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파리와 낭만을 연결시키는 고리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각인된 어떤 상징화된 사건이나 강렬한 스토리가 있는 걸까? 아니면 전세계 모두에게 파리는 낭만의 도시라는 의도된 도시 이미지 마케팅이 쌓이고 쌓여 어느순간 하나의 대명사처럼 낭만의 도시 파리가 되어 버린 걸까? 파리 위드 러브 니 로마 위드 러브 같은 제목의 영화들까지 나와 있는 걸 보면 딱히 우리나라에서만 보편화된 인식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어딜 가나 낭만을 결정하는 것은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다. 세느 강변을 걷는다고 푸른눈의 백마 왕자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몽마르트 언덕에서 차를 마신다고 해서 서늘한 외모의 지적인 예술가와 사랑을 속삭일 것도 아니고, 에펠탑이 코앞에 있다고 해서, 르브루 박물관 앞에서 바게트를 들고 다닌다고 해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통채로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유럽을 꿈꾼다. 그 꿈에는 파리나 로마나 바르셀로나 같은 역사적인 유럽의 도시에서 그들이 "되어" 그들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은 경우도 많다.  이 책의 저자 손미나가 그랬다. 그는 단지 파리지앵이 되어 보고 싶은 것 외에는, 그리하여 그 느낌을 글로 쓰고 책을 낸다는 부차적인 이유 말고는 별다른 목적 없이 파리로 날아갔고, 에펠탑이 보이는 고풍스런 석조 건물의 아파트를 렌트하고 관광객들과 노인들 틈에 섞여 에펠탑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고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미술관을 구경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러나 꿈같은 낭만과 활기로 가득차 있을 줄로만 기대했던 파리는 우울하고 불친절 했고, 그녀에게 적대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파리지앵들을 사귀면서 결혼과 사랑에 대한 그네들의 가치관을 엿보기도 하고 따뜻한 인간적인 속내를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막연한 파리지앵의 꿈을 가진 청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누추한 현실의 껍데기를 훌훌  벗어던지고 떠나고 싶은 영혼에 작은 위로를 준다. 마치 파리에서 살다 온 친한 친구의 모험담을 듣는 것처럼 가볍고, 신변잡기적이다.   여행서라기엔 정보가 부족하고 산문집이라기엔 깊이와 사유가 부족하고, 화보 역시 대개 지인들의 인증셧 위주이다.  파리에서 지내면서 생겼던 자잘한 일화들에 자신의 생각과 파리인에 대한 일반화를 덧붙이는 방식의 글이 대부분인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감동적인 것도 없고 재미있지도 않지만 한 때 스타였고 TV에 얼굴이 알려진 사람의 사생활과 마음속 끝 생각들을 낱낱이 엿본다는 면에서는 부족함이 없고 솔직하다. 책을 써 낸다는 것이 글 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지식과 가치관과 때로는 인격까지도 은연 중에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 타인의 시선 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을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미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솔직하게 읽힌다. 문장은 평이하고 어휘도 무난해서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책이다.

 

파리인과 한국인의 중산층의 조건에 대한 부분은 이미 인터넷에 수도 없이 돌던 내용인데다가 자국민에 대한 자학적인 성격인 게, 한국인의 중산층의 조건은 말 그대로 경제적인 정의에 해당하지만 파리인의 조건이라는 것은 중산층이 대체적으로 가진 삶의 자세나 태도 같은 걸 적어 놓았다.  여행서가 대개 그렇지만 객관적인 정보와 작가의 지적 경험적 한계 속에서 일반화시켜 놓은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몇몇 사람들의 생각이 그 나라 사람, 파리 사람들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젠 서구문화에 대한 환상, 한 물 가지 않았는가. 그런 측면에서 봤을때, 조국을 잃은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통해  시대적 비극과 개인적 비애들을 함께 통감했던 지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고, 그동안 빠르게 진행된 세계화와 여행의 대중화를 통해 파리는 더 이상 그리 먼 곳도 그리 꿈꾸는 곳도 아닌 지금,  이런 류의 에세이는 조금 시대착오적인 느낌도 든다. 별 목적도 없이 가서 그리 놀다 오는 거, 손미나 작가로서야 이미 네임드 밸류를 가진 작가이자 전직 아나운서이기 때문에 노는 것 자체가 여행 글쓰기의 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허용되는 예외이지만 모든 청춘이 사대 사상에 오염되었을 지도 모를 허황된 꿈을 쫓아 파리로 날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일반인에게 허황된 꿈은 그냥 망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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