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작가수업 1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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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하고 여전히 추운 겨울의 끝자락, 기다려도 기다려도 봄은 오지 않고 앙칼지고 매서운 추위가 물러서지 않을 무렵, 우리에게 명명된, '꽃샘추위'라는 예쁜 언어는 기다림의 소망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저자는 '문학은 존재의 저 끝 어디에 있는 것들을 명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생각, 어떤 느낌, 어떤 현상들에 어떤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은 공기의 습기와 아침 이슬을 머금고 애쓰 스스로 생명을 키워나가는 들꽃이 되고, 아끼고 가꾸어 피울 수 있는 장미가 되고,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는 열매가 된다.  그것을 문학이라고 했지만, 나는 이것을 글쓰기라는 영역으로 확장해서 이해한다. 


저자는 문학의 본질을 소통으로 보았다. 누군가가 읽어주는 것을 기대하고, 또 많이 읽어주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작가들은 간혹 베스트셀러를 숭배하고 많이 팔리는 길을 섬기게 되므로 이를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문학을 하는 작가라면 문학적 도전을 중단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말이었으나, 나는 소통이라는 단어가 눈이 띄었다. 문학의 본질이 소통에 있는 것처럼, 리뷰와 같은 글쓰기의 본질도 소통에 있는 것일까. 작가가 아니니, 문학사적 지평을 넓힐 필요가 없으니 소통에만 치중하면 될까. 소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만일 누군가가 와서 읽어주지 않는다면 오탈자와 비문이 가득하고 뒤엉킨 생각들이 채 정리되지 않은 채로 인터넷 어느 한 공간에 남겨진 나의 글을 그야 말로 산 속의 잡초처럼 여름 한 철 지고 갈 어지러이 마음 타래에 불과하다. 그래도 안쓰는 것보다는 낫다. 글은 남고, 글 속의 생각도 남겨진다. 비록 정리되지 않을지라도... 


최근 들어 글쓰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뭘 대단하게 쓰는 것도 이걸로 밥벌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생각을 옮기는 일이 두려워졌다. 생각이 없어진 거 같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을 생각했다. 글쓰기를 생각의 기록으로 여겼을 때에는 두서없는 생각의 타래들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을 때, 그 엉킨 실타래들은 이제 기억 속에서 휘발해 버리는 대신 자기들끼리 얽힌 채로 생명을 잃는다. 식물에 물을 주면 꽃을 피우듯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은 외부와 어떤 방식으로든 내 생각 밖으로 나온 타래들이 소통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반대로 소통을 생각하니 생각이 정지되는 듯하다. 시인과 소설가를 치열한 고독과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돌고 돈다. 생각이 있어야 글이 되고, 글이 있어야, 소통이 되는데, 소통이 생기면 새 생각이 없어지고, 생각이 없으니 쓸 글이 당연히 없지 않은가. 새삼 작가들이 대단하다.  


제가 이곳에서 제 마음을 정성껏 글자에 담아서 전달을 하면 그것이 나의 상상력이 미칠 수 없는 머나먼 어떤 곳에 가서 내가 원하는 무슨 일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처음 확인했을 때 그 위대한 문학적 기적이 얼마나 전율스러웠는지요. 그 후 저는 속수무책일 때마다 글이라는 무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서정'이란 '객관 세계에 의하여 환기된 주관적인 감정'이라 한다. 늘 보는 풍경 속에 익숙해져 있다 보면 꽃이 피고 계절이 변하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객관 세계가 마음을 조금도 건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작가는 이것을 권태라고 했다. 똑같은 인간들끼리 매일 밥을 먹으며 가족과 부부와 동료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 관계에서 권태는 위험하다. 그렇다고 화려한 연예게를 살아가는 사람도 아닌데 감정이 요동치는 환경에 무작정 몸을 맡길 수도 없다. 문학은 감정을 환기시킬 수 있는 객관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중요한 답변이다. 책은 왜 읽을까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다. 문학은 나에게 삶과 관계의 권태로부터 자유로와지는 수단일까? 생각을 풍성하게 하는 문학적 텍스트가, 현실적 삶과 관계맺기에서 권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흠 더 생각해보자.


작가 김형수는 실천 문학을 하게 되었던 자기 고백을 풍부한 감성적 언어로 시작하여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를 했고, 책은 강의 내용 그대로 인쇄되었다. 예비 작가들을 위한 책이지만, 그 예비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작가적 가치관과 언어와 문학의 본질에 대해, 진솔하게 안내한다. <고종석의 문장>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보았지만, 자의식과 언어의 아름다움과 같은 서정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이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 암울한 시대를 만났을 때의 지식인의 양심적 선택은 불가피하다. 그가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 시인이자 논객'이라는 점을 믿을 수 없을만큼 작가의 언어는 잔잔하고 맑다. 


문학을 공부할 목적이 아니라, 문학을 이해할 목적으로 읽었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라는 제목이 끌렸다. 문학이 예술을 전하고자 했다면 문학적 코드를 최대한 수용하기 위해 문학에서 사용하는 전문 코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알려주었다. 문학적 코드라는 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각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이해한 그 마음은 다시 또 '명명'되었을 때 또다시 예술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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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5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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