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2편에도 1편과 마찬가지로, 호프스테더의 <괴델, 에셔,바흐>에서 차용한 3성 대위법적 구조를 이어간다.
1편의 주인공 에셔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1898~1967)로 대체되었지만 에셔가 추구한 상식의 파괴, 일상의 파괴라는 관점에서
마그리트의 이율배반적 주제는 에셔와 연결점을 가지고 있기에 2편에서도 간간히 등장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는 비중이 조금 줄었다.
에셔의 패러독스는 통사론 쪽 규칙을 깨어, 애초에 문법 자체가 틀린 그림인데 비해
마그리트의 패러독스는 문법은 맞지만 의미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매 장마다 주제를 제시하며 등장하는데, 그가 추구했던 철학적 주제인 인간의 조건, 사물의 교훈, 말과 사물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된다. 1편에서 고대 미술부터 중세 암흑기와 르네상스, 고딕, 바로크 로코코에서 인상파까지로 연대순의 예술사조가
이어졌던 점에 비해, 이번편에서는 주로 미의 철학적 기반을 해석학을 중심으로 탐구하면서 시대 구분 없이 많은 예술 작품들을 논한다.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시대는 어떻게 대답해왔는가에 집중한다.
현대예술은 당시 주류였던 인상주의의 성과를 안고 다시 고전주의로 회귀하려
했던 세잔(1839-1906)에서 그 모태를 찾는다. 마치 모자이크처럼 회화를 구성한 세잔은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본 시각적 단편들을 모아 그
하나의 평면에 재조립하고자 했던 입체주의자들과 풍부한 색체와 빛나는 표면을 처리한 마티스와 같은 야수파들에게 큰 영햐을 주었다.
세잔의 영향으로 '피카소는 대상에서 형태를 해방시켰고 마티스는 거기서 색체를 해방시켰다'. 이렇게 추상,
표현이라는 경향에 기성품을 예술로 변환시키는 레디메이드와 전통적 화법으로 현실이 아닌 환상의 세계를 그리려 했던 초현실주의가 보태어 현대
예술의 특성이 가시화된다. 레디메이드는 다다이스트들이 즐겨 사용한 기법이고 초현실주의는 살바도르 달리, 호앙 미로, 막스 에른스트, 르네
마그리트를 예로 들었다.
예술은 정보소통 과정이라는 주장은 이렇게 설명된다. 창작이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암호화하는 과정이라면 예술가의 작품을 보러 오는 관객은 전언에 해당되고 관객이 이해하는 과정을 해독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작품을 해독하려면 예술적 소통의 사용되는 약호인 예술 언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이 책은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언어이자
작가가 작품 속에 암호화한 정보를 해독하기 위한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약호를 다룬다.
베네데토 크로체(1866-1952)은 최초의 현대 미학자로, 그에 따르면
예술은 직관이라는 관조적 활동, 일종의 인식이다. 직관은 감각을 넘어선 어떤 정신적 능력, 즉 머리속에 그려지는 표현이다. 표현은 외계에서
받아들이는 감각자료인 질료를 이용해 많은 양의 인상들을 용광로 속에 혼합하여 무정형 인상에 형식을 주는 활동이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예술 뿐만
아니라 언어도 표현이며 곧 예술이다.
'실제로 인류가 최초로 언어를 만들어 냈을 때 그건 시에 가까웠을 거다.
P83'.
마르틴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 속에 사물의 가려지지 얺은 참모습, 진리가
있다고 했다. 그 예로 고흐의 작품 <구두>가 등장하는데, 이 그림 속에 담긴 진리는 들 일을 하는 이의 근원적 고통, 밭고랑운
걷는 강인함,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 저물녂 들길의 고독과 같은 하나의 물건이기 이전, 촌 아낙네의 삶속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존재자의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하르트만(1882-1950)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구조는 예술작품의
물질적 기체인 전경과 이 전경에서 떠오르는 정신적 내용인 후경의 두 계층으로 이루어지는데, 후경은 다시 여러개의 계층으로 이루어진 중전 구조를
이룬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가시적인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드러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상업 부르주아지의 안락한 삶 대신
화가의 길을 택했고, 국가나 귀족들에 위탁해 작업을 했던 이전 화가들과는 달리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작품을 팔아 생활하는 최초의 자본주의적 화가가
된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은 그가 최초의 불행한 자본주의적 화가가 되어가는 과정의 내면을 얼굴을 그린 자화상에 그대로
투영하였다.
세계 속에 살고 있으므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그 세계 속의 지식체계나
가치관에 물들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선입관이라고 하는 선이해는 이해의 전제 조건이다. 고대인들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처럼 신화적 세계관을 가져야 하나 해석학에 따르면 자기 시대의 이해의 지평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 속의 선입관을 지운다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텅빈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선입관 체계는 이해의 지평이고 모든 시대는 저마다 이행을 지평을
갖고 있으며, 모든 사물은 이해의 지평에 올려 놓아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1900-2002)에게 작품은 근원적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독자에게 새롭게 열리는 은폐된 사물의 참모습이다. 예술은 은폐된 사물의 미메시스(모방)이며 재현이지만, 사물의 외관을
그대로 본뜨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은폐된 참모습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안개낀 바다 풍경을 끈질기게 묘사한
윌리암 터너는 안개가 불편하기만 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안개의 시각적 효과, 안개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감추어졌던 바다풍경의
아름다움을 보게 해준다. 여러개의 시점에 위해 조각조각 잘려 뭘 재현하는지도 모를 입체파 화가들의 그림조차도 파편 화 된 현대
세계와 소비를 위한 생산에서 비롯된 대상의 통일성의 파괴를 재현한다는 것이다.
미국 미학자 웨이츠에 따르면 예술에는 본질이 없다. 예술의 개념 을 정의
속에 닫아 놓지 않고 열어 놓는게 전통적 예술관념을 깨는 모더니즘을 설명 가능하게 하고 예술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 분석 미학자 조지 디키는 예술가, 비평가, 화상 등 예술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인 '예술계'가 예술 작품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대상을 예술 작품으로 보았다. 한 마디로 그리고, 비평하고, 사고 팔고, 삐딱한 한 마디 더 보태면 돈 벌고 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거다. 뒤상의 변기는 예술계에서 자 이제부터 뒤상이 서명한 변기는 예술이다 라고 정의했으므로 그게
예술이라는거다. 대중이 현대예술을 외면하는 이유는 정당했다. 예술은 작품과 수용자의 관점에서 점점
멀어져서 이제 예술이란 예술계에서 자격을 부여한 대상이라는 디키의 의견은 갈 곳없는 현대 예술의 자화상이자, 서글픈 그들만의 세상 속 새롭게
정의한 때묻은 예술이다.
로만 야콥슨에 의하면 실어증에는 유사성 장애와
인접성 장애의 두가지 형태가 있다. 유사성 장애는 언어의 선택축이 망가져 낱말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으로,
문장에서 거의 모든 낱말이 사라지고 대명사나 접속사만 남는다. 인접성 장애는 낱말들을 연결시키는
결합축이 망가져 문장 속에서 접속사, 조사, 활용 어미와 같은 연결어들이 전부 사라진다. 유사성 장애는 생각나지
않는 단어를 그 단어가 지닌 성질로 대체시킨다. 누군가 다가올 때 발자국이 다가온다라고 대체된다. 이것은
환유이다. 반면 인접성 장애가 있는 경우 비슷한 성질을 가진 다른 사물로 대체 된다. 아름다운 그녀가 산딸기 꼭지
되는 것 ,이것은 은유이다.
현대의 열린 예술 작품은 일상적 전언보다 엄청나게 큰 의미의 용량을 갖는다.
결국 작품은 수용자의 머리 속에서 구성된다.
마그리트와 에셔의 작품, 소크라테스와 에셔의 대화, 그리고 진중권의 구어체적
매력적 글쓰기가 바하의 음악처럼, 에셔의 동판처럼 따로 또 같이 계속 조바꿈을 하며 결국 커다란 줄기에서 하나의 맥락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이 책.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할 구절구절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