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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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단순히 저주받은 기억력을 보완하는 차원의 기록에서부터였지만,  글을 쓰는 일은 가끔 공적인 영역과 만난다. 꼼꼼히 읽어주는 이웃도 있고, 우연히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다니다가 읽게 되는 익명의 네티즌도 있다. 이런 책을 집어 들었다고 하면, 오탈자와 비문이나 한 번 더 손보지라고 비웃을 사람도 있다. 어쨌든 막연히 이제는 좀 제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생기자,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잘쓰려니 잘 안된다. 대충쓴다고 잘되는 건 아니다. 뭘하든 시간을 투자하면 투자한 것 만큼은 성과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공들인 시간만큼 늘지 않는게 글쓰기다. 인터넷 글쓰기는 글이라기 보다는 말에 가깝다는 저자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책에 대한 기록이니만큼 책의 상징성을 훼손하지는 않는 차원의 글쓰기를 위해 답보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발상에서 글쓰기 관련 책들을 침대 옆에 쌓아두었다. <고종석의 문장>도 그 중 하나다. 강연 예약을 개시하자마자 순식간에 마감된 숭실대 강연을 그대로 녹취해서 인쇄한 책이다. 붓끝이 아닌 혀끝에서 나온 문장인데도 탈고를 거듭해서 잘 편집된 책처럼 문장이 유려하다. 문어체가 친근하게 느꺼진다. 글쓰기 강연인데 재미있는 읽을 거리와 인문학적 성찰이 넘쳐난다.

 

 

1. 글을 왜 쓸까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글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정의했다. 작가는 첫 장에서 오웰의 글쓰기 동기 네 가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첫번째 동기는 이기심. 돋보이고 싶은 욕망이다. 두번째는 미학적 열정이다. 어떤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그것에 대해 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다. 여기에는 언어 자체에 대한 아름다움도 포함된다. 황현상의 산문이나 에밀 시오랑의 에세이는 형태적으로나 혹은 견고함에 있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글들을 쓰는  사람들은 언어를 조탁하면서 미적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역사저 충동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망을 뜻한다.  마지막은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이다. 이것은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오웰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걸 감수하면서도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미학적 열정을 버린 사례를 당시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과 함께 감명깊게 강의한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 되어 있었던 때였다.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더블 인용 25

오웰 자신은 천성적으로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오웰이 살았던 시대가 양심적 예술가에게 정치적 목적을 지닌 글을 강제했기 때문이라고 고정속은 결론내린다.  비슷한 예로 지금은 이상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시인 김지하의 예를 들었다. 김지하 역시 등단 당시 전형적인 서정 시인이었는데 박정희 정권을 겪으면서 시대에 흡수되어 정치시인이 될 수밗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 자신의 저서이자 강의의 교정 교제로 사용한  <자유의  무늬> 역시 세상사람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꾸려는 욕망 때문에 쓴 글임을 고백한다.

 

나의 글쓰기는 오웰의 정의에 해당되는 게 없는 것 같지만, 굳이 따진다면 세번째 목적, 기록에 가까운 것 같다. 사실을 기록하기 보다는 책에 대한 감상과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처음 시작할 때의 목적에 가까왔다. 최소한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정도는 기록할 목적이었는데, 좋은 책을 많이 접하다 보니, 읽은 내용과 책을 통해 얻게 된 성찰과 사유가 휘발되어 버리기 전에 내 글 속에 내 언어로 가두어 놓을 작정이었다. 왜 쓰는지, 어떻게 쓸 것인지, 계속 쓸 것인지는 더 생각해보아야 할 듯하다. 어떤 이유가 되든, 또 어떤 국면으로 글쓰기 작업이 전환되든 이쯤 해서, 글쓰는 것에 대한 제대로된 기반 지식을 확보해 두어야 하겠다.  

 

2.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계속 써야 한다. 필사는 도움이 안된다. 좋은 글을 많이 읽는다.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인상적으로 쓴다(세계를 매혹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서문 첫 문장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처럼 인상적인 첫 문장이 중요하다). 한국어답게 쓴다. 외국어 번역체를 흉내내지 않는다. 문장을 간결하고 기품있게 유지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자신의 글 <자유의 무늬>를 교재로 나쁜 문장을 좋은 문장으로 고쳐가면서 이론과 실제를 병행한 수업이 이어진다. 글(강의)의 내용은 글쓰기 자체의 실용적 목적에서 조금 벗어난 얘기도 있다. 그런 부분은 글쓰는 것의 근본 재료인 말, 한국어, 그리고 언어와 문자에 대한 이해와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한국어답게 써라

한국어는 다른 자연언어에 비해 음성상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의성어 의태어가 특히 발달한 언어다 외국어에 의성어는 제법 있어도 의태어는 찾아보기 어렵다. 허우적허우적, 너울너울, 둥실둥실 같이 모양이 연상되는 의태어를 외국어로 어떻게 옮길까. 한국어는 자연언어 가운데 색채 언어가 가장 발달한 언어다. 저자가 사전에서 찾아본 바에 의하면 붉은색에 해당하는 단어만 해도 60개나 가까이 된다. 영어나 불어에서는 고작 두 개다. 따라서 음성 상징과 더불어 색채 어휘를 풍부하게 사용하는 것은 문장을 한국어답게 만든다. 한국어에 의태어 의성어 색채 언어에 관심이 있고 글의 적절한 자리에 사용하면 생동감 넘치는 한국어 문장을 짤 수 있으리라는 것이 고수의 충고다.

 

번역체 느낌이 되는 말을 쓰지 않는다..  '~적''~적인', '~의'는 일본어에서 왔다. 빼도 말이 되면 뺀다. ~에의~로의 같은 겹조하는 절대 쓰지 않는다. '~하고 있는'과 같은 현재 진행형은 번역체 느낌이 나므로 쓰지 않는다. 대과거, 과거완료 ~있었다라는 표현도 쓰지 않는다. 있다로도 충분하다. 수동형태 표현은 되도록 피한다. ~화시키다~하다로 무조건 고친다.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 명사는 한국어답지 않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두 개의 구슬''구슬 두 개'가 자연스럽다. 또한 한국어에서 수는 하찮은 문법적 범주다. 복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면 ~들을 뺀다. 특히 한국어서 들은 주어가 복수이면 문장의 아무데나 갖다 붙여도 된다.  

 

한국어는 격조사가 있기 때문에 성분의 위치를 비교적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이 가'와 '을,를' 붙이면 아무데나 끼워도 주어 목적어가 된다. 주어와 서술어의 사이, 또는 목적어와 서술어의 사이가 가까운 것이 좋다. 문장 성분들이 어디에 걸리는지 명료하지 않으면 뜻을 이해하기 힘들므로 목적어와 동사를 너무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 사이 부사어가 너무 길게 끼면 그 부사어를 앞으로 뺀다.

 

■간결하게 써라

저자는 어떤 조사든, 주격 조사든 목적격 조사든 보조사든 빼도 의미를 흩뜨리지 않는다면 빼라주의이다. 간략함, 간결함이 좋은 문장의 미덕이다 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니까', '그러나'와 같은 접속 부사를 많이 쓰는 이유는 이걸 넣어야 논리적으로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데 쓰지 않는게 간결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어떤 긴장감이 생긴다. 관형사 '그' 역시 없으면 말이 통할 때에는 뺀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글에서 '개인적으로'는 쓸 데 없는 말이다. '거기에', '여기에'는 부사이므로 거기, 여기로 고친다. '역시도', '아마도'도 '역시', '아마'로 고친다.  '~한 것이다', '~한 일이다', 라는 말은 되도록 안쓴다.  명사 뒤에 붙는 '동안'은 어색하다. '~에 대한'도 구질구질하다고 말한다.

 

'~로서'는 자격을 뜻하고 '~로써'는 수단이나 방법을 뜻한다. 그런데 '~로써'는 무거운 느낌을 준다. '~함으로써'와 같은 말은  제1부사형 '~하여' 로 고친다.

 

■기품을 유지해라

글을 잘 쓰려면 글의 재료가 되는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가용 어휘가 모자라면 표현이 풍부해질 수가 없다. 어휘를 늘리는 방법 하나는 사전을 자주 들춰보는 일이다. 유의어 사전, 반의어 사전, 연관어 사전을 이용한다.

 

죽은 사람에게는 '씨'를 붙이지 않는다.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들 뒤에도 '씨'를 안붙인다. 이것은 기자들의 관습이다. 예술비평이나 문학비평일 경우에도 씨를 붙이지 않는다.

 

대립되는 두 소재에 대해 글을 쓸 때는 비슷한 분량으로 균형을 맞춰 글의 짜임새를 준다.

 

문장의 기본 법칙이다.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쓰지 않는다. 비슷한 조언들이 더 있다. '진부함과 상투성에도'처럼 비슷한 말을 거푸 쓰지 않는다. '그렇게 철없게'처럼 끝이 비슷비슷하게 끝나는 말을 반복하지 않는다. 글이 추례해 보인다.

 

긴장감을 유지하여, 문법적으로 틀린 말을 쓰지 않는다.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는 오문이다. '때문이다'와 호응할 수 있는 것은 '왜냐하면'이다. '이유는'을 쓰려면 '이유는 ~에 있다.',' 이유는 ~한다는 사실이다'로 써야 한다.

 

그 밖에도 기품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격앙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지 않는다. 그 예로 <자유의 무늬> 중 "그래도 지금 이 글을 쓰는 기분도 더럽기 짝이 없다"를 들었다. 이런 글을 쓰셨다니 고종석님 웃기기도 하고 귀여우시다.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글을 쓸 때에는 주인공과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를 잘 구별해야 한다. 사람 이름을 언급할 때, 익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소개를 해줘야 한다. 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유지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이주노동자로 하는 것처럼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말을 버리고 중립적 또는 공정적 뉘앙스를 담은 말을 쓰는 것이 글쓰기의 정치적 올바름이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기 위해 글의 결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저자의 융통성이다.

 

3. 많은 사람이 걸으면 길이 되고,

많은 사람이 말하면 표준어가 된다. 저자는 말의 자기 변화에 대해 시종일관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SNS 언어는 사용자들끼리 유대감을 드러내기 위해 그 바깥 세상의 규율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위해 생겨났고 일종의 파롤 역할을 하면서 한국의 진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한자어와 외래어의 사용에도 저자는 융통성있는 사용을 권하는 주의다. 말은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문법학자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여러 분야의 다양한 말들의 유입이 언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저자의 입장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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