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얼음 왕국은 안델센 원작의 눈의 여왕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눈의 여왕에서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 스토리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다르다. 나는 과거 유치원을 제대로 안다녔던 모양인지 이제서야 처음으로 윈작을 봤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도 눈의 여왕 자체 스토리를
접해보지 못했다. 원작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눈의 여왕은 북극 근처의 스피츠베르겐 섬에 살며 게르다가 카이를 찾아 간 곳은 눈의여왕이 여름을
지내기 위해 가 있던 핀란드의 라플란트라는 곳이었다. 눈의 여왕은 차갑고 흰 눈으로 된 코트와 모자를 쓰고 있으며 카이를 납치하고 자신의
코트안에 들어오게 하고 두번의 입맞춤으로 카이를 춥지 않고 기억을 잊도록 하는 마술을 부리고, 그가 자유로워지려면 얼음 조각으로 영원 이라는
말을 맞춰야 한다는 과제를 내주는 것 외에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 캐랙터와 차갑고 흰 눈의 나라라는 환상적아 배경은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한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악마가 만든, 모든 것을 못생기고 찌그러지고 일그러지게 보이도록 하는 거울을 신들이 있는 곳으로 가져가다가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나고, 그 조각이 카이의 심장과 눈에 박히면서부터 전개된다. 카이와 게르다는 서로 옆집에 살며 오누이처럼 지내는 사이이다. 둘은
정원의 장미꽃 아래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곤 하면서 자란다. 그러나 악마의 거울이 박힌 카이는 썰매를 타고 나타난 눈의 여왕의 썰매에
자신의 썰매를 묶고 놀다가 납치되어 떠나버리고, 카이를 좋아하던 게르다는 카이를 찾아 나선다. 처음 만난 외로운 노파는 게르다를 곁에 두고 싶어
게르다의 기억을 없애고 정원에 핀 장미를 땅 속으로 감춘다. 노파의 모자에 있던 장미를 보는 순간 정원에 장미가 없음을 이상하게 여긴 게르다는
정원으로 나가 장미꽃을 찾다가 울음을 터트리고, 흘러내린 눈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장미를 다시 밖으로 피어나게 한다. 배경처럼 카이와 늘 함께
했던 장미꽃밭을 본 순간 모든 기억을 회복한 게르다는 다시 카이를 찾아 나서고, 까마귀에게 카이가 어떤 성에서 공주와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지만 공주와 살고 있는 남자 아이는 카이가 아니다. 게르다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공주는 게르다가 카이를 찾을 수 있도록 그녀에게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화려한 마차와 시녀들 따뜻한 부츠, 털장갑 등을 선사하지만 산적떼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산적 딸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산적의 딸 역시 게르다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카이를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의 순록을 제공하고 성을
빠져나가도록 돕는다. 우여곡절 끝에 카이를 만난 게르다가 눈물을 흘리자 그 눈물은 카이의 가슴에 스며들어 심장 속에 박혀있던 거울 조각을
빼내고, 기억을 찾은 카이의 눈물은 눈 속에 박힌 또다른 거울 조각을 빼내으로 카이는 예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얼음조각은 영원 을 맞추어
성에서 풀려나게 된다. 마을로 돌아온 카이와 게르다는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가 성경을 읽고 있는 방문을 열고, 이 모든 모험을 끝낸 그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원작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역시나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 사건의 디테일은 빠지고 어른의 마음으로는 이해불가한 요소들과 엽기적인
면들을 볼 수 있다. 가령 엄마에게 업혀있던 산적의 딸은 엄마의 귀를 물어뜯고 해괴하지만, 그녀가 게르다에게 도망갈 계획을 주도하는 행동은
어른같다. 또한 당시 인육을 먹는 문화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듯한 문장 하나가 눈에 띈다. 산적들이 공주가 마련해준 게르다의 화려한
마차를 습격하고 시녀와 마부들을 모두 죽인 후 게르다의 엄마가 게르다를 보며 포동포동하게 맛있게 생겼다며 칼을 들이대는 장면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선조 때 임란으로 피폐해진 백성이 인육을 먹는다고 보고받는 실록의 기록을 읽고 끔찍해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사람이고 백성 중 하나였던
산적이 인육을 먹는 듯한 장면이 어린이의 동화책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되어 전해져 오는 점을 있을 무심히 지나간다. 눈과 심장에 마법의
거울이 박힌 카이는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생생한 캐릭터가 없다. 게르다가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길이 없다. 악마의 거울이 박히기 전의
카이와 게르다가 서로 오누이 처럼 사이가 좋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고, 오직 그 이후 이야기 뿐이다. 카이 뿐 아니라, 신비한 눈의
여왕도 마찬가지이다. 카이를 왜 데려갔는지, 무엇을 할 작정이었는지 오리무중이다. 그동안 게르다가 카이를 찾기 위해 겪은 모험 속에 모두
꿈인듯 희미하나, 그 모험이 끝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을 때, 그 둘은 성인이 되어 있었다.
안델센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환상적인 이야기의 뼈대만 만들었을 뿐, 각각의 캐랙터에 생명력을 불어놓지 않았다. 어린아이용 동화는 정서적인
디테일이 필요하지 않다. 아이들은 스토리에서 고유의 느낌들을 스스로 찾는다. 만일 5~6세의 아이들에게 눈의 여왕은 어떤 사람이야? 게르다는
어떤 사람이야? 좋아 싫어? 이렇게 묻는다면, 그 아이들이 이야기속에서 창조해낸 캐랙터는 동심 속에서 무한한 생명력을 갖는 생생한 캐랙터가
될까. 나는 참 궁금하다. 느낌을 전지적 시점에서 전달해줘야 알아먹는 성인들의 세계와 스토리만 가지고도 무한한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를 어린이들의 잠재력. 그것들의 커다란 시간이라는, 성인이 된다는 것의 갭을 안델센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