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비처네 (반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공감각은 어떤 감각 혹은 인지에 다른 종류의 감각을 연결시키는 것이 가능한 일부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만이 가진 고유 능력이다. 가령 숫자에서 고유 색깔을 느낀다던가 음악에서 어떤 그림이나 도형을  연결시킨다거나 지리나 역사를 년도 따위에 선명한 자신만의 풍경을 연관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공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풍부한 감성 암기력 등의 비범한 두뇌 활동을 갖게 되고, 특히 예술가인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공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참으로 부러웠던 나는 누비처네를 읽으며 어떤 빛바랜 사진 같은 이미지가 푸르스림한 흑백에 가낀웃 청록빛같은 색상으로 히미하게 떠올랐는데 이것이 실제로 능력자들이 가진  공감각과는 다르겠지만, 이제껏 다른 글에서는 볼 수 없는 색상을 가진 것만은 확실했다.

 

목성균의 글들은 사후에서야 조금씩 알려졌다. 이 책을 받고,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살아서 널리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의 삶이 고흐의 마지막처럼 쓸쓸하고 외로웠으리라 여겨져 괜한 감상에 젖었었다. 그러나 목성균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서 인정받지 못한 천재적 예술가들의 비참한 말로와는 달리 정겨운 추억과 따스한 가슴으로 마음 가득 그리움 마저도 애잔한 풍요로 품은 행복했던 작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비처네에 실린 글들은 세월이 지워버린,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 아련한 옛 것들, 옛 산골에서의 일상, 옛 물건, 옛 어른들, 옛 풍속, 옛 친고와 옛 시절, 옛 사건과 하루 하루 지나왔던 소박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들이 주를 이룬다.

 

성장만 하면 되는 여름은 무모하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존재의 치열한 향일성들은 아픔도 모르고 세포분열에 주력한다. 아 그리운 시절 그 여름날들. <그리운 시절> 중

 그가 쓰는 글은 가끔은 국어 사전을 찾아봐야 하리만큼 생소하지만 때때로 어렴풋 어릴때 할머니가 썼던 것 같은 정겨운 우리 고유의 옛말과 어휘를 담고 있다.  그래서 마치 그리움은 빛바랜 어린 시절의 회색빛 사진들처럼 우리에게 그대로 언어를 타고 전해져 온다. 살강, 살포, 다랑논배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겹고 말캉거리는 순수한 우리말들을 우리는 얼마나 홀대하고 외면하고 떠나 보냈나. 그가 흘러가고 사라진 풍속과 시간을 회상하는 방식은 그가 사라져 가고 있는 언어를 회상하는 방식 같다.

어찌 보면 두 남녀가 이루어 가는 우리라는 단위의 인생은 단순한 연출의 노력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인지 모른다. 약간의 용기와 성의만 있으면 가능한 연출을 우리들은 못하든지 안 한다. 구닥다리 세간에 대한 아내의 애착심은 그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연출한 소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내의 애착심을 존중해야지, 누비처네를 보면서 생각했다. <누비처네> 중

다랑논을 보면 삶이 행복하다 불행하다 말하는게 얼마나 건방진 수작인가 싶다.  다랑논은 삶의 원칙 같다 . 다랑논의 경작은 삶에 대한 애착의  일변도 같다. <다랑논>

글모음 속에는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 아련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며 얼음물을 깨어 황태를 씻던 촌 아낙네들이 들러 황태 한 꾸러미씩을 주고 가던 강원도 영동 지방의 어느 겨울 그의 아내가 그 고되고 정직한 노동으로 눈덮힌 추운 하루를 보내는 아낙들을 위해 눈내리는 진부령 산맥 한 자락 작은 불빛 아래 밤새 털목도리를 짜는 풍경은 어떤 흑백 뮤직비디오처럼 아름답고 처연하기까지 하다.

저녁때 눈발이 서는 동네로 들어서는 아주머니들이 똑같은 색깔의 똑같은 크기의 목도리를 목에 감고 있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밤을 지새워 목도리를 짜는 아내 곁에서 산맥의 겨울 바람 소리를 듣던 생각을 하면 추위가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새삼 그립다. 인생의 과정들. 어느 하나인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목도리>

때때로, 시처럼 포근한 언어. 여울물 소리를 베고 선잠을 자는 시골 풍경이 한 장의 선명한 풍경화처럼, 자근자근 노래하는 음악처럼 그렇게 내게로 전해져 옴을 느낀다.

 

똑같은 음자리로 자근자근 노래하는 여울물 소리를 베고 선 잠을 잤다. <선배의 모습>

그가 산문 속에 풀어 놓는 그의 젊은 시절, 서슬퍼런 군부 정권의 말단 공무원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던 그 어두운 시절 정서적으로 힘겨운 일들을 해내었어야 했던 회상 속에서도 선배, 동료 등 인간을 향한 따스한 시선은 한 편의 동화처럼 애잔하다. 그는 눈발이 소복히 쌓인 정월 초하루 이브날, 가족과 어린아이를 보기 위해 도망자의 긴장을 늦추고 들렀을 도벌꾼을 체포하러 눈덮힌 산길을 올라 그를 잡았지만, 느슨해진 경계를 틈타 도망가는 도벌꾼을 그 자리에서 놓치고 만다. 아이는 소리 내 울고, 아내는 소리 죽여 울고. 우는 아내와 아이를 뒤로 하고 도망가야 했던 도벌꾼을 대신해서 아가에게 건네는 동료선배의 한 마디. 아가야 아빠 까까 사러 갔다. 이일로 그들은 직무 유기로 위기에 처하지만 다행히 시말서 한 장 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때 권 주사가 울고 있는 도벌꾼 아내와 어린 것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아가야 아빠 까까 사러 갔다."

나는 지금도 가끔, 문득 그 말이 생각나서 목젖이 뜨끔 하다. <어떤 직무 유기>

늦가을 산정 육백마지기라는 고원에서 방화선 보수작업을 하는 열흘동안 묵은 늙은 심마니들의 통나무집에서 알게된 어린 소년과의 인연을 회상하는 <약속>이란 글은 30년간 지키지 못한 약속을 가슴에 묻어둔 사연이다. 눈보라치는 겨울 산정에서 친구도 없이 겨울을 나야 할 소년의 참담한 고적이 태산같이 그의 앞길을 가로 막자 내년 봄에 산불을 감시하러 다시 와야 하기 때문에 내년 봄에 꼭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으나 충북 도청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30년 전 이야기였다.  

아저씨 대신 산림 경찰관 노릇을 잘 하고 있으면 뽀얗게 바람꽃 이는 이른 봄에 꼭 오마고 약속을 했다. 그제야 소년은 길을 비켜 주었다. 중략. 지는 가을 햇빛이 드러난 조그만 한 점 외로움의 실체가 눈물겨워 차마 숲속으로 난 길을 들어설 수가 없었다 낮에는 중중한 산봉우리와 밤에는 별들이 고작 소년의 동무일 뿐인 산정에서 소년은 긴 겨울을 어떻게 살 것인지. 중략. 소년은 내가 목에 걸어 준 그 호각을 떼쓰듯 불고 있었다.  아저씨 꼭 바람꽃 일면 와야돼. <약속>

 작가가 적고 있는 그리움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식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에 대한 기억이고, 현재를 과거와 구분짓는 방법이다.

 

삶이란 가증스러운 이중인격의 출중한 연출이다.라는 삶의 괴리로 시계의 노예가 되어 살았다. 지금은 시계를 안찬다. 필요가 없다. 자유의 반을 얻은 줄 알았는데 아니다. 자유의 반을 잃은 데 불과하다. 시간에 도외시당한 삶은 형기를 채우는 수형자처럼 부자유하다. <기둥시계>

그의 글은 시대의 아픔을 함께 기억한다. 6.25가 나던 피난 행렬을 따라가던 중 만난 사나운 강에서 가까와지던 포성 소리를 뒤로 하고 열세살 작가 목성균을 등에 업고 물살을 헤치던 기억이 그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아버지 등 뒤에 박힌 점을 본다. 그리고 떠내려 죽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아슬아슬 초인적인 힘으로 위기를 넘기고 강을 건넌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다.

 

강변 모랫바닥에 엎드려 오른쪽 어깨 죽지의 검붉은 반점이 들석거리도록 소리없이 우시던 아버지의 아픈 한 시대는 그 흐린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아버지의 반점은 그때 그 아픈 강과 더불어 분명하게 내 머리속에 남아 있다.<아버지의 강>

이 책은 두고 두고 어릴적 아껴 숨겨놓은 초콜릿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먹듯 한편 한편 작가의 시대를 떠올리며, 그 흑백사진같은 풍경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머리 속에 그리며 한편 한편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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