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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 하버드대 박사가 본 한국의 가능성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그리 멀지 않은 과거, 한국은 강대국의 틈 사이에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변방의 한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외국에서 어쩌다 Korea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베트남을 전쟁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한국을 전쟁으로 기억했다. 못살고 못입고 못먹는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입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던 나라로 각인된 기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외국인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같은 세기 동안 한국은 큰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리는 한류라는 거대한 흐름에 때로 자만함과 의아함 섞인 자조를 발견한다. 새로운 패션, 새로운 도시, 새로운 집, 새로운 길, 새로운 문화, 새로운 제도, 우리가 5000년 동안 세대와 세대를 통해 전하고 받아서 다시 전해온 것들은 멸시와 천대 속에 빠른 속도로 사라졌고, 언제든 부수고 새로 만들 수 있는 윤나고 반짝반짝하고 편하고 가벼운 것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발전이라고 불렀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은 예일대에서 중문학 학사, 동경대에서 비교문화학 석사, 하버드에서 동아시아언어문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으로 현재는 경희대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한국어에 능통한 분이다.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의 아내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고 있으면서, 매운 음식도, 불고기도 싫어하며 한류의 핵인 아이돌의 노래도 모르고 드라마도 보지 않는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한국적인 것,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리고 점점 더 빠르게 사라져가는 한국적인 것을 발견햇고, 그것을 사랑한다. 이 책은 이만열이라는 한국식 이름까지 가진 저자의 한국에 대한 생각을 적어 놓은 책으로, 책의 전반에 걸쳐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명확하다. 한국의 전통적인 것으로부터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찾고 세계로 도약하자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존경과 감사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샘해밍턴처럼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고 한국 문화를 사랑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에서마저 외면하고 버려지는 한국적인 전통을 찾아 연구하고 이것을 다시 현재의 한국적 현실에 적용하고 발전시키자고 제안하는 만큼의 애정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에서 기초한 깊은 애정을 그의 글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예로 한국 홍보의 핵심 개념으로 선비 정신을 추천하고, 세계와 인간을 읽는 틀로서 주자학을 바탕에 둔 소박하고 검소한 전통적 사상을 한국적 삶의 가치로 삼고 극도의 소비 문화와 환경 문제를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없어져가는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 새마을 운동과 함께 없어져 간 수많은 그 푸근하고 애틋하고 소박하기 짝이 없는 초가 지붕의 시골 집들은 대체 그걸 없앤 사람의 딸이 지배를 하는 이제는 부자가 된 이 시점에서 그것의 대대적인 몰살에 대해 그 누구도, 아쉬워하지도, 책임을 지려 하는 사람도 없다. 이만열은 그렇게 한국인이 잃어버린 것들 값싸고 인스턴트적 직각의 생활공간과 무비판적 서구문화 추종으로 인해 버려진 수많은 한국적인 것들이 사실은 더없이 훌륭하고 가치있고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 주요 문화 유산임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공기와 물의 원활한 흐름과 자연과의 조화와 배치를 분석하는 풍수지리를 하나의 미신으로 치부하지 않고, 생태도시의 롤모델이자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주요 문화자원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우리가 오래 전에 버려 버린 한국적 문양, 자개와 목조 공예를 새로운 디지탈 기기들의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나는 누가 한 나라의 문화와 속성에 대해 자신이 가진 약간의 경험을 토대로 일부를 전체로 일반화시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이러니 저러니 떠드는 것을 아주 경멸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대체로 내가 평소에 나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것들과 비슷하다. 다만 그가 제시하는 세계는 더 넓고, 한국인이 갖는 내 애착보다 더 크고,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다. 부끄럽지만, 저자가 여러 번 책에서 지적했듯, 외국인이 한국에서 오래 살면서 함께 일하고 대화할 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고 그 문화와 사회 전반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걸 신기하게 여기는 것 또한 잘못된 편견임을 스스로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