그 곳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 물놀이를 하던 섬엔 그토록 그리던 그녀가 새 남편과 함께 있다. 예정에도 없이 번개처럼 갑자기 나타난 사랑, 그러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길도 없이 헤어진 후, 서로의 갈 길을 갈 때, 그 작은 추억이 영혼이 되어 버리는 것. 그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무료한 인생을 가끔 반짝이게 하는 별들일까.
매우 짧은 단편 <봄>의 반전은 참으로 기발하다. 봄날에 대한 찬사와 막 만난 여자와의 사랑의 노래는 마치 아름다은 시처럼 황홀한 사랑을 시처럼 반짝이다가 결혼과 함께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여자와 함께 하면 인생이 달콤해 질 거라 생각 하지요 그래서 여자와 결혼 합니다 그러고 나면 그 여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에게 욕설을 퍼붓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수다를 떨고 중략 석탄 상인과 말싸움을 하고 관리인에게 집안의 내밀 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이웃집 하녀에게 침실의 비밀을 모두 털어놓고 거래하는 상점에서 남편을 헐뜯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은 너무나 어리석은 이야기들로 너무나 바보 같은 믿음들로 너무나 기괴 한 견해들로 너무나 놀라운 편견 들로 가득 차 있어요서 절망스러운 나머지 눈물이 나올 정도랍니다
그의 소설은 전쟁, 사랑 등 다양한 주제로 다가오며,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끈다. 우리의 삶에도 반전이 있다. 반전은 비루한 삶과 일상에 활력을 주고 반전은 소설에서 극적 스토리를 완성시킨다. 우리의 삶에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반전을 참 기발한 방법으로 짦막하고, 아름다움 문체로 재현해냈음에도, 그 속에 아무런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전달하는 모파상이 왜 고전이 되었는지 이해할만하다. 그의 글에선 권선징악적인 메시지도 없고, 선과 악도 없다. 단지 어리석음이 있을 뿐이다. 겉멋만 요란한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와는 다르다. 그냥 그대로,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푸욱 이성을 찌른다고나 할까. 아직 좀 더 남았다. 62편의 많은 단편이 실려 있지만 한편 한편 모두 다 너무 좋다. 고전 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어렵고 재미없을 것 같은 편견에 사로잡혀 지루해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반대다. 너무 재밌어서 꼼꼼히 한편한편 여운을 즐겨가며 읽다보니 세월아 네월아 오래 걸린다.
모파상은 19세기를 살았다. 그는 당시 보불 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했고, 패전으로 인한 사회 분위기를 소설 속에 잘 녹아내었다. 천재는 모두 매독에 걸렸었는가. 정신이상과 자살시도... 화려한 인생의 마지막이 안타깝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