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인생수업 -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동섭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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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까지 결혼하지 않았던 친구 하나가 풀어놨던 사랑 이야기가 아직도 먹먹하다. 남자는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에서 살림을 차릴 수 있는 여건만 되면 결혼하겠다고 했다. 멀지 않은 과거,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이 넘치도록 흘러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 남자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갖지 못해 그녀와 헤어졌다. 친구는 그 남자의 그 말을 오랫동안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뉴욕의 혼자 사는 아파트에 뜨거운 물이 나올 때마다 그 남자를 생각했다.

 

명절 때마다 대체 결혼은 언제 할거냐고 친척들 앞에서 성화를 들어야 했던 한 살 많은 선배와 연락이 닿았다. 오랜 만의 소식에서 결혼과 자녀를 둔 평범한 삶을 가졌다는 게 기특하게 여겨질 정도의 어떤 결핍을 몸에 걸치고 다니던 선배였다. 그는 가난했었다고 했다.

'승진도 하고, 작은 아파트도 장만하고, 그러고 나니까 이제 결혼해도 되겠다 싶더라.'

사랑이 아니라  조건위에 자신을 올려 놓을 때까지  미루었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안타까왔다. 가난을 이유로 떠나보낸 청춘의 사랑이.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에 투영했다. 고흐의 인생 곳곳에 조명을 들이대고 비추며 자신에게 찾아왔던 갈림길을 성찰했다. 그 성찰은 때로 자기 변명이기도 했고, 삶의 고백이기도 했고, 때로 한 인생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고흐의 생은 많이 알려져있다. 고흐의 사랑도 우리는 잘 안다. 철없이 고흐가 가난한 빈 손으로 사랑을 갈구했던 것과 달리, 저자 이동섭은 갖추어지지 않은 애정의 조건을 핑계로 사랑을 포기하고 많은 여인들을 떠났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자신이 행복해서는 안될것 같다는 죄책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했던 젊은 날을 풀어놓았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막막한 삶을 이어가면서, 생활고에 시달렸던 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 정신적으로 교유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서 항상 함께 위로하고 위로받은 깨끗하고 맑은 영혼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수한 예술적 행위를 서포트하기 위해 먹고 사는 삶의 현실적 무게를 떠안아야 했던 사람이 있었다. 고흐의 인생에 있어 동생 테오는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테오의 내면을 들여다볼만한 기회는 없었다. 이 책에서는 . 충분하지는 않지만 형을 사랑하고 지원하면서도 그 때문에 경제적으로 고통스러웠을 테오의 삶을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조금은 다가서려는 부분이 보인다. 테오와 빈센트의 관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밥을 벌어먹어야 하는 현실을 외면하면서 추구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어렵다.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위해 성기가 잘리는 굴욕적인 형벌을 선택했던 것처럼, 빈센트에게는 성인 이후의 일생동안 동생에게 굴욕적으로 돈을 부탁하면서까지 일생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절실한 일, 영혼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있었다. 그것을 저자 자신에게 투영했다. 자신은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일을 하고 먹고 살기 위해 유학을 떠났으며, 그것을 빈센트 반 고흐가 여러 번 직업을 버리고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화가로서의 길과 비유하였다.

마모되는 자아에 대한 안타까움은 술자리의 불판 위에서 타들어가던 고기 냄새 속으로 사라져갔다. 직업에서 돈과 자아실현은 양립하기 어려웠고, 돈이라도 가지면 다행이었다. 그 무렵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22

빈센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테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했지만, 저자는 스스로를 해결하였다. 빈센트와의 가족과의 관계를 자신에게 투영하고, 빈센트식의 사랑과 자신이 사랑했던 방법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 비교는 매끄럽고 부드럽게 어을리지는 못하는 듯, 약간의 무리수가 보였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스스로 진실되게 성찰하고 고백한다는 면에서 어떤 이에게는 큰 공감을 불러올 수도, 또 다른 이에게는 영양가 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으로 읽힐, 읽는 이의 호불호가 크게 작용할 책이다. 또한 책의 성격이 애매하게 심리서 같기도, 수필같기도, 예술 에세이 같기도 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버린 느낌도 함께 있다.  현실과 추구 속의 힘겨운 선택 과정에 대한 진실된 고백에게 격려를, 아직 무명 작가로서 스스로 내딛은 돈 말고 다른 이상을 향한 용기있는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왜냐 하면 이 조급한 설국열차 같은 사회에, 누군가는 그래도 소박한 꿈을 꾸고 소박하게 이루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빈센트의 인생의 전환점들을 돌아보면서 함께 한 그의 그림,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작은 에세이들이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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