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 이라는 책에 있던 단편 하나를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달리는 고속도로에서였다. 


그녀가 뚱뚱하다는 것은 책의 도입부에 아버지가 한 말을 회상하는 데서 암시한다. 


그만 좀 처먹어라.


그녀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그 말을 기억하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대학 입학과 더불어 찾아온 사랑 비슷한 어설픈 감정. 그녀가 좋아하기로 작정한 그녀의 선배가 뚱뚱한 그녀에게 가진 감정은 친구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여자친구도 따로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절박했을 때, 그러니까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꼬로록 꼬로록 물 속과 밖을 들락날락 하며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듯, 그 절대 절명의 절박한 시점에서 붙잡을 수 있는 지푸래기 한 오라기는 그녀의 뚱뚱함이었다. 


만인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듯한 경험을 좋아하는 선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절하지 못하고 했어야 했던 그녀의 절망 앞에서, 그 선배는 비루하게도 그녀와의 우정을 이용해서 나쁜 남자가 되어야 했다. 그녀는 상처받았고, 그녀는 수치스러웠고, 그녀는 분노했고, 그녀는 모멸감 속에서 세상을 저주했으리라. 그러나, 그녀가 어릴적 물에 빠졌을 때, 자신이 붙잡은 어느 소년의 팔, 그리고 그 소년의 팔 한쪽에 낸 푸른 상처와 손톱 자국을 회상했을 때, 그녀는 그 선배를 이해하기로 했을 것이다.  
 

그 모멸감을 극복했을 때, 그리고도 오랫동안 여전히 그 선배를 좋아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