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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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바다의 기별 첫 챕터 맨 앞장에 이렇게 적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이 이야기한 그 멀고 먼, 닿을 수 없는 관점에서 본 사랑을 하루키는 2300페이지 짜리의 거대한 판타지 소설로 단단하게 빌드하고, 개연성을 부여하고, 기어이 닿지 않는 것들을 닿게 하였다. 둘 다 천재다. 1편과 2편이 미스터리 추리물에 가깝다면 3편은 사건이 해결되면서 동시에 너무 멀고 아득해서 도저히 닿을 것 같은, 품을 수도, 만져질 수도, 건널 수도, 다가오지도 않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 기어이 사랑이라 부르는 멀고 먼 아득한 사랑을 달이 두 개 뜨고, 리틀 피를이 죽은 시체의 입속에서 기어 나와 공기 번데기를 만드는 기묘한 세계에서 이루어 놓는다. 기묘한 세계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다시 달이 하나 뜬 세계로 돌아가지만, 그 세계가 원래 있던 그 세계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기묘한 세계 1Q84와 고양이 마을에서 둘은 엄청난 사건에 휘말렸고, 그것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만났다. 20년 동안 품고 있던, 따뜻했던 마음 하나로 둘이 만났다.

 

56
희망은 수가 적고 대부분 추상적이지만 시련은 지긋지긋할 만큼 많고 대부분 구체적이지.

 

73
오래된 모루처럼 완고한 그 두개골 안쪽에는 대체 어떤 모양의 의식이 몸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곳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겨져 있지 않은 걸까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내버려진 집처럼 가재도구는 남김없이 실려 나가고, 예전에 살던 사람들은 기척도 없이 사라졌을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벽이나 천장에는 순간순간의 기억이나 광경이 낙인으로 새겨져 있을 것이다. 기나긴 시간을 들여 키워진 것은 그렇게 맥없이 無 속으로 빨려들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 바닷가 요양소의 소박한 침대에 드러누워 있지만, 동시에 깊은 저 안쪽 빈집의 고요한 암흑 속에서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광경이며 기억에 에워싸여 있는지도 모른다.

 

111
덴고와의 현실적인 접점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일이 훨씬 단순했다. 어른이 된 덴고를 만난다는 건 아무 마메에게는 그저 꿈이고 추상적인 가정일 뿐이었다.

 

168
작업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력감을마 침내 어딘가로 몰아 낼 수 있었다.

 

219
아주 짧은 한 순간, 시간의 문이 안 쪽을 향해 열린다. 오래된 빛이 새로운 빛과 하나로 섞여든다. 오래된 공기가 새로운 공기와 하나로 섞여 든다. 이 빛과 이 공기다.  

 

341
사람은 때가 되어 죽는게 아니에요 안에서부터 서서히 죽어 가다가 이윽고 최종 결제 기일을 맞는 것이지요.

 

464
눈을 감으면 후카에리의 시선이  남기고 간 욱신거림이 갈비뼈 안쪽에 느꼐졌다. 아픔은 바닷가로 서서히 밀려오는 온화한 물결처럼 다가왔다 가 멀어져 갔다 다시 다가왔다가 멀어져 갔다. 이따금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아픔이 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따스함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우시카와는 마음 속에서 둔중한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신비의 차가움이 지금까지 그 곳에 있는 아픔을 둔감하게 마비시켜 왔을 것이리라.

 

668
만나고 싶은 마음을 각자 소중히 가슴에 품은 채 끝까지 떨어져 지내는게 좋지 않을까. 그러면 언제까지고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은 몸의 깊은 곳을 따뜻하게 해주는 자그만한 발열이다. 손바닥으로 소중히 감싸서 바람으로부터 지켜온 작은 불꽃이다. 현실의 난폭한 바을 받으면 훅 하고 간단히 꺼져 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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