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집
노은주.임형남 지음 / 예담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서의 소유하는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살기 위한 집을 찾는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내 인생의 어느 부분 가꾸고 사랑하고 영위하는 장소로서 집과 집을 둘러싼 환경. 그것에 대한 어느 소박한 건축가의 사색. 이 건축가는 부부가 함께 건축주를 만나 그들의 소망에 귀 기울이고, 집을 짓게 될 곳을 가서 땅의 목소리를 듣고,  짓게 될 집의 주제와 집 이름을 정하고, 설계에 착수한다. 작고 소박하지만 그들(건축주)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담아줄 집. 존경과 행복의 집, 쾌활하고 재미있는 집, 세상과 연결된 마루가 펼쳐진 작은  고주택.. 그들이 짓는 집들은 그렇게 테마가 있는 집들이다.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다. 먹는 것과 입는 것과는 달리, 사는 곳을 결정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못된다. 빈부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주택이기도 하지만 이제 먹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한 선택이 인간이 취향의 자유를 맘껏 보장 해줄 만한 경지에 이른 현대 사회에서 숨쉬고 먹고 자고 싸는 모든 인간의 기본 활동에 기반이 되는 공간이 삶의 질을 반영한다.


예담에서 나온 [사람을 살리는 집]의 저자 노은주 임형남은 부부 건축가이다.  예쁜 집 사진과 스케치 등의 화보와 잘 어울려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는 이 책은 종이 재질에서부터 디자인 구성까지 비주얼적인 면에서 만족스럽다. 술술 넘어가고 쉽게 읽히는 경어체로 된 친절한 책이다. 전체 1부에서 4부까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나에게 묻는다에서는 약간 에세이적인 느낌을 풍기면서 집과 관련된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어린시절의 기억, 현대 사회에서 동네의 삭막함, 살고 싶은 집의 장소, 직접 설계했던 집과 관련된 이야기 등 주택과 관련된 자유로운 사색이 주를 이룬다.  금산주택과 3×3×3 퍼팩트 하우스와 같은 초소형주택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이 흥미를 끌었는데, 화장실과 부얶을 기본으로 하고 거실과 침실 공간을 높낮이와 가변성 을 통해 사용자 요구에 맞춘 퍼펙트 하우스는 개념도만 있어서 사진이 아쉬웠고, 금산주택 역시 내부구조를 스케치한 그림이나 사진 있었으면 하고 아쉬울 뻔했지만 뒤에 다시 나왔다.


2부 나를 살리는 집 편에서는 본격적인 주거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아파트를 포함한 현대식 주거 공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특히 거실 공간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은
 

말하자면 거실은 잘못 수입된 과일 같기도 한, 정체성도 없고 한국적이지도 않으며 또한 결정적으로 죽은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다. 물론 거실에서 많은 생활이 이루어지는 나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큰 거실 크기와 이를 위한 50~60평형대의 대형 아파트, 거기에 앉아 있는 값비싼 전시용 가구와 실물 사이즈의 화보 사진, 남을 의식한 액세서리 등이 유행처럼 일률적으로 퍼진 한국의 주거 문화에 대한 성찰을 불러 일으킨다. 2부에서 역시 간간히 실려있는 사진이 본문 내용과 조금 더 일치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객의 요구에 따라 본인이 설계한 작은 방은 설명이 아름다와서 실제 모습이 궁금하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있는 본체와 시선을 적당히 가리는 얇은 벽을 하나 세웠고, 그냥 아주 작은 방과 그의 딸린 마누를 하나 놓았을 뿐입니다 . 방이 창을 열면 마음이 열리 듯 환해지며 세상의 풍경이 들어오고 창을 닫으면 세상과 단절된 완전한 고독의 순간이 되는 공간.


과연 이런 공간이란 어떻게 생겼을까


3장까지는 전반적으로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이라기 보다는 공간과 환경에 대한 산문집 같은 느낌이다.  환경으로 서의 집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건축가와 공유하고 건축가의 철학적 사유는 때로 날카롭게 우리의 양심을 찌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보내기도 한다. 

건축도 자연에 땅에 빚을 집니다. 수십억년 동안 가벼운 바람과 햇빛만을 안고 살았던 땅을 파헤치고 그 자리에 집을 앉히는 것입니다.

 

건축은 모든 것이 만남입니다 땅과 건물의 만남, 하늘과 건물의 만남, 직교하는 두 면의 만남, 바닥과 벽의 만남, 집을 지을 사람들과의 만남, 집을 지어 줄 사람들과의 만남.. 중략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만남을 거친 후 한 채의 집이 완성 하는 것입니다.


만날수록 새롭고 어려운 만남을 대상은 땅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땅들은 살아 있고 많은 말을 합니다. 

4장 [살리는 집을 그리고 싶다] 편에는 실제 저자가 설계한 설계 도면과 완성된 집의 사진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건축주들의 바램과  함께 소개된다. 이제껏 읽은 저자의 건축 철학이 그대로 재현되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자기 집에 대한 꿈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장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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