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 인간이 유일하게 지녀야 할 삶의 정의
피에르 라비 지음, 배영란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생태농업의 선구자 피에르 라비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 명료하다.  스스로 인류의 빠른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시킨 현대 문명에서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발적인 소박함을 선택함으로써, 인간 고유의 가치를 되찾고, 더이상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지 말고 가능한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피에르 라비의 메시지는 얼마전 읽은 [성장 없는 번영 :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를 위한 생태거시경제학의 탄생 - 팀 잭슨 저| 착한책가게] 의 연장선 상에서 볼 수 있다. 이 책은 성장없는 번영 에 비해, 조금 더 철학적이고 인본적 가치에 치중한 책이나, 저자 피에르 라비 자신이 평생을 통해 실현하고 있는 실천적 삶의 핵심 가치를 담고 있는, 영혼이 풍부한 책이다.

 

각종 연구자료와 다소 학술적 내용을 포함하는 성장없는 번영 중 "행복은 소득에 비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느 선까지 소득이 도달하면 그 이상은 소득과 행복에 아무 관련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기억난다. 행과 불행에 끼칠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은 OECD의 국가에서는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이미 구축이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주춤한 경제 성장이나 돈을 더 많이 못벌어서가 아니고, 행복한 이유 또한 선진국이 되어서가 아닐 것이다. 피에르 라비는 인간의 고유가치를 파괴하지 않는 생태 농업으로,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잉여 생산과 낭비를 없앰으로써, 조화와 질서를 회복하는 전통적 생활 방식을 회복하고, 자발적 소박함이라는 삶의 태도를 지향할 것을 전하고 있다.

 

인간 이외의 모든 피조물이 수만년동안 공유해 왔던 모든 재원들을 겨우 최근 몇백년 혹은 몇천년만에 파괴하는 것은 약탈행위이며, 후대까지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이 지속가능한 삶을 영속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일하고 그 지상의 모든 혜택을 인간 이외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나누는 것만이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나를 밥 먹여주고 잠을 재워주고, 정신활동을 도와주는 이 도시를 어떻게 떠날 수 있으며, 먹고 마시고 만나고 떠들고 누리는 이런 것들을 어찌 소비를 배제하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책을 읽으면서 최근 읽고 있는 다른 책들을 통해 느꼈던 생각들이 이 책을 통해 받은 느낌과 함께 두서없이 교차했다. 피에르 라비가 주장하는 방법과 이념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으로서의 그의 생각이 디지털 문명의 다른 영역에서는 충돌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읽고 있는 에지 프로젝트 "우리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읽으며 수많은 석학들의 생각을 읽고 느끼고 공감한 것들이, 피에르 라비가 주장하고 가슴 울리는 성찰을 전달하는 자발적 소박함의 철학과 충돌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라비는 현대 인터넷 문명 때문에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본다. 집에 있는 것은 아이들의 빈 껍데기 뿐이고, 그들의 영혼은 인터넷의 어딘가에서 위선과 꾸밈으로 가득한 가상 자아로 치장한 채 또다른 위선과 꾸밈이 가득한 거짓 자아들과 만나면서 가상의 세계를 헤매고 다닌다는 것이다. 디지털 원주민이 아닌 우리 기성세대에게 집에서 하루 종일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확실히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터넷 덕분에 자신과 같은 취미나 학술적 관심, 혹은 전세계적으로 통털어도 아주 드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관심 분야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자본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대중의 의견을 한 곳으로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상호 작용으로서의 매체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네트워크 세대는 진정한 민주화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지식은 특정 계급에게 편중되어 있었고, 지난 세기만 하더라도, 오늘날 키보드 몇 번이면 액세스가 가능한 학술지의 열람은 선택된 지식계급들이 위치한 그 물리적 환경 내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고민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인간은 브랜드 상품과 물질적인 것보다는 더 고유한 가치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지만, 이미 소비와 물적 충족이 하나의 조건이 된 사회 내에서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적용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라비는 책을 통해 자신이 무조건적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문장 하나 하나 100% 공감하면서도, 100% 인정할  수 없는 갈등을 책을 덮을 때까지 겪는 이유는(그것은 고통스럽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실천적 방안이, [성장없는 번영]에서 지적한 것처럼, 어차피 이제는 너무나 늦었고,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파괴했고, 그래서 그나마 우리의 아들 딸과 그들의 아들 딸이 지속적으로 이 지구에 발붙이고 살게 하기 위해서는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난제를 포함하고 있고, 이미 물욕에 어두워 그것 없이는 삶이 어찌 지속될 지조차 불안해진, 자본의 속성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실천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의 삶이 책을 통해 전달하는 가치에 동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저 막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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