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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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이후 가장 숨죽여 읽은 스릴러이다. 새장처럼 생긴 작은 괘짝에 온몸을 구겨넣은 여성이 발가벗겨진 채로 지상 2미터 높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쥐들의 먹이가 될 운명에 처한다. 이 끔찍한 사건은 전개만으로도 피를 말릴듯 조마조마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책 밖으로 막 걸어나올 것 같은 생생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수사팀의 인간적인 면모들이 슬며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수사반장 카미유는 납치 현장을 목격한 신고를 접하고 막막한 채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알렉스의 치열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정체 모를 그녀의 흔적을 경찰은 언제나 한 발 늦게 쫓는다. 사건과 탐정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복잡한 스토리는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수학 공식처럼 치밀하게 구성된 퍼즐 틀 안에 반듯하게 끼워 넣는다.

 

수사팀이 맞닥뜨린 사건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황당하고 막막한 것이다. 프랑스엔 왜 그 흔한 감시 카메라도 없는지, 목격자가 본 건 길가던 미모의 어떤 여성이 갑자기 어떤 남자에게 가격을 당하고   탑차에 태워져  납치됐다. 그녀가 누군지 그녀를 끌고 간 사람이 누군지 힌트도 없다. 형사에게 주어진 유일한 정보는 오로지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폭행후 탑차에 실려 납치됐다는 것 뿐이다. 납치 사건으로 아내 이렌을 잃은 후론 강력 사건을 맡지 않겠다고 버텨왔던 카미유 반장은 담당 형사가 휴가에서 돌아올 때까지 하루 이틀만 그의 공석을 대신해  임시로 맡은 것이다.  그렇게 왕년의 멤버들과 팀을 이루어 시작한 사건은 그가 빠질 여유를 주지 않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급류에 휘말려갔다. 그동안 발생했던 연쇄 살인에 더해져 사건 발생 직후 더욱 가속적으로 발생하는 황산 살인 사건과 연루되며 미스테리는 점점 커진다. 한편 공은 취하고 실은 카미유에게 돌리려고 혈안이 된 예심판사와의 위태로운 갈등 속에서 부유하는 조각 정보들로 하나씩 실마리를 풀지만, 하나가 풀리면 다른쪽 매듭은 더욱 꼬여만 간다. 사건을 쫓는 과정은 유병언 사건 같다.  뭔가 한 가지의 단서를 잡고 뒤를 쫓으면 그 땐 이미 한 발작 늦는다. 국민들은 수사팀의 무능을 비난하고, 예심판사는 조금이라도 실적이 생기면 가로채갈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고, 모든 매체에 나서서 변명하고 설명하고 땀을 흘리는 것은 서장의 몫이다.

 

소설은 사건 해결을 위한 수사팀의 이야기와 납치된 알렉스의 시선으로 된 이야기의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알렉스의 이야기로 들어오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전형적인 참혹한 스릴러가 쉴 새 없이 펼쳐지지만, 수사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신원 파악도 안된 알렉스의 정체와 비밀이 서서히 파헤쳐지는 과정이 카미유의 시점을 중심으로 인간적이게 서술된다. 수사 반장 카미유와 예심판사 사이의 으르렁거리는 기싸움과 그 사이에 낀 채 양쪽에서 쿠션역할을 하는 르 구엔 서장,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어버린 듯한 지식과 엄청난 부, 그리고 따스하고 사려깊은 엄친아 같은 남자 루이, 스쿠루지처럼 돈을 아끼며 주변사람들에게 빈대붙어 먹고 사는 아르망, 어떤 결핍의 상징처럼 고집스럽고 자신 밖으로 한 발작도 나오려 하지 않는 난쟁이처럼 작은 카미유, 권위에만 의존한 채 허수아비처럼 서 있으면서도 사사건건 카미유와 위태로운 관계를 만들며 부딪치는 예심판사.

 

이러한 장르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여러가지로 7년의 밤과 유사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번째는 소설 속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거다. 피해자는 가해자이고, 가해자는 다시 또 피해자이다. 비밀들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최초의 어떤 피해자에게 어떤 도덕적 비난을 해야 할 지 알지 못한다. 두번째는그들의 책의 저자가 서사의 끝에서 내린 최종 결론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이다. 사건의 내막을 독자는 알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카미유는 과연 모르고 있을까? 그는 그 모든 사건의 발달을 만든 최초의 가해자를 단죄한다. '범인'은 항변한다. 카미유 당신은 알고 있어. 이 모든 것이 조작이야 라고.. 카미유는 날키로운 직관의 소유자이다. 알렉스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추리로 인해 서서히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그런 그가 둔감한 독자까지 눈치챘던 그녀의 의도까지 눈치채지 않았을 리 없다.

 

딜레마는 이거다. 최초의 악이 있다. 그 악이 다른 악을 불러왔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것이다. 만일 최초의 악에 대한 복수를 가해자가 자기 일생을 걸고 차근 차근 실천했고, 그것이 완전 범죄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그 최초의 악을 복수로 단죄한 것에 대해 법의 테두리에 있는 수사관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한 명의 독자로서 한 발작 멀찌감치 떨어져 볼때 그 근원적 악이 처절한 복수의 대상이 된 것이 꼬소하고 당연한 어떤 정의의 실현 같아 작은 안도감을 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결국 진실은 외면당해도 싸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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