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인류 3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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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도 인간을 닮은 예쁜 미니 인간들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어릴 적 나의 에마슈는 베르나르 베르나르가 창조한 것보다 훨씬 작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고, 시험을 볼 때 모르는 답을 알려준다거나, 혼자 있어 심심할 때 수다를 떨만한 천사 같은 수호신이자, 친구였다. 나에게만 필요했으므로, 한 명이면 충분했다. 나의 에마슈는 꽤 오랫동안 내 머리속을 굴러다니다가, 키가 더이상 안클 무렵부터 사라져갔다.  

 

이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소형 인간 에마슈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1편과, 2편은 전개에 불과하다. 에마슈들이 곳곳에서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고 변화해 가고, 하나의 시점을 갖는 인격체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여기부터 읽어도 괜찮을 듯 싶다. 처음 다비드 웰즈와 연구진들이 유전자 합성을 통해 만들어냈을 때, 그 숫자가 천명이었던 에마슈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번식이 가능해졌고 그 숫자도 5천을 넘기 시작하면서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을 마이크로랜드 내에서 학습하게 되고, 세계 곳곳에  인간을 위한 도구로 임대되어 활약한다. 문제는 그들이 인간이냐, 동물이냐, 물건이냐, 그들이 무엇이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도구화되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으로 임대된 에마슈들은 인간 사회 구석 구석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인간들에게 헌신적이고 복종적인 일꾼들이 된다. 그들은 대통령의 서재에서 하루 종일 책상 정리를 하고, 정교한 작업이 요구되는 외과 수술을 하는 등 활약이 눈부시다. 그러나, 어디에든 악인은 존재. 외과 수술의로 임대된 한 에마슈를 의사의 아들이 데려가 고문과 가학행위 후 서서히 몸을 난도질하며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중계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 일을 계기로 에마슈들에 대한 정체성 문제가 대두된다.

 

상냥하고 인간 친화적으로 인간의 일을 도와주는 에마슈들에게 막상 가혹행위와 살해사건이 일어나자 인간들은 이제 사건의 법적 적용을 둘러싸고 악마적 본성을 드러낸다. 에마슈의 가혹행위 및 살해에 살인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인간이냐 하는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만일 인간이라면 이제까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맞춤형 도구화 되어 있는 그들과 창조주로서 숭배받는 관계를 청산하고 동일한 인격체로 대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했다. 인류 역사를 볼 때 인간이 언제 이기적이지 않았을 때가 있었던가. 인간의 유전자가 흐르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에마슈들이지만 단지 애완용 장난감이자,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구일 때만 인류의 본성적 이기심을 충족시킨다.  따라서, 범죄자에게 살인죄를 물으려면 에마슈들은 인간이 누리는 기본적 권리를 부여받아야 되고 그렇게 되면 인간은 그들에게 의지했던 많은 편리함을 포기하고 그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150년 전 미국에선 목숨을 걸고 같은 종족인 인간 노예의 해방을 반대했던 인간들이 바비인형만한 소형 인간들에게는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까.

 

다비드 월즈는 에마슈의 인권을 지지해줄 단체들을 찾아 나선다. 그가 찾은 단체의 반응은 재미있다. 동물보호협회에서는 인간의 유기체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므로 동물들 대신 에마슈를 생체 실험에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지지를 거부한다.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찾아간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우리 인간과 동일 종이 되기 위해서는 성관계를 통해 혼혈의 자식을 낳을 수 있어야 한다며, 거절한다. 대안세계화 운동가들은 착취당하는 제3 세계 민중을 수호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므로 유사인간들을 지원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낭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자로서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찾아간 공산당 간부들은 애마슈들이 우리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위험하고 까다로운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에마슈들의 인권을 갖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이들 모두 정의와 인류 평화를 위해 설립된 단체들이지만, 협회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제3의 인류는 그들에게 외면의 대상이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 오스트리아 법정에서는  에마슈들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렌터카 와 유사한 임대물품의 훼손과 반환> 에 대한 범죄에 적용한다. 이런 일들. 판타지 속 인간으로 애지중지 아끼며 읽는 도중 잔혹 변태의 피해자로 묘사하니 작가가 밉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 심지어 노예제도 하에서의 인간은, 더 한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설상가상으로 중국에서 파견한 도둑들은 번식에 필요힐 남자 '씨에마슈' 3명을 훔쳐 임대 에마슈와 합체 자체 번식에 성공하고, 불법 복제를 통해 인위적 방법으로 속성 성장시킨 허약하고 질 낮은 짝퉁 에마슈인 샤오제들을 생산, 헐값에 시장에 내놓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 인구는 30만명. 이제 샤오제들은 100유로 안쪽의 헐값으로 각 분야로 팔려나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노예가 되었고, 에마슈를 만드는 다비드의 피그미 프로덕션은 샤오제들을 만드는 중국의 거대 기업을 상대로 불법복제 소송을 제기하지만 특허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 틈에 2편에서 도주했던 애마슈 109는 가학의 현장에 있던 동료 애마슈 10여 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소년을 살해하고 탈출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이 전세계 네트웍을 타고 인터넷 생방송으로 전파되고 있고 이제 피그미 프로덕션의 예마슈들은 인간친화적인 상냥한 도우미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개체로 낙인찍히기에 이르렀고 주가는 바닥을 친다. 많은 일들을 겪지만 에마슈 109와 동료들이 디스카운트 펫 샵에서 팔려 가기를 기다리는 샤오제들의 구출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에피소드는 또다른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대량 생산, 속성 성장하며 인간의 도구로서만이 자신의 정체성이 완성된다는 신념을 갖도록 세뇌당한 샤오제들은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원치도 않는 것이다.

 

- 우리보고 아무도 갖고 싶어하지 않는 샤오제가 된다는 건가요?

- 미안해요 우리는 자유를 얻기 보다 우리의 가치를 높여 줄 좋은 고객에게 팔려 나가고 싶어요.

- 나는 사무실 책상에 올라 가서 필기구를 관리하는 일을 하는게 꿈이에요.

- 나는 텔레비전 위에 올라 앉아 있다가 주인이 신호를 보내면 리모콘을 들고 달려 가는 일을 하고 싶어요.

- 만약 아무도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쓸모가 없게 되 잖아요. 296 297

 

나는 시키는대로 일하면서 살고 싶어요. 만약 내가 자유를 얻게 되면 하루하루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거에요. 그러면 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죠. 그보다 부르는 일이 또 있을까요 298

 

자유란 누군가에겐 목숨과 맞바꿀 숭고한 가치지만, 세뇌된 다른 이들에겐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내 고유 가치조차 무용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제 에마슈 109는 혁명가이다. 거의 속임수에 가까운 설득 끝에 펫샵을 빠져나온 샤오제들은 고객의 사무실이나 티브이 위에 앉아 장난감이 되는 대신 죽음과 맞서야 하는 많은 위협 앞에 한치의 앞도 알 수 없는 운명의 길을 걸어야 했다.

 

한편, 가이아의 회상은 선인류인 거인들의 멸망을 설명한다. 가이아(지구)는 혜성과의 잦은 충돌로 파괴될 운명에 처하자 자신의 창조물인 거인들에게 10배 작은 크기의 현인류를 만들어 핵폭탄을 실은 우주선에 태워 다가오는 위성을 파괴하는 임무를 맡겼었다. 그러나 우주선에 있던 현인류의 내분으로 지구에 다가오던 테이아 7의 파괴가 실패로 끝나고, 거인들의 섬 아틀란티스가 혜성과의 충돌로 사라질 운명에 처하자 가이아는 거인들에게 자신의 역사를 벽화로 남기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이로서 1편의 시작 샤를 웰즈의 아버지 애드몽 웰즈의 죽음이 인류가 가진 태초 문명의 수수께끼들의 실마리들을 제시하며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밝혀지는 순간이다. 세계 각지의 고대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피라미드, 신화의 유사성, 정교한 고대 벽화, 이런 모든 것들을 첨단 과학을 가진 8천년전의 선인류 거인의 존재로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로 맞추듯 하나의 그림으로 수렴시킨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너무 많은 지식의 전시를 즐기는 듯하다. 전체 스토리에 크게 영향을 주지도 않고, 딱히 어떤 장치로 쓰인 것 같지도 않은 채, 본문에 삽입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7은 소설 읽기의 집중을 방해한다. 그는 어느 일정 수준의 과학에 바탕을 두고 사건의 진행을 설명하고 묘사하다가, 막히면 그다음 부터는 상상력에 맡기는 선택을 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에마슈들은 단지 작기만 한게 아니다. 그들은 효과적인 면역체계와 방사선에 대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다. 난생 포유동물인 오리 너구리에 대한 연구로 알에서 부화하도록 설계된  에마슈들은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x선을 조사하여 알 속에 들어있는 애마슈들의 방사선 저항성을 생성시킨다. 처음에는  시험관 수정으로 성공한 에마슈들은 우리 너구리처럼 자연적으로 알을 낳고, 인공 부화 과정에서 다양한 처리를 해 저항력을 높인다. 다소 코미디 같은 엉뚱한 발상이다.  또한 한편으로, 치밀해야 할 에마슈들의 저항 장면, 전투 장면 등의 소설적 세부 묘사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허술하고 능청스럽게 넘어감으로써, 작가가 해야 할 고민을 독자가 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 인류가 수 세기를 거쳐 이루어낸 기술과 노력의 성취들을 한 명의 에마슈가 자기 글자 사이즈보다 10배 큰 글씨의 거인의 백과사전을 읽고 혼자서 맥가이버처럼 모든 걸 해결할 때에는 작가가 그럴 듯하게, 독자가 상상하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묘사를 해야하는데, 대충대충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리는 안일함이 이 거대하고 재미있는 플롯에 비해 아쉽다.

 

1편 2편을 뒤돌아 보면 태초 인간을 창조한 것은 인간보다 10배큰 거인들이었고 그들은 인간에 의해 멸망했고, 지금 인간은 다시 또 인간보다 10배 작은 소형인간을 발명해 그들의 신 노릇을 한다. 언젠가 소형 인간들은 다시 또 그들의 필요에 의해 그들보다 열 배 적은 정소영 인간들을 만들고 그들에 의해 멸망하고 또 그들은 다시 또 10배 적은 인간들을 만들고 멸망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무한 반복으로 바이러스나 미생물만큼 인간이 작아지다가 사라질까.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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