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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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수필은 소설을 쓰는 하루키와는 다른 자아가 쓴 것 같다. 물론 칼럼의 성격상 소설처럼 자신의 내면을 투영할 필요야 없다.  그렇다 해도 만들어 내는 족족 불티나게 팔린다는 그의 수필이 설마 모두 이렇게 가볍고 '편안'하지야 않겠지. 하지만 서두를 읽고 기획의 가벼움에 조금 당황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청년들이 보도블록을 깨서 나르고 화염병을 던지며 한국 근대사와 역사를 향해 분노하며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의 전환을 꿈꿀 때, 일찍이 우리가 겪었던 비슷한 과정을 뚫고 지나갔을 열도의 청년들은 어떤 이상을 꿈꾸며 어떤 나른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까. 나는 이를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80년대의 노스탤지어에 젖어 추억을 곱씹을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책으로 엮었다는 것이 고작 그 옛날 주간 스포츠지의 짧은 칼럼들까지 푹 울궈냈을 거라고 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좋다.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은 모조리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그래프의 꼭대기에 선 이 시점에. 그럴 수 있다. 이웃나라 반도에선 자기언어로 쓰는 작가보다도 인기있고, 배타성으로 악명높은 영미권에서도 번역서를 출판하고, 전세계 50개국에서 그의 책을 출판하고 노벨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 세계적 반열의 베스트셀러 작가의 손끝에서 쓰여진 글이라면 낙서쪼가리라도 상품이 될 수 있는 거니까. 80년대 스포츠잡지의 가십거리를 적은 글과 올림픽 기간 중 일기까지 찾아 긁어 내어 '1980년대를 회상하며'라는오골거리는 카피라이트를 적어 놓은 이 책. 솔직히 기획 의도는 좀 뻔뻔하다.

 


<에스콰이어>, <뉴요커>, <라이프>, <피플>, <뉴욕>, <롤링 스톤즈>, <뉴욕타임즈> 등의 미국 월간 주간지 기사가 이 책의 소재다.<스포츠 그래픽 넘버>라는 일본 잡지사는 연재를 위해 이 미국 잡지들을 영어를 잘하는 하루키에게보내 주고, 재미있을 만한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그걸 일본어로 정리하여 기사를 쓰라고 했다. 딱 봐도 거저 먹기지만 작가 자신도 거저먹기였다고 말한다. 그 거저먹기 기사들이 20년 후엔 노스텔지아로 탈바꿈할 해 한 권의 책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간혹 건질 수 없는 기사도 있었던 모양이다. 날짜가 많이 빈다.

 


하루키가 '뒹굴거리며' 엄선한 미 주간지의 기사 중엔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길라잡이의 묘미란 이런 것이다.그 많은 잡지의 그 많은 기사들 중 마음에 쏙 드는 것들만 뽑아서 걸러내고 일본인 눈에 흥미롭게 비치는 것만 하루키의 깔끔한 문체로 잘버무려 놓았으니 어찌 재미가 없을 수 있으리. 하지만 재미가 없는 부분도 있다. 많지는 않지만. 잘 모르는,혹 알더라도 별로 관심도 없는 미국스타와 부호들의 가쉽거리가 그렇다. 대부분은 가볍지만 재밌다. 영화, 음악, 문학, 스포츠 등 평소 작가의 관심 분야가 골고루 엮여 있고 지금은 세계적 스타 작가가 된 80년대 일본 젊은 작가가 미국 문화를 바라보는시선과 취향이 짧은 칼럼들 깔끔한 문장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거기까지다. 인용할 문장도 멋지게 마무리할 그럴싸한 여운도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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