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 유년의 상처를 끌어안는 치유의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른들은 스스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때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는 어른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순응한다. 어리고 무기력하게 때문에 어른들에게 의지하고 어른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무능이 인격이 없다는 것은 아니란 걸 어른들은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를 소유할 수는 없다. 아이의 영혼은 아이의 것이고, 그것은 앞으로 앞으로 부모의 품을 떠난 후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살아 가는데 필요한 자양분을 담고 있어야 한다. 부모가 대신 살아 주지 않을 인생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가 죽을때까지 살아서, 모든 것을 참견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른은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만 한다.

 

또 하나 아이들이 한꺼번에 많이 뭉쳐 있다고 해서, 그들을 개별적으로 독립된 개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군집명사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여객선에서 하하호호 떠들고 웃고 장난치는 바람에 승무원들에게 조금 시끄럽고 조금 성가신 존재들이었다 해도 그들이 그런 취급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도 신뢰할 수 없다는 신념 체계는  어린 시절의 폭력, 학대, 정신적 가해, 끊임없는 조롱, 심한 벌 등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신념 체계는 타인을 불신하여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다. 성인의 우유부단함은 어릴적 부모의 과보호에서 기인한다. 부모가 아이의 능력을 개발하고  독립된 존재로서 살 수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 자신의 무능력을 방패 삼아 의존적이 되거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된다.

 

관심을 갖지 못한 채 자란 아이는 사랑이나 협력 같은 우호적인 힘이 없다. 어린시절의 정서적 결핍은 공허감을 발생시키고 이로 인해 성인이 되었을 때에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요구와 집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릴때 마땅히 받아야 할 배려, 친절, 존중을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람은 치명적인 방법으로 그 감정에  익숙해져서 스스로를 다른 사람한테 중요한 존재가 아니어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함정에 거듭 빠지게 한다.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고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이 욕구를 누르고 책임을 떠맡고 상대를 위해 헌신한다. 그 결과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고 자기의심, 자기 비난, 우울증, 심신질환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뇌과학적으로도 어린 시절의 상처는 각인된다. 어린 시절의 좌절은 감정 조절과 학습 능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변연계의 발달의 부정적 영향을 미쳐 문제해결 능력이나 스트레스 극복을 어렵게 한다.  그 상처는 치유되었다 하더라도 훗날 인생의 어느 시점에 다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캐나다의 과학자 야콥스와 나델에 의하면 어린시절에 느낀 불안함은 저장되고,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의식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겪은 불안감이 의식의 표면 밑에 숨어 있다가 강한 부담감이 통제력을 약화시킬 때 다시 나타난다.  그들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 후의 전 학습과정을  조정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한다.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는 생물학적으로도 흉터를 남긴다.  혈중 특정 바이러스 항체가 정상인보다 많아져서 장기적으로 면역 체계를 약화시킨다는 라이프치히의 연구 사례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반대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발달심리학자 로렌스 콜베르크는 한 살 때 겪은 경험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대체로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어린시절의 경험이 향후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론들. 이젠 상식이 된 사실들.  하지만 안타깝다. 내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 내 아이의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 내 아이가 어릴 땐 몰랐던 상식들. 설사 알았다고 해도 하루 하루 반복되는 삶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무시되었을지 모를 심리학적 이론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 잘 해 낼 수 있을까. 하루 하루 너무 빨리 자라, 매일 달라지는 내 아기의 모습을 자다 깨서 들이다 보고 한 순간만 존재했던 그 찰라적 모습들을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와 했던 나의 예쁜 아기에게 나는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을까. 앞으로 혼자 살아가게 될 많은 날들. 아이의 삶을 지탱할 반석을 어떤 색깔과 단단함의 구조에 세워 올려  놓았을까. 만일 지금 시간을 되돌린다면 조금 달라질까. 그렇다고 해서 그 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었나. 더 알았던들 더 잘 했을 보장도 없지만 궁금하다. 아이야 너의 어린 시절은 어땠니. 혹시 너의 미래, 너의 현재, 그리고 너의 행복을 방해할 상처나, 불충족을 가지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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