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식탁 -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권지현 옮김 / 판미동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아이들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미래의 어떤 세대를 그린 영화다. 원인 모를 불임이 전세계에게 닥친 것이다.  어떤 이유이에서건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세계는 카오스 그 자체이다. 책을 읽으면서 환경의 오염으로 인한 재앙의 그 실제를 확인하면 사실 그런 종류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허구 속의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다국적 대기업의 이윤에 기생하는 과학자의 양심이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탐욕스런 자본주의는 멈출 줄 모른다. 멈추려 속도를 낮추는 순간 두려움은 곧바로 파멸과 이어진다. 우리가 지금만큼 파괴하며 살기 전의 어느 세대로 돌아가더라도 그 파괴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삶이란 인간에게 얼마나 척박한지  상상할수도 없고 어쩌면 살아남을 수도 없을 지 모른다.  시간여행이라는 허구 속의  모험은 단지 상상속에선 달콤한 로맨스일뿐이다..그 로맨스 속의 불편함에 현대 인간은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어떤 환경적 재앙 앞에 기업과 정부, 단체들이 신처럼 받드는 믿음은, '얻는 이익'이다. 예를 들어 일일섭취허용량이라는 것의 개념은 실제 인간에게 위험한 리스크의 범위를 나타내는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규범적이며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개념이다.  허용범위의 개념 뒤에는 얻는 이익에 비해 리스크를 허용할 만한가가 항상 숨어 있고, 그 화학물질을 사용해서 이익을 얻는 쪽은 소비자가 아닌 기업이다.

 

미국 의학 드라마 닥터 하우스(House MD)는 환자에게 닥친 질병의 원인을 알아 내기 위해 환자의 몸에 차가운 기계 와 주사바늘을 들이대는 대신 수련의들을 환자의 집으로 보내 집안 구석구석을 탐정처럼 조사한다 . 하우스의 의료 팀들은 냉장고 속과 욕실의 약품 선반, 그리고 청소도구함에서부터 쓰레기통과 배수구까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진다.  또한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 친구들과의 면밀한 인터뷰를 통해 그가 방문했던 나라, 그의 행동 습관과 환경을 조사해서 병의 원인과 병명을 규명해 낸다. 병은 먹은 것, 공기를 통해 들이 마신 것, 생활을 통해 만진것 , 여행한 곳에서 옮겨온 것 , 그리고 가족력에서 기인한다는 아주 일반적인 상식을 이용해  범인을 잡듯 병의 원인을 잡아내어 치료방법을 적용하는 매우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무리 꿀같은 의료보험 혜택이 주어진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일 듯하다.

 

18C  산업 보건 의학의 선구자 이탈리아의 베르나르디노 라마치니는 환자를 만났을  때 맥박을 재기 전 환자의 직업은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그의 저서 <노동자의 질병>에 전하고 있다. 오늘날 산업사회가 시작된 이래 질병의 원인이 작업장 환경에서 기인하는 경향이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특정한 화학물질의 장기간의 노출이 특정암, 파킨슨병, 신경정신병, 면역체계이상 등을 유발하는 사실을 누가 왜 어떻게 은폐하고 그러한 직업병을 가진 사람들을 기업과 국가와 단체는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에 대한 적나라하고 방대하고, 신뢰성있는 고발 내용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일일섭취허용량은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어떤 절대적이고도 과학적인 기준이라는 권위를 부여받아왔다. 세계보건기구니 미 유럽의 식품위생국이니 하는 선진국과 국제 단체들이 어련히 알아서 인류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가 되지 않도록 일일섭취허용량을 정했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 책을 읽기 전 나와 같은 우민의 전형적인 믿음이었으니 말이다. 일일섭취허용량은 누군가가 창조해낸 블랙박스라는 사실이 책의 한 파트를 통해 샅샅이 해부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두렵고 고통스럽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동물들이 '겉으로 보기에' 아무 효과를 일으키지 않을 때까지 2주에서 2년까지 일정 농도의 독을 섭취시키고, 관찰한 후 그것을 무독성량으로 정하고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하기 위해 10에서 100 혹은 1000까지의 계수를 아무렇게나 적용시켜 나눈다. 그 '아무렇게나' 결정되는 계수는 순수하게 결정권자의 상상력에 의존된다. 그러니까, 일일섭취허용량은 기업들이 맹독성 화학 제품들을 팔기 위해 고안해낸 허구이다.  실제로 아스파탐의 경우 일일섭취량을 훨씬 못미치는 양을 섭취해도 광범위하고 심각한 질환을 보이고, 임산부를 통해 아이의 혈액에 침투해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암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슈퍼마켓의 진열대에 가득찬 식품의 포장에는 깨알같은 글씨의 식품 첨가물이 수십가지씩 적혀져 있다. 이제 우리는 먹는 것에 대해 어떤 기준에 의지해야 할까.  

 

죽음에 이르는 위험한 독성 화학 물질이 해충방재를 위해 농약을 치는 농부들과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서 시작하여 먹거리 전반과 일상 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게 되는 것을 묵과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게 된 지금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독성화학물질의 연구 자금과, 역시 기업의 인사들에 의해 좌우되는 각종 보건단체들에 또다시 나, 내가족, 내 아이의 생명을 맡기고 있는 현실이다. 목적이 이윤인 기업의 돈으로 움직이는 구조에 고스란히 인류의 생존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국제잔류농약전문가그룹과 같은 대표적 국제 전문가 그룹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받고 일하고, 기업에게 유리한, 근거도 없고 조작된 보고서를 대량 생산 생산, 인용하여, 무에서 유를, 엉터리 주장에서 학술적 진리로 탈바꿈시키고, 영업비밀이라는 방침아래 원데이터소스는 공개하지도 않는다. 기업에게 불리한 주장을 하는 일부 과학자들은 정부 기관을 통해 해고와 위협을 당하고 기업의 대변인들은 승승장구 다시 국제 기관의 핵심 위원으로 회전문 인사에 위촉되는 일이 세계의 건강을 책임지는 쪽 사람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독성 화학 약품과 환경적 재앙을 피해 과거로 돌아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그 편리함의 댓가로 맞바꾼 것은 아이러닉하게도 죽음이다. 편리함을 생산하기 위해 독성 화학물질이 노출된 작업장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 독성 화학물질을 뿌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 근거도 없이 화학물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편리하게 조작된 일일허용기준에 적합 판정을 받고  당당하게 식탁에 오른 먹거리와 미실거리들, 세계 유수의 화학 업체들과 화학 독성학 전공 과학자들의 만성적인 유착 관계는 죽음을 앞당기는 독극물의 오염을 가속화시켰다. 획기적이고 선구적인 암 치료법이 꾸준하게 개발되고 있지만, 산업화 이후 급작스레 많아진 암 유병률은 계속 증가했고, 60세 이상의 나이가 되면 모두들 한줌의 약을 끼니때마다 먹어야 하는 게 표준인의 삶인 것처럼 만성적인 질병이 골골백세라는 사회 현상을 설명해주고, 정부가 나서서 인공수정을 지원해줘야 할 정도로 불임률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농약은 인류 역사상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기 파괴적인 발명품이다. 인간이 다른 생물체를 해 하거나 죽이기 위해 만들어 꾸의 적으로 자연애 방출한 유일한 화학 제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거다.

 

해충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되는 농약 중 목표물을 공격하는 양은 0.1%도 안된다 99.9% 이상이 환경에 머물며 국민 건강을 해치고 생태계의 토양, 물, 대기를 오염시켜 유익한 비오토프를 파괴한다 . - 데이비드 피멘텔. 미국 코넬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153

 

LD50은 노출되는 동물의 반이 죽는데 필요한 화학 물질의 양을 측정하는 독성 지표로 화학 물질의 질량을 노출된 개체의 몸무게로 나눈 값  mg / kg으로 표시 한다. Ld50이  5mg/kg 이하인 고체 화학물질 20이하인 액체 화학물질 지극히 위험한 물질로 간주 된다 비타민c는 11900. 소금은 3000 청산가리는 0.5 ~ 3, 다이옥신은 0.02다. 독일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주입했던 치명적인 독가스,치클론B의 ld50은 1mg/kg이다. 이 유태인을 죽인 독성 물질이 곡물 종자를 처리하고 저장 곡물을 보호하기 위해 1997년까지 쓰여져왔다. 과학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독성 지표는 탐욕스런 기업 논리에 편리하게 이용된다. 기업들은 소금도 많이 먹으면 반쯤 죽는다는 이러한 논리를 확장하고 왜곡하여 독성 식품에도 섭취량에 못미치는 양을 먹으면 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신뢰성 있는 자료로를 충분히 납득 가능할만큼 지면을 아끼지 않고 조목조목 설명하고 따지고 해부한다. 저자의 지칠줄 모르는 탐구 정신으로, 우리의 식탁, 우리가 숨쉬는 공기, 우리의 토양, 우리의 물을 화학적 근본 성분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탐욕스런 기업과 그에 결탁한 과학자들 이란 이름의 또다른 기업인들, 민간연구와 공공연구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기업과 한 번도 일한 적이 없는 전문가를 구하기 조차 불가능한 사회. 이런 것들을 면밀히 해부하고 나면, 배반감과 충격으로 치가 떨린다.

 

1부에서는 농약으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농부들의 사례. 다국적 화학기업과 이들을 옹호하는 연구자 집단의 검은 밀착 관계. 길고 지난한 과정의 법정 투쟁에서 농약 피해자들에게 들이대는 이중 잣대가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지시한 대로 적적량의 농약을 사용한 농부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수 배에서 수시배까지 특정암, 파킨스병, 면역 이상, 정신병 등에 걸렸다.  2부에서는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빼앗아간 많은 기업들의 독성 물질과 이들이 어떻게 독성물질이 파괴한 노동자들의 폐해를 은폐하고 조작하고 외면해 왔는지에 대해 다룬다. 3부에서는 아스파탐의 예를 들어 독극물 '일일섭취허용량'에 대한 과학적 사기극과 해결되지 않는 잔류 농약 최대 허용량에 대해 파헤친다. 여기서 예로들은 아스파탐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치가 떨렸다. 교묘한 방법으로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좋은 건강식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어놓은 기업 광고에 속아, 그동안 아무렇게나 마신 아스파탐은 일일섭취허용량보다 적게 섭취하더라도 매일 몇주간 계속 섭취했을 때 나타나는 변화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스파탐 섭취 연구에 자원했던 동료 의사에게 되돌아온 것은 실명이라는 무시무시한 결과였다. 연구는 중단되었지만, 보고서는 완성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기관은 아스파탐의 유해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스파탐은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그 상자가 열리면 시스템 전체가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반세기 넘게 적용되고 있는 규제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비스페늘 A도 마찬가지입니다. 425

 

기업이 돌아가는 전형적인 방식은 일단 화학자가 새로운 물질을 합성해서 시장에 내놓으면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물질이 초래할 수 있는 효과를 알게 된다. 이것이 기업이 돌아가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이 불활성물질이 아니라 천연 호르몬을 모방하는 합성 물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에스트로겐과 암과의 관계를 연구 도중 우연히 증식하는 암세포가 새로운 플라스크의 사용에서 비롯되었다는 우연한 발견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인류는 한꺼번에 그 부작용이 어떤 형태로 일어날 지 모르는 탐욕스런 기업의 마루타가 되어, 언제 어떻게 파멸을 맞게 될 지, 파멸보다 더한 고통에 몸무림치는 지옥 속에 살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칠드런 어브 더 맨>은 엉뚱한 무한 상상력의 결과에서 출발한 공상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미래의 어느날 실제로 닥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경고한 통찰력 있는 영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