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 - 미술품 도둑과 경찰, 아트 딜러들의 리얼 스토리
조슈아 넬먼 지음, 이정연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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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작품 659점, 호안 미로 397 점, 샤갈 347 점, 살바도르달리 313 점, 앤디워홀 216 점, 렘브란트 199점.이것은 2011 년 세계적인 도난 미술품 등록 데이터베이스인 아트 로스 레지스터이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명화들을 인기 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절대로 만나지 못할 작품들이며, 우리가 원하는 작품을 보기 위해 세계 유명 갤러리들을 순방해도 많은 작품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맘에 드는 미술품을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도난된 미술품이라면 어떨까? 그 미술품은 누구의 소유일까.  도난품이므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까.  내가 직접 훔친 것이 아니고 돈을 주고 구매했으므로 내 소유일까. 미술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1993년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도난품 소유권 분쟁에 얽힌 실화는 한 편의 잘 짜여진 코메디다.


 짐 그로브스는 버몬지 시장이라는 골동품 거래 시장에서 오래된 초상화 두 점을 각각 한화 10만원, 15만원 정도에 구입했다. 친구 중 한 명이 초상화의 이니셜을 발견하고는 전문 감정을 받아보라고 했고, 그는 동서 오설리번과 함께 감정을 받으로 소더비로 갔고, 즉시 체포되었다. 그 그림들은 얼마 전까지 법률 협회 링컨스 대회당의 벽에 걸려 있던 레이놀즈와 게인즈버러가 그린 초상화로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영구 소장하고 있는 대가의 작품들이었고 1990년 다른 그림과  한 점과 함께 회당 벽에서 도둑맞은 그림이었던 것이다. 조사 결과 무혐의로 인정되어 풀려났지만 그림은 압수당했고, 그림값도 회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해가 뜰때부터 질 때까지 공정한 거래로 구입한 모든 물건에 대한 법적 소유권은 구매자에게 넘어간다'는 영국의 오래된 공개시장법  조항을 한 기자로부터 전해듣게 되고,  링컨스인에게 그림 값으로 1억3천만원을 보상한 보험사와 소유권 분쟁에 들어간다. 보험사는 그림을 찾아준 대가로 한화 1700만원을 제안했지만, 짐과 동서는 그 대가들의 초상화가 백만, 천만 하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욕심을 낸다. 큰 돈을 벌려던 두 덤앤더머는 보험사가 보상금으로 애초 링컨스인에 지불한 금액의 돈을 보험사에게 지불하고 그림의 소유권을 가져와서 수백만 파운드에 되 팔 계획을 세우고 집을 팔아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예상한 가격에 팔리지 않았고,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된다. 그들은 그림을 팔기 위해 밀반출하여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변호사를 고용하고 그림을 복원하는 등의 더욱 더 많은 돈을 쓰게 된다. 후에 경매를 통해 가까스로 팔린 곳은 알고 보니 그림의 원소유주인 링컨스인이었다. 그들은 집과 그림을 팔은 후에도 빚더미에 앉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의 공개시장법은 폐지되었으며, 미국에서는 가드너 도난 사건을 계기로 연방법인 중요 미술 작품 도난 법령이 통과되었고, 누구든 훔친 작품을 소유할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나라는 거래자가 도난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국가절도재산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딜러가 거래하는 물건이 도난품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물론 선구적인 경영인들의 도난당한 미술품들은 아트 로스 레지스트(ALR)과 같은 세계적인 도난 미술품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다. 딜러와 옥션 하우스, 콜렉터들은 미술품들을 사고 팔 때 이것들이 도난품인지를 확인가능한 유료 시스템에 액세스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비공식적으로는 안그렇다.


아름다움을 다루는 미술계에는 가장 추한 것의 세계가 먹이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미술품에 숭고하고 거룩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것을 훔치는 행위 자체도  살인 폭력, 마약 등의 범죄는 물론 돈이나 귀금속을 훔치는 행위만큼 맹비난하지도 시대를 개탄하지도 않는다. 회화나 조각작품들은 세상 어딘가를 배회하며 우리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을 범죄자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미술 범죄를 전담하는 경찰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만한 수준이고, 딜러들과 갤러리들은 도난 사건이 발생해도 경찰의 도움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매력적인 도둑들이 득실대는 헐리웃 영화들은 경찰과 미술계를 비웃듯 관객의 응원을 받으며 미술품을 훔친다.  수억에서 수백억원까지 오가는 유명 도난 미술품의 가치가 우리같은 사람에겐 비현실적이라 그것은 언제나 영화같이 멋진 일이고, 남의 일, 부자 콜랙터들이나 멍청한 미술관 공무원들의 일이다. 


그러나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미술품 도난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취재한 결과물인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은 미술품 도난은 다른 범죄나 다를 바 없이 추접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술이라는 것을 다루는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다른 범죄 못지 않은,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서 비롯된 추악한 목적과 위협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들이 같이 있다. 미술품 절도 역시 다른 절도와 마찬가지로 살곰 살곰 숨어 들어가 들키지 않게 훔쳐내거나, 총을 들고 위협해서 강탈해 오거나, 야비한 거짓말로 상대를 속여 사고 파는 사기이며, 도둑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마약상들은 훔친 그림을 옥션 하우스에 돌아다니며 경매에 부치고 관중석에 심어 둔 사람이 그림 가격을 올리면서 비싼 값에 경매 나온 그림을 사는 식으로 돈을 세탁한다. 미술품 거래는 언제나 현금으로 거래되고, 문서를 만들어 놓지 않는다. 그래서, 미술품 시장의 규모가 얼마인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냥 근거 없이 떠오른 숫자가 추정치가 되어 이 곳 저곳에서 인용된다.

 

범죄 조직은 돈을 세탁하는 수단으로 그림을 사용하고 옥션하우스가 그 통로가 된다고 했다. 마약과 그림을 맞바꾸면 그림을 받은 사람은 경매를 통해 그림을 현금으로 바꾸고 거꾸로 마약으로 번 돈을 그림을 사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결국 예술은 피와 마약으로 물드는 돈을 합법적인 수단으로 걸러내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양쪽으로 다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376)


미술품 도난은 렘브란트와 고흐와 마네의 그림처럼 그 가치가 이미 상상을 초월한 액수를 넘어간 미술품만이 그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대도시의 유명 미술관에 걸려있는 값비싼 그림보다는 영국의 해변 도시 브라이튼의 중산층 가정에 몇 세대 이전에 누리던 부의 흔적처럼 벽에 걸려있거나 장식장에 앉아 있는 골동품과 그림들이 전문 도둑꾼들에게는 현금화하기에 유리한 타겟이라는 것이다. 유명 그림의 도난은 매체를 타고 일파만파 세계 각지로 퍼지기 때문에 도난품이라는 사실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술품 거래는 범죄자들에게 더할나위없이 좋은 비지니스에요 그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극소수이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무지를 이용해 돈세탁이 가능해요. 그냥 끝자리에 0만 더 붙이면 되니까요. 뿐만 아니라 소득세를 내야 할 때가 되면 상황에 따라서 이 만큼의 돈을 잃었다거나 벌었다고 쉽게 위조 할 수도 있지요.(383)

저자 조슈아 낼먼은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미술품 도난 사건을 계기로 알려지지 않은 그쪽 세계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 먹는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시작한 그의 프로젝트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긴장감 넘치고 생생한 스토리가 된 것은 많은 오랜시간을 걸쳐 이 알려지지 않은 무법 세계를 더듬더듬 조사한 덕분이다. 그는 세계 각국의 미술품 담당 경관들, 변호사, 미술관의 보안 담당자 및 큐레이터 뿐만 아니라 도둑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파헤치며 치밀하게 인터뷰했다. 그가 최종적으로 깨달은 것은 보이지 않는 미술품 도난의 세계는 상상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이며, 이를 전담하고 있는 조직은 아주 적고 정보는 극히 부분적으로만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보는 사실이며 밖에서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작은 조각들입니다. 하지만 정보가 그 주제를 알고 있는 사람을 통과하게 되면 지능이 됩니다. 지금은 관련된 정보가 아주 적고, 지능은 더더욱 없는 상황이에요(238)

 

책에는 재미있는 사건에 대한 일화가 가득하다. 2000년 스웨덴 국립미술관 도난 사건은 어느 도둑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소설같은 일화다. 기관총으로 경비원을 위협해서 르느와르와 램브란트의 그림 세 점을을 떼어냈고, 미술관 뒤편으로 정박시켜 두었던 도주용 보트를 타고 도망갔으며, 미술관 앞에는 경찰의 추적 차량을 타겟으로 타이어를 터트리는 뾰족한 못들을 설치해두었고, 경찰들을 바쁘게 만들기 위해 도시 전역에 주차된 자동차에 폭탄을 설치해두었다.  후에 도둑들은 그림의 몸값을 요구하였으나 미술관은 이를 거절했고, 결국 그림들은 연합한 치밀한 함정수사로 따로따로 미국과 스웨덴에서  각각 되찾았다. 


그러나 미술품을 되찾는 경우는 드물다.  추정하기론 전체 도난 미술품의 1%에서 15%만이 회수된다고 한다. 골동품은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약탈은 수출 무역업과 연계된다. 값비싼 미술품은 아주 멀리 있는 다른 국가의 보내지거나, 아주 오랫동안 훔친 그림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작품을 잘 숨겨두고 기다리는 방법으로 세탁된다.  교묘하게 추적망을 빠져나간 도난 예술품들은 지구를 떠돌아다니며 도둑에서 중개인으로, 그리고 다시 딜러와 컬렉터들 사이로 전달된다. 암시장과 합법시장의 경계는 모호하다. 거래하면 안되는 것들이 일반 거래 시장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마약 총기류와 다른 점이다. 그것은 미술 시장의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과 실제 훔치고 팔고 사는 행동파 범죄자들이 연루되어 있다. 도둑들이 돈을 벌기 위해 훔쳐내고, 딜러들과 옥션하우스 컬렉터들 사이를 사고 팔고 되팔고 한 나라에서 다른나라로 밀반출하고 밀반입되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어다니며 거래되는 과정에서 미술품들은 거대 범죄 조직의 자금 세탁에 이용되고, 한 세대가 넘도록 조용히 어느 개인의 축축한 지하실에서 잊혀진다. 



풀은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 그 곳 미술품 도난의 세계의 대부와 같은 전직 미술품 도둑이다.  폴과 같은 전문 미술품 도둑의 탄생 배경을 보면 시대적 변화 속에 갈 곳을 잃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 남기 위한 하나의 적응 과정 같았다. 영국 브라이튼의 시장에 불어닥친 현대화의 물결은 대형 쇼핑센터 건설에 설 자리를 잃은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던 선량한 시민들에게 변화를 요구했다. 농사 지은 것들을 내다 팔 장소를 잃은 노커들은 가가호호 방문판매를 시작했고, 그들이 두드린 문 안쪽에 사는, 한때 영광을 누렸던 중산층들은 대대손손 물려내려오는 골동품들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 노커들은 그들이 필요없는 골동품을 골동품상에 넘겨주는 중개인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그들은 좋은 물건을 봐뒀다가 다시 훔치러 들어오는 도둑들이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생계를 잃었고, 그래도 먹고 살아야 했고, 집집마다 노크를 하고 다니며 농산물을 팔아야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범죄의 태생은 그렇게 시대가 만든 낙오자들의 삶에서 대안적 생계수단으로서 시작되었다. 

 

생애 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자기 만의 예술 세계에서 붓을 들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채 쓸쓸히 죽어간 수많은 예술가들의 붓을 생각했다. 그것의 가치가 그들의 사후 너무 비현실적으로 높아져서 이제는 범죄 조직에 합법적으로 이용되거나 어느 부자 콜렉터의 거실에서, 어느나라의 재벌 며느리의 철통같은 보안 속 사설 갤러리에 잠자고 있을 그 숭고한 영혼을 쓸어담은 붓자국들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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