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선 1
필립 마이어 지음, 임재서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LA에서 시작해서 루트 66을 타고 건축 대학과 미술관이 있는 주요 도시들을 들러 들러 텍사스까지. 

 

 지난 해,  보름 동안 지루한 사막을 가로질러 알버커키와 산타페를 들러 도달했다가  바로 밑 샌안토니오로 내려와, 멕시칸 국경선과 자주 맞닿은 도로를 타고, 미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들을 들러 뜨거운 여름을 달려 돌아왔던 그 길. 그 길 위에서..

 

 구석 구석 숨어 있는 인디안 자치 구역과 박물관, 그들을 기념하는 자잘한 관광지들을 거치면서 나는 그들이 아직까지 지키려고 하는 그 초라한 명분인 보존과 전통이라는 것이 한없이 슬펐다. 국가와 자본주의와 밤에도 불빛이 넘치는 도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를 때, 그 때 용감한 전사가 되어 죽고, 면역 없이 수천만년을 살아온 그 땅에 무지막지한 수의 백인 인구가 전파한 전염병들에 의해 죽고, 한 겨울 배반과 능욕으로 얼룩진 땅에서  쫓겨나면서 기아와 추위에 죽어, 그렇게 죽고 또 죽고 계속 죽어, 이제 겨우 100만의 인구수로 명맥만 잇고 있는 그들.  차라리 좀 더 적극적으로 백인들과 동화되고 그들의 개가 되었다면, 그처럼 고립된 채로 스스로 패배자의 상처를 팔아 연민을 구하고 삶을 연명하는 비루한 인생으로서,  자신들 스스로 국가 없이 지켜왔던 수천년 역사의 피날레를 그렇게 슬프게 장식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를텐데.. 라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자치구역에서 파는 조잡한 액세서리들. 맛없고 비싼 음식들. 80%에 육박하는 높은 실업률과 그들의 삶에 대해 내가 아무 것도 모르더라도 피폐한 그들의 삶의 언저리를 여행 중 어디에서곤 발견할 수 있었다. 숱한 역사 박물관을 거치면서 보았던 개척민들의 인디안 정복의 역사가 실은 전대미문의 인류 학살과 다를 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여정의 하나였음이 그것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그래서 결국은 즐거움을 찾는 그 과정 중의 하나였음이 불편하였고, 앵글로 색슨의 후예들이 판매하고 또다시 그들이 소비하는 인디안 컨텐츠들이 못마땅했다.

 

 지배자의 반성과 자성의 전시는 씻을 수도 , 돌이킬 수도, 용서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역사는 늘 승리자를 위해 다시 쓰여졌다. 짧은 미국의 역사는 그 시작 자체가 원죄에 가깝다. 그들이 "위대한 개척" 정신으로 포장한 살육과 약탈 행위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어메리칸 인디안들에게로만 한정되지 않았다. 인디언들과도 미국인들과도 평화롭게 섞여지내던, 그곳에서 미국인들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서구 문명"을 일구고 커다란 저택과 화려한 가구를 소유하고 이웃이 되어 함께 살아온 멕시코인들의 터전에 잔인하고 몰인정하게 뿌린 피의 댓가도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100 여년 동안의 폭력과 정복의 서사를 다루는 필립 마이어의 두번째 소설 더 선은 석유재벌 매컬로 가문의 연대기를 서로 다른 시간과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시점을 통해 재현한다.

 

 19세기 말,  아직 코만치 인디언이 세상 물정을 깨닫기 전, 가족을 몰살한 인디안에게 잡혀간 어린 엘리(대령)의 시선에서 써내려 간, 코만치 인디안들의 생활. 묘사는 치밀하고 섬세하지만 담대하고 서늘하고 거침이 없다.  이렇게 디테일이 담긴 당시 코만치 인디안의 생활과 가치관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 또 있을까. 거의 절반 이상이 당시 코만치들의, 잔인하고 야만적인, 그러나 그것이 삶이었던, 습격으로 점철된, 배타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그들의 삶을 밀도 높게 그려져 있다. 엘리는 자신의 가족을 잔혹하게 학살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처음에는 살기 위해 그리고 점점 더 열성적으로 코만치 인디안이 되어 간다. 정체성에 대한 혼동이나 백인으로서의 자의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독자의 몫이다. 엘리는 코만치들에게 쉽게 동화되고 인정받음으로서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적어도 1편에서까지는.

 

 엘리의 아들 피터는 자신의 아버지와 가족과 백인이 한 때 이웃이고 사이좋게 지내던 멕시칸 가르시아 가족을 몰살하고 검은 돈으로 땅을 차지하는 과정을 일기장에 쓰고 있다.  피터는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모든 잔인하고 불합리한 과정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사람이다. 양심과 가족의 이익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역시 가족의 일부이고, 그 모든 살육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린 사람이다. 

 

 20세의 나이에 혼자서 살아 남은 피터의 손녀 진은 몇대째 지켜 내려온 그 가족의 거대한 목장을 지키며 석유 재벌이 되는 과정 속에서 가족의 과거를 미화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을 3인칭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진 앤의 스토리는 1부에서는 그냥 도입과 전개에 머무르고 있어서 그닥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막대한 땅을 상속받은 채로 고아가 되었고, 그녀의 땅에서 석유를 캐기 위해 노리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2부가 기대된다.

 

 상념이나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그래서 건조 하지만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시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연결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서사의 줄기가 잡히고 책을 덮고 잠시 쉬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독서와 독서 사이 그 여운에서 잡히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