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Human Stain)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인간의 깊고 깊은 내면을 마법같은 언어로 펼쳐놓는 필립 로스의 소설을 비주얼한 이미지로 바꾸어 영화화할 생각을 한 감독은 용감했다. 니콜 키드먼, 안소니 홉킨스 같은 위대한 배우가 있으니 그걸 믿었나부다. 그래도 DVD로 보기엔 지루한 건 어쩔 수 없다. DVD로 졸지 않고 보려면 때리자 부수자 하는 액션 재난 영화이거나 오골오골 닭살 돋는 로맨틱 코미디가 제격이지, 이런 류의 드라마는 아니다. 졸면서 봤지만. 어쨌든 그나마 한 줄이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낯선 여행지 모텔에 누워 2시간 동안 졸음을 쫓아가며 보았던 시간들은 흔적도 없이 뇌 속에서 사라지고 말리라는 우려에... 네이버 영화 DB를 뒤져봤다. 필립 로스가 원작이다. 필립 로스의 또다른 소설 <에브리맨>을 멀리 떨어진 옛 친구와 함께 읽으며,  이메일로 나이 먹어감의 허망함을 공유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원작 소설 속 문장들이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종류의 것들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난 영화로 본 걸 소설로 다시 읽지는 않는다. 영화 속에서 이미 비주얼이 굳어져 소설 보는 상상력의 차원이 단차원이 되면서 재미가 뚝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로 본 걸 영화로는 본다. 내 상상과 영화적 상상의 일치를 비교하는 일은 즐겁다.

 

감독은 로버트 벤튼이라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유명한 감독이라고 하는데, 수상작들이 오래된 영화여서 잘 모르겠고,  남자 주연은 안소니 홉킨스, 여자주연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얼굴이 에쁘다고 생각하는 니콜 키드만이다. 콜만(안소니 홉킨스)은 대학의 학장이며 유명 교수인데 스푸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종차별 사건에 휘말려 직장도 그만두고, 그 충격으로 아내까지 잃는다. 모든 것을 잃고 분노만이 남은 이 늙은 남자 앞에 니콜 키드만(퍼니아)이 나타나고, 둘은 격정적인 사랑을 한다. 아무 물건도 소유하지 않고, 허름한 농장에서 소젖을 짜주며 연명하고 있는 퍼니아는 알고 보면 어릴 때는 양아버지에게 성폭력을, 전남편에게는 쇠파이프로 몇일간 기절할 때까지 폭력을,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은 화재로 잃는 사건을 겪은, 그래서 희망이라고는 없는 바닥 인생의 맨 밑바닥을 살아간다. 뿐만 아니라, 그 폭력적인 전남편은 시시각각 그를 피해 숨어다니는 그녀를 스토킹하며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바람 앞의 촛불같이 아슬아슬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녀는 갖가지 불행으로 점철된, 오염된 자신을 먼저 드러낸다. 불편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남자에게 성추행의 경험을 흘린다. 상처가 모여 인생이 되면, 스스로 건드리고 후벼파는 것도 고스란히 인생이다.  



퍼니아의 인생은 얼룩 투성이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늙은 전직 교수 조차도 너무 과분하다. 


당신은 너무 젊어. 내게는 100살쯤 되는 남자가 필요해. 


그녀에게 그 남자의 상실감은 단지 사치에 불과하다. 육체적 향락 외 모든 관계를 거부하는 그녀는 다 늙어 직장 그만둔 게 뭐가 대단한 거라고 징징거리냐며 히스테리를 부리지만, 콜만은 그녀를 만나면서 반평생 자신이 숨겨왔던 가장 큰 오점 하나를 상기한다.  그는 흑인이었던 것이다. 부모, 형제 모두 까만 피부를 가졌으나, 예외적으로 흰 피부색을 가진 콜맨은, 대학시절 죽을 것처럼 사랑하던 연인이 자신의 부모를 방문한 후 떠난 것을 계기로, 부모 형제와 연을 끊고, 돌아가셨다고 말을 하고, 모든 서류의 인종 표시에는 백인으로 표시하고, 그렇게 자신의 루트를 속임으로써 편견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니콜 키드만의, 불행 앞에 자신을 온전히 다 내어주고, 모든 것을 초월한 연기는 완벽한 얼굴과 몸매 만큼이나 흠잡을 데 없다. 단지 많은 생각을 소비해야 하는 원작을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자칫 지루해지고, 길을 잃기 쉽고, 졸거나 자기 쉽다는 걸 알아야 한다. 원작을 글자로 읽었다면 글 속에서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멋지게 연기했다는 생각으로 더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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