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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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sZBKer6PMtM

 

 

이 동영상을 보고 당신은 무엇이 생각났는가. 세 개의 기하학 도형이 만들어내는 어떤 수학적 혹은 물리학적 공식이 생각났는가? 그럴리가. 혹 그것들을 의인화하여 생명을 불어 넣고 스토리를 짜 맞추며 감정과 영혼을 재단하지는 않았는가? 아마도. 대다수는 후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은 두 개의 세모 한 개의 동그라미가 시뮬레이션한 장면을 본 사람들의 상상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스토리의 가지수는 아마도 무한할 것이다.

 

아무 패턴도 없는 임의의 문장이나 사건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이것을 짜 맞추어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심리학자  하이더와 지멜은 피험자들에게 세 개의 기하학 도형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사각형과 함께 움직이는 동영상을 보여준 후 방금 본 것은 묘사하게 했다. 피험자 114 명 중 3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이 영혼 없는 도형에게 생명을 불어넣고는 문을 쾅 닫고 구애의 춤을 주고 공격자를 물리치는 등의 비합리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셜록 홈즈가 상대방의 옷차림이나 손에 낀 반지 같이 아주 평범한 , 즉 수십만가지 추측이 가능한 애매모호한 단서로부터 확신에 찬 추리를 하듯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주변의 모든 사물로 받아들이는 자극을 단서로하여 풍부하고 확신에 찬 이야기를 지어낸다.

 

우리는 이야기의 부재를 견딜 수 없어 한다. 고작 열줄짜리 노랫말에서 주마등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스케치하고  무의미한 몽타주 몇 장에서도,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무작위의 문장 몇 개를 늘어놓아도 거기서 열렬히 이야기 구조를 부여하려 한다. 먼 옛날의 희미힌 기억, 꿈속에서 보았던 몽롱한 이미지, 주어진 단편적인 단서들만을 가지고  프레임을 세우고 나머지는 오로지 상상력에 의존하여 프레임 사이를 빽빽히 메꾸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거짓밀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저자는 기억과 거짓말, 음모론 등의 동작에 관여하는 뇌의 작용을 진화론적으로 접근하여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성이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탐구한다.

 

이야기의 원천은 상상력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 속에 갇혀 있지만 상상력은 그것을 마음껏 뛰어 넘는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실제로는 좁고 편협하고 답답하지만, 상상력을 불어넣는 주변의 수많은 스토리텔링 환경 속에서 자유로이 넓고 무한한 세계를 넘나든다. 그런데 그 무한한 세계는 또다시 뇌라는 아주 작은 물렁물렁한 덩어리의 각 부분과 화학작용과 전달물질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는 인간의 무한 상상력의 세계를 이야기라는 주제에 담아, 생물학, 심리학 신경과학을 동원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용어나 학술적 주제를 담지는 않았다. 쉽고 재미있게 다루어진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 광고에서 심지어 노래가사까지 모든 스토리들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책을 통해 그것의 실체에 대해 접근하고 탐구하는 재미는 책읽기의 기쁨을 극대화시켜주었다.  

 

스토리텔링은 스포츠 경기와 광고 리얼리티 프로그램 MMORPG 게임 등 모든우리의 일상에 깊숙히 침투하여 있다. 제품과 브랜드에 대해 감동적인 서사를 만들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재판 과정에서도 감동적 스토리텔링 연출이 배심원들의 심금을 울려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낸다. 이야기를 만들고 소비하는 인간의 충동은 문학, 영화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잠재한다. 저자 조너슨 갓셀은 스토리텔링 본능을, 소설, 영화, 드라마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소꿉놀이, 밤마다 기이한 스토리를 생성해내는 꿈, 코르사코프증후군과 같은 정신질환, 실제 사실과 상상을 연결해서 현실적 설명을 만들어 내는 음모론자들, 인간의 거짓 기억이 만들어 내는 자기 합리화, 초자연적 존재에 기대는 모든 종교와 신화, 심지어 국가의 탄생 신화 따위를 교묘하게 조작해내는 역사교과서 등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 찾는다. 그런데 이 모든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저자말에 의하면 말썽이다. 우리가 오래전 국어 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소설의 '갈등'처럼 말썽은 모든 스토리텔링의 기본 문법이다. 그래서 갓셀은 스토리텔링의 기본 문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야기 = 인물 + 어려움 + 탈출시도.

 

즉, 이야기는 희극적이든, 비극적이든, 낭만적이든 거의 예외 없이 문제가 있는 사람(혹은 의인화된 동물)이 무언가를 바라고, 그 주인공과 그의 소원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장애물을 극복하고 소원을 이루려고 애쓰며 그 과정에서 대가를 치르는 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진부한 스토리텔링 규칙이 벗어났을 때, 그것은 재미없어진다. 그 중에서도 말썽 즉 어려움은 아이들의 흉내놀이, 픽션, 꿈의 환상 등 모든 종류의 스토리텔링 본성을 하나로 묶는 굵은 실이며, 이 모든 활동에 삶의 문제에 대처하는 연습을 해명하는 단서라는 것이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 중 하나다.

 

픽션을 경험할 때 우리의 뇌는 실제로 맞딱드리는 상황처럼 작동한다. 즉 실제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뇌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대하는 사람의 뇌가 거의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 속 아슬아슬한 장면을 보면,  모두가 똑같이 소리 죽여 긴장하고,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에는 똑같이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픽션의 진화적 기능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삶의 거대한 딜레마를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라면 픽션을 많이 소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회 활동에 더 능숙해야 한다. 92-93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이 논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보다 사회성이 뛰어났다. 결국,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 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현실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체를 본 후, 감동에 젖어 비뚤어진 민족관을 형성하게 된 히틀러의 사례를 보면서, 편협된 픽션의 세계가 어떻게 한 인류와 역사에 치명적인 해를 입혔는지의 예를 보인다.

 

사람들은 출판업계가 겪고 있는 종이 책의  불황을 단순하게 픽션, 이야기, 꿈이 사라지는 현상으로 보고 애통해하고 있지만 저자의 생각은 이와 반대이다. 글자를 통한 픽션 역시 인류 역사에 있어 약 몇백년정도라는 아주 극히 일부분 내에서 전성기를 차지하였다가 이제 그 자리를 미디어, 멀티미디어와 게임과 같은 양방향의 스토리텔링 시대에 넘겨주게 되었을 뿐, 스토리텔링이라는 본성은 결코 절대로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고대 중세를 넘어 인쇄술이 발전되기 전까지도 샤먼, 이야기꾼들과 같은 형태로 스토리텔링 미디어는 존재했었고, 단지 최근까지의 대세가 소설적 형태를 띈 픽션에서 영화와 드라마와 게임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뿐이다. 

 

가상세계의 스토리텔링은 우리, 아니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이다. 아마도 우리의 아들 딸들은 이미 그 자신이 스스로 생성한 캐릭터와 모험들로 가득찬 가상 세계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자아를 만들며 수만, 수십만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을 써나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MMORPG 플레이어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서 "절반 가량이 게임 안에서의 교제가 가장 만족스럽다고 답했으며, 20퍼센트는 MMORPG 세계가 진짜 집이고 지구는 "가끔" 들르는 곳에 불과하다고 답했다"는 사실은 묘한 흥분감을 준다. 우리는 지금 인류의 대전환 시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현재의 인간은 실제 세계에서 점점 가상의 공간으로 이동중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먹는 것과 싸는 것이 과학적으로 해결된다면 모두들 매트릭스 영화처럼 어떤 기계앞에서 뭔가를 잔뜩 뒤집어쓰고 평생 가상 세계속을 살다가실존적 삶과 죽음의 순간만을 이쪽 생에 의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

 

혹자는 MMORPG가 현대 사회에서 소외감을 키운다며 비난을 일삼는다. 하지만 가상 세계는 소외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소외에 대처한 결과에 가깝다. 가상 세계는 현대 사회가 앗아 간 것을 우리에게 돌려준다. 가상 세계는 중요한 측면에서 현실 세계보다 더 진짜배기로 인간적이다. 가상 세계는 우리에게 공동체를, 자신감과 자존감을 돌려준다. 235

저자는 책 말미에 정말 두려운 것은 이야기가 미래에 인간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인간이 처하게 될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을 버려두고 스스로 생성한 캐릭터로 신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면, 설사 그것이 이야기 속이 되었든 변형된 형태의  MMORPG가 되었든, 저자 스스로도 인정했듯 그것이 소외를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면 그래서 모두모두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해진다면 그것이 설렬 가짜일지라도 두렵기보다는 흥미로움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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