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넘버 원! 세계일주
박유찬 지음 / 나무자전거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염장질이다. 맹목적인 무모함마저도 용서되고 수용되는, 일년을 놀아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빛나는 청춘이 아니라면 꿈조차 꾸기 어려운 세계 여행. 학업, 경력, 스펙, 육아, 수도 없이 많은 종류 의무와 책임이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일상에 매몰된 일반인들에겐, 단 7박 8일 짜리 단체 관광 마저 사치인 평범한 직장인들과 주부들에겐 이 책 염장질이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오고 청춘은 간다. 오롯이 나만 생각하고 나만 잘 살면 되고, 내 미래를 누구의 희생이나 헌신을 담보로 하지 않아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찰라처럼 지나가는 청춘의 한 가운데 어느 지점을 누구나 통과한다. 거기 서서 이처럼 나만의 브레이크를 갖는다는 것은 이미 저만치 떠나 버린 청춘의 그림자만을 붙들고는 부러워하는 일 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청춘 이후의 인생인 책임과 의무의 삶을 사는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꿈같은 이야기다. 그래. 그랬었지. 나도 젊었을 때가 있었지. 내 나머지 인생을 걸고 무모하게 어디든 뛰어든 큰 전환기는 결혼 이외에는 없었지만 그것은 책임과 구속을 안정과 맞바꾼 일종의 은밀한 거래였으므로 제외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는 있었지. 졸업후부터 결혼전까지. 직장과 연애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만일 내가 원했다면 직장보다 연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으러 삶에 브레이크를 걸고 1년간 떠나려고 했다면 그 때는 지금보다야 열악한 환경이지만 세계일주라는 꿈같은 계획을 만일 가졌다면 나도 그 짧은 자유와 체력과 경제력과 미래를 스스로 저울질할 수 있는 결정권과 모든 것을 가졌던 때가 있었지. 그러나 그 때에도 그러지 않았고, 되돌아 간다고 해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세계일주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과 꿈꾸던 꿈꾸지 않던 세게일주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제고 후자이고, 대부분의 지구인들이 후자일 것이다. 

작년 여름 말레시아 쿠알라룸프르에 8박 9일간 여행을 했다. 널널한 일정으로 도심 구석 구석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은 다 걸어다니며 역사, 문화, 인종,종교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마데르카 광장 부근의 전철역에서 커다란 베낭을 짊어진 독일 말투의 여대생들이 KL센트럴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길을 묻는다. 이런 허당 베낭족 같으니라구. 내가 관광객 차림이었고 지도 한장을 열심히 들이다 보면서 다니는데도 나에게 묻는 것도 한심하지만 여태 베낭 메고 뭘 하고 다녔길래 쿠알라룸프르의 허브 KL 센트럴 가는 법을 숙지하지 못했던 건지. 졸지에 잘난척을 하며 5번 빨간색 라인을 타고 라왕 방면으로 가라고 오버 친절을 떨며 얘기해 준다. 그리곤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객에게 다른 여행객은 동질감을 준다. 비록 베낭을 멜 수 있는 청춘은 아니지만, 유스호스텔에서 아무하고나 섞여서 자고 친구를 만들고 함께 다니고 하는 개방성과 모험심은 가지지 않았지만 어쩐지 나도 그렇게 걷고, 길을 묻고, 지도를 보고, 찾고, 다른 여행자와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런 행위들을 통해 저멀리 달아나는 청춘의 끈 한가닥을 살짝 놓지 않고 버텼다고나 할까.

여행의 무엇을 즐기는가? 왜 여행을 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여행을 계획하려면 왜 가는지, 보기 위해 간다면 무엇을 보고 싶은 건지, 그 시간과 돈과 노력과  바꾼 그동안에 추구하는 것인지를 대략 생각해야 한다. 대개 짧은 여행을 갈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에게 여행은 휴식과 체험(?)일 것이다. 그래서, 비용대비 좋은 호텔 좋은 구경거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1년간의 여행이라면, 1년간의 다른 기회의 비용과 맞바꾸는 여행이라면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냥 막연히, 보고 싶다? 무엇을. 세계를? 노우. 세계라는 말은 추상명사다. 모든 걸 포함한다. 세계의 문화, 역사, 지리, 날씨, 음식, 예술, 그 모든 걸 다 보려면 내가 세계인의 숫자만큼 세계의 역사만큼 많아야 하고, 세계의 부를 다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무얼 볼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친구는 세계 각국의 여행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 서반어 등 외국어 공부를 미리미리 준비했고, 가고 싶은 도시와 지역을 꼼꼼하게 체크하여 루트를 정했고, 많은 문화를 체험을 접했다.

이 염장질의 책은 저자의 1년간의 세계 여행담이다. 세계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에게는 경험으로부터 듣는 도움말과 충고만큼 값진 게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다. 더럽고 냄새나고 위험한 골목을 걷을 수 있는  용기, 안나푸르나를 올라갈 수 있는 체력, 여러나라 여행자와 여행을 통해 교감하고 사귈 수 있는 싱글 여행자의 마땅한 권리..

아아 청춘은 나를 떠났지만 나는 청춘을 떠나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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