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시간을 지배할 것인가 - 시간에 쫓기는 사람에서 시간을 리드하는 사람으로
클라우디아 해먼드 지음, 이아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기억과 시간이라는 주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이다. 기억의 영속성은 자아의 많은 부분을 형성한다고 믿는다. 순간이 완전히 상실되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있는 것과 같으리라. 해머가 손상되면 그렇게 된다고 한다. 모멘토와 같은 많은 영화들이 기억과 시간을 다룬다.


시간이 흐르면 현재라고 느끼는 것은 기억으로 바뀐다. 기억 속에서 재생될 현재의 시간은  상상과 회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래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시간을 쪼개고 나누고 측정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지어 추상적 개념을 명확하게 밖으로 끌어내지만, 사실 시간은 그렇게 자로 대듯 명확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다. 현재 속에는 과거와 미래가 항상 혼재되어 있고 시간인지 기능은 기억의 재생과 상상 속에서 떠돈다.

 

장기기억장치로 보내지 않고도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은 3초이다. 그러니까 순간의 단위는 3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짧은 단위의 시간동안 혹 순간이라 불리우는 시간동안 극도의 강력한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짧은 동안 멈춘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매우 긴 시간을 느낀다. 내가 미국에 잠시 머물던 때에 음침한 블랙 프라이데이의 밤 빗길에서 양차선 방향의 차로가 일방차선인지 순간적으로 혼동하면서 좌회전을 하다가 머뭇거리는 사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려오던 차에 받쳤고, 차가 빙글빙글 돌아 한쪽 구석에 처박혔던 그 짧은 순간동안, 나는 아주 길고 긴 생각이 떠올랐었다. 아 이 먼 땅에서 죽는구나, 나의 어린시절, 청춘이었던 시절, 힘들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곧 다시 또 죽으면.. 장례식은 어떻게 치러질까. 한국의 부모와 친구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아이는... 아아 내 잘못으로 아이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살게 된다면 어떠한 모습이 될까..내 차가 잘못이므로 뒤차에 인명 사고가 있으면 나는 감옥에가고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게 될까..이런 많고 많은 생각들이 그 짧은 순간 나와 아이가 말짱하고 다행히 2차 사고 없이 부상 없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된 그 짧은 순간에 내가 느낀 시간은 아주 길고도 또 길었다. 마치 슬로우 모션 카메라로 사고 당시의 시간만을 천천히 늦춘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시간을. 사람이 시간을 인지하는 것은 시계가 가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나만의 생각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째깍째깍 정교하게 깎아 나눈 완벽한 양적 치수가 아니라 인간이 겪는 시간의 질에 따라 그 느끼는 양이 좌우되는 것이다. 우리가 갈라놓은 시간의 경계는 우리의 뇌가 인식하는 시간의 경계와 다르다. 어릴 때에는 1년이라는 시간이 지금 10년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매우 긴 시간이었다.  비례이론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수학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40세는 한 해가  일생의 40의 1에 불과하지만 8세 때는 한 해 전체가 훨씬 더 중요한 1/8로  느껴지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례이론은 시간 지각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관심과 감정을 무시한다.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서 특별히 행복했던 경험이나 나쁜  경험 한 두 가지를 떠올리라고 하면 그 기억은 15세에서 25세 사이의 기억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이 시기에 발생한 경험에 관한 기억들이  많은 사실을 회고절정이라 부른다. 회고절정이 가진 열쇠는 새로움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첫관계, 첫 직장, 부모로부터의 독립, 첫 여행 등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생의 새로운 일들을 많이 경험하고 기억한다. 또한 이 시기는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어서 생생한 기억을 각인시킨 후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기억들을 평생 간직하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마음속으로 시간여행을 하여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는 능력은 정체성에 관한 심오한 기능을 제공하여,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한정된 인생의 의미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반면 성인이 되었을 때는 두드러진 순간들이 적기 때문에 훨씬 더 시간이 빨리지나 간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매일 매일 새로운 세계를 경이로운 눈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곳을 찾아 다니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서  수많은 사건들이 촘촘하게 지각과 인지 기능을 활성화시키던 어릴적 1년은 작은 단위의 시간 시간을 긴 시간이라 느낄만큼 많은 밀도 높은 경험들로 풍부하게 채워 넣었기 때문에, 매일 똑같은 사람들과 딱히 기억나지 않을 행동들을 하며 매일 마주하는 풍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상을 사는 어른이 되어 느끼는 1년보다 훨씬 더 강렬한 자극들로 시간 시간을 가득 채운다. 반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비록 하루 하루 순간 순간은 별 변화없는 무료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낄지라도 결국은 어느새 시간은 쏜살같이 가버려 엊그제 같았던 1년전을, 한달전 같았던 2년전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저자는 홀리데이 패러독스라고 명명하였다. 휴가를 즐겁게 보내고 있을 때는 시간이 금세 지나가는 것 같지만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한참 만에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와 어린 아이들을 키울때 하루하루가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은 데도 어느새 일 년이 금방 지나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루에 59번 혹은 깨어있는 시간 동안 16분마다 미래를 생각한다고 한다. 망상, 멍때리기, 공상, 상상 이런 것들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을 재생하는 것보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 혹은 일어날 가능성이 없을 미래의 것일 가능성이 많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울증에 걸리면 시간 개념이 왜곡되어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이가 최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15분이라는 말이 성인에게도 해당되는가 보다.  매 16분마다 미래를 공상한다면 우리에게 시간 개념의 현재 축을 넘어가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어쩌면 삶의 본질과도 같다. 현재를 사는 것의 의미가 어떤 일의 집중하는 일부의 시간을 제외한다면 미래를 생각하는 것에 바쳐진다면, 현재를 사는 것이 미래를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말, 추상, 개념 이런 것들 속에서 다만 언어적 분리만 있을 뿐. 그런데 이것이 깨진다면,  미래가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면, 이 비루한 현실을 벗어날 길은 미래로 걸어가는 게 아니라 걸음을 멈추고 삶을 끝내는 것일 게다.

 

기억력의 저하는 또한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는 능력의 저하를 수반한다. 과거를 떠올리는데 이용되는 뇌 부위는 대부분 미래를 상상하는데 이용되는 부위와도 겹친다. 결국 기억은 재구성과정인 것이다. 

 

우리는 멋진 곳에 휴가를 가서도 그곳의 현재를 온전히 현재로서만 향유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훗날 기억하게 될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된다. 여행지의 어디를 가볼까 어디에서 밥을 먹을까 하는 생각들.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은 채 마음을 먼 곳으로 떠나 보내지 않고 현재에 충실할 수 있기를 희망한 근사한 휴양지에서조차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 축을 오가며 현재의 순간들을 소비한다. 그러니까 생각이라는 것이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지 않는 한 과거와 현재가, 현재와 미래가 뚜렷한 경계를 갖지 않은채 자유롭게 교차하는 뇌의 작용상 현재는 순수하게 완전히 현재이거나 혹은 현재가 완벽하게 미래나 과거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음속의 시간 여행은 오르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공감각은 특별한 사람들한테서 만 볼 수 있는 능력이지만 보통 사람들도 대개는 시간을 공간적으로 상상한다. 많은 언어에서 시간을 거리를 나타내는 언어로 길다 짧다 멀다와 같이 사용하고  많다 적다와  크다 작다와 같은 양적 표현을 쓰고, 3차원적으로 그린다. 가자 지구에 억류되어 있던 앨런 존스톤처럼 시간은 흐르는 강물이라 생각한다면 갇힌 채 반복되는 공허 한 낮과 밤 속 끝없는 순환을, 계속해서 앞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과 결국 어느 날은 어딘가에 도달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그는 시간의 바다 위에 놓인 자신의 배가 널판지로 만들어진 뗏목이라고 상상했다. 억류된 상황에서도 시간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상상함으로써 시간이 자기 자신을 앞으로 데려가 결국 미래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은 우리에게 하루 하루가 비참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


저자 클라우디아 헤먼드는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보스턴 대학교 심리학 강사이다. BBC 라디오에서 뇌와 행동의 관계를 파헤치는 프로그램 <All in the Mind>과 20세기 심리학의 발전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Mind Changers>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의 글은 읽기 쉽고, 어려운 전문적 용어는 피하면서도 시간이라는 개념과 시간 인지에 대한 지식을 다양한 소스를 이용하여 다양한 각도로 접근한다. 제목을 보면 시간을 다루는 방법이라는 측면의 자기 계발서에 가까와 보이지만, 인문 교양적인 통찰력이 풍부하고 흥미하고 재미있는 생각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