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소문으로만 듣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만났다.

 

<침묵의 거리에서>는 한 중학생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그 너머 미숙하지만 인간군상의 모습을 형성해가고 있는 아이들의 세계를 그렸다.  중2. 귀엽고 천진하기만 어린이도 아니고 아직 청소년이라기에도 미숙한 나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신체의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고, 나를 구성하는 세계가 가족과 부모에서 친구 쪽으로 확 기울면서 부모와는 가장 두터운 벽을 쌓고 교우 관계는 전부가 되는 걸 경험했다. 

 

비슷비슷해서 구분도 어려운 일본 이름이 가리키는 인물이 대략 누구인지를 파악할만 하면 바뀌어 버리는 장면 전환은 미국 범죄 드라마 CSI를 상기시켰다. 장면이 바뀌면서 생기는 행간에서 경쾌한 CSI 장면 변환 배경음 땡땡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각기 다른 시점의 각 장면의 그들은 각기 저마다의 입장과 이해관계 속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야기의 갈래는 사건 직후 어른들이 사건을 바라보는 세계와 사건 전 아이가 존재했던 시간 속에서의 아이들의 세계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뉜다.  아이가 죽은 시점에서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지목된 가해자 5명의 부모들은 죽은 아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직 착한 자기 자식이 '누명'을 쓰거나 불이익을 당할까, 피해자 가족에게 복수를 당할까. 좁은 마을에서 가해자로 낙인찍혀 힘들어지지나 않을가 하는 걱정 뿐이다. 담임 역시 피해자보다는 집단 왕따를 불러오게 한 가해자 아이들에게 더 마음을 쓴다. 기자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기사를 쓰고 싶어하지만, 형사와 검사는 14세 미만의 턱에서 운명이 갈린 아이들에게 어떤 인권의 침해도 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한 아이가 셔틀이 되어 돈을 뱄기고 집단적으로 폭력을 당한 흔적을 잔뜩 남기고 누군가의 강요로 지붕에서 나무로 뛰다 떨어져 죽었다는 심증이 지배적인데도 그렇다. 1편에서는 대략 그렇다.

 

2편으로 넘어가면서, 입을 꾹 다물던 가해자 아이들이 조금씩 입을 열면서 그리고 피해자의 부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짓기를 요구하면서 사건 전 아이들의 세계가 조금씩 드러난다.

 

소설은 아이를 누가 죽였는가에 주목하지 않는다. 왜 죽었는가에도 그다지 관심은 없다. 아이가 죽자 밝혀지는 중2 학생들의 그 어린이도 아닌,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의 인격체들이 약육강식의 사회를 형성하면서 때로 비열하고 때로 따스하고 때로 폭력적이고 때로 서로 보살피기도 하는 때묻고 낡은 어른들 세계의 미숙한 축소판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

 

우리는 언제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결국 아이를 죽게 만든 건 인간 사회의 본질이다. 강한 자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약한 자 앞에서는 군림하려는 그 쓸쓸한 인간의 본성을 가장 명백하게 보여준 사람은 바로 죽은 아이였다는 사실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 없게 만든다. 약하고 여리고 조금 눈치없고 불쌍한 피해자이기만 한 아이로 알고 있던 아이가 꼬집히고, 채이고, 목졸림을 당하고, 셔틀을 해야 끼워주는 그런 또래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둔한 머리로 나름대로 터득했던 그 대내림의 역사 속에서 사회가 세상이 한올 한올 얽히고 꼬여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여자 아이 도모노는 그 아이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돕고 싶었지만 그녀의 작은 배려의 말이 아이에게 들어갔다 돌아오는 건 거들먹거림 뿐이다.

 

아이를 죽게 한 건 과보호와 물질적 충족을 나약함과 결핍의 방어막으로 삼게 한 부모들이었다.  아이를 죽게 한 건 인간이 다른 모든 인간을 무조건 좋아하며 어울려 살 수 만은 없다는 잔인한 사실이었다.  아이를 죽게 한 건 폭력을 당하든 셔틀을 하든 지붕에서 나무로 뛰어 내리든 사회 속의 일원으로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아이의 절박함이었다. 아이를 죽인 건 아이 자신이며 동시에 사회를 이루며 마음을 나누고 살아가는 사회 속의 우리 모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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