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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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껄렁한 잡글 2/3, 감수성 돋는 사색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글 1/3 정도 된다. 잡글은 주로 김중혁이 썼고 사색적인 글은 주로 김연수가 썼다.김중혁의 글은 처음엔 주로 주변 일상사여서 재미없다가 끝으로 갈수록 점점 유머러스하고 익살맞아진다. 

 

이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네21에 이 칼럼을 연재한 때는 2009년. 그들이 각자 스페인 남부와 스웨덴에서 여행담도 아닌 여행담으로 컬럼을 때우기 시작해 중간 중간 조금 진지했던 시점은 고 노무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우리를 남기고 떠나가셨을 때, 용산참사가 있던 때, 그리고 DJ마저 우리 곁을 떠나셨을 때였다. 뒤편으로 갈 수록 컬럼은 점차 자리가 잡혀 둘의 주고받음에 하모니가 생기지만 전체적으로는 라디오 토크쇼에서나 할 법한 잡담들도 일관되게 채워져 있다. 

 

재밌는 건 자기들이 시시껄렁한 글을 쓰고 있다는 걸 끊임없이 독자에게 주지시키거다. 알고 있거든. 그런데, 가끔 진지 모드와 잡담 모드를 자주 회전하는 김연수와는 달리 좀 더 시시껄렁한 쪽에 무게를 두는 김중혁이 더 그 소리를 많이 한다. 시네21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느니 이러다 짤릴 것 같다느니 명색이 영화 잡지이니 영화 칼럼을 써야 하는데 처음부터 별로 준비가 안되어 있거나 영화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편집장의 요청을 억지로 받아들여 없는 시간 짬을 내 쓴 글 같다.

 

처음엔 서로 친한 초딩 동창이라는 점을 이용해 둘 사이의 일화나 관계를 바탕으로 흥미를 끌만한 거리를 찾아 좀 유머러스하게 나갈 작정이었던 듯 싶다. 근데 썩 웃기지도 않고 썩 재밌지도 않다. 그 둘 사이에 절절한 애정전선이 있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크게 실망한 건 아니다. 소설 쓰고 번역하면서 먹고 살기 힘드니 쉬엄쉬엄 쉽게 써지는 글도 써야 많이 팔리고, 돈도 벌고, 유명 베스트작가의  소셜 포지션이 유지되니까. 진짜로 형편없는 글로 심심하면 책 한번씩 내는 유명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포트노이드의 불평 이라는 영미 소설을 함께 읽는 중인데, 불친절하게 앞뒤 설명도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영문 모를 불평을 읽다가 지겨위질 때 꺼내 들면 휘리릭 휘리릭 페이지 수 잘 넘어간다. 또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 김중혁 작가의 엉뚱발랄싱겁진지함을  조금 알다 보니 시시껄렁한 자기 얘기도 그의 스타성에 대한 대가로 너그러이 읽어줄 수 있는 친절함이 샘솟는다. 그에 비해 김연수는 참 다재다능하다. 쉽고 가볍게 쓴 글인듯 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건, 그의 문학적 출발이 시적 감수성을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원칙은 그렇다. 격렬하게 현실을 풍자하지 않으면서도 불가능한 디테일을 사용했다면 그건 서사적 곤경을 손쉽게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나왔을 확률이 높다.23

 

칼럼을 시작하면서 둘 다 별로 영화를 자주 안보는 편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한 칼럼당 한 편씩은 보고 쓰는 것 같다. 처음엔 옛날에 본거 울궈먹는 듯했고 나중엔 울궈도 국물 안나오는지 개봉관 영화들 들고 나온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컬럼이라면 좀 더 성의 있게 같은 영화 한편을 두고 약간의 갑론을박이 있었으면 조금 더 긴장됐을 듯 싶다.

 

왜냐면 우리도 한번 쯤은 이런 아이러니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언제? 사랑이 끝난 뒤. 늘 언어는 사랑보다 늦게 도착한다. 우리는 무지한 채로 사랑하고, 이별한 뒤에야 똑똑해진다.25

 

김연수의 감성은 이런 식이다. 그러니 여성 팬들이 꼬이지 않을 재간이 있나.

 

지난 5월 말, 1988년 이후 우리 세대가 흉내내며 살았던 거대한 3인칭 전지적 시점의 세계는 붕괴했다.  내 시점을 타인과 공유 할 때 3인칭 전지적 시점의 세계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와 타인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최종적으로 구축됐다. 여긴 상대성 세계다. 중략 이제는 그걸 인정 해야 만 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계 다. 기나긴 청춘이 이로써 끝났다. 151

 

김연수는 2009년 5월의 절망을 이렇게 적고 있다. 386 세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흉내냈고, 그것은 끝났다고 했다. 영화 <마더>의 김혜자에 대한 평론적 시각에  그 날의 절망을 절묘하게 오버랩했다. 김중혁은 사색 대신 유머를 선택했다.

 

<인간 김연수>

 

 

김중혁 술자리에서 잠드는 후반부만 빼면 유쾌하다. 40대가 더 기대되는 인간 ★★★★ 

그는 이렇게 시네21의 20 자평처럼 인간 김연수에 별점을 매겨 평가해본다.

 

사람이 만일 바뀔 수 있는 거라면 마음속에 무수히 많은 의심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 의심을 어떤 식으로든 풀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놓여 있을 때에야 가는 것이리라.중략. 자신을 의심 하지 않으면 인간은 절대 바꿀 수 없다. 194

그리고 김연수가 전 호에 제기한 의문에 가끔 이렇게 포텐을 터트린다. 영화 차우의 제인 구달과 비델 사순 장면도 국가대표의 까불지마 장면도 실제 영화를 볼 때보다 김중혁이 웃긴 이유와 웃긴 장면을 설명해 놓은 글이 더 웃겼다. 어제 오늘 소설 보다가 많이도 낄낄거린다. 혼자서 미친X처럼.

 

부질없는 일인 줄 알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 모든 경상도 사람들을 대신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싶다. 힘을 합치자고 내민 손을 물어 뜯어버린 그 모든 이빨들에 대해서, 무임승차를 하고도 돈을 대신 내 준 사람을 걷어찬 그 뻔뻔한 무지에 대해서. 223 김연수

DJ가 자신의 그래프를 끝내고 좌표 바깥으로 사라졌을 때 나 역시 그랜 토리노의 마지막 장면을 본듯한 기분이었다. 231김종혁

 

그랬다. 같은 해 우리는 내 마음 속에 단 한 분 나와 내 동포를 대표하는 유일했던 대통령 한 분을 부엉이 바위 밑으로 밀었고, 근대화 과정의 불의에 온몸으로 항거했던 정치인을 잃었고, 용산 건물의 화염속에서 내 동포들이 불에 타 죽는 것에 분노하지 않고 묵과했고,  김중혁과 김연수는 씨네21에 시시껄렁한 컬럼을 썼고, 나는 미 미시간 주 앤아버라는 작은 대학도시에서 거리에 사람이 넘치는 생동감있는 도시 풍경을 가진 한국이 마치 내 땅이 아닌 것처럼 외면했다.

 

* 볼만할 영화 <걸어도 걸어도> <업>-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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