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것의 과학 - 뇌과학이 밝혀낸 믿음의 비밀
앤드류 뉴버그 외 지음, 진우기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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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야 하는가? 믿어도 되는가?

그렇다면 믿지 않는가?

믿지 않는 것에 대해 편안한가?

불가지론자인가?

죽기 전엔 결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에서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신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 앤드류 뉴버그가 Born To Belive(믿는다는 것의 과학)으로 돌아왔다. 재밌는 건 동일한 그의 이전 연구가 종교가와 무신론자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에게 동시에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그동안 발전된 뇌과학과 뇌 활동 사진의 발전으로 더욱 과학적으로 더욱 신경학적으로 종교, 더 나아가 믿는다는 것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그는 내적 종교 활동 중 깊은 몰입의 단계에서 경험하는 강렬하고 초월적인 경험을 통해 종교와 믿음이 가진 본질을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기도의 끝에서 신과 만나는 경험을 하는 수녀, 오랜 수행의 끝에서 해탈의 경지를 경험하는 불교인, 그리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명상을 통해 우주와 만물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초월적 경지에 이르는 무신론자 세 사람이 보여주는 그들만의 신, 혹은 믿음. 그것을 발달된 과학이 예술처럼 빚어낸 뇌 사진 fMRI를 통해 드러난다.

 

 

 

 

명상할 때의 신경학적 변화는 지각과 감정 언어에 대한 일반적인 처리 과정을 중단시켜서 그 체험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롭고 통합적인, 지워지지 않는 현실로 만든다. 실제로 이런 상태의 체험이 주는 강렬함음 수행자에게 세상에 대한 평범한 자각을 넘어서 특별히 높은 단계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의식을 주기도 한다.

 

방위 영역이라고 부르는 두정엽은 주위 환경을 3차원으로 창조해내는 방식으로 감각 정보를 해석 한다. 만약 두정엽에서의 활동을 의식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면 아마도 자각의 일시적인 정지나 상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녀와 불교도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결과는 이들이 명상하는 동안 두정엽 활동을 자유롭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두엽은 열 명의 사람들이 같은 지각 경험을 하고서도 열가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든다. 수녀들에게 명상동안의 사진은 그들의 뇌에서 신의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반면 불교도들에게는 그들의 수행이 존재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순수한 자각의 경지에 도달하게 해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내적 평화의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시상은 유입되는 감각 정보를 뇌의 여러 부분ㅡ 전두엽에 있는 고도의 인지 처리 중추를 포함ㅡ으로 다시 내보낸다. 명상을 하면 일상적인 지각은 변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도 시상은 정상적인 체험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이러한 해석은 대부분 이런 체험을 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발전시켜온 믿음 체계에 근거한다.

 

우리가 특정 믿음이나 대상에 초점을 맞춰서 명상을 할 때 편도체는 이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자율신경계가 가동 되기 시작하면 시상은 모든 것이 실제로 느껴지도록 해 준다. 이 정보는 전두엽으로 돌려 보내 주고 거기서 의식에 인지된 후 우리의 믿음에 알맞게 재해석된다. 해마는 그 경험을 장기적인 감정 기억으로 깊이 새겨진도록 돕는다.


각기 다른 종교나 믿음의 가치관을 가진 세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 시상활동의 비대칭는 그들이 현실을 독특하게 지각 하고 있으며 명상을 할때나 안할때나 시상이 끊임없이 활동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장 주목해볼만한 사실은 이 두 종교인과 비슷한 뇌사진 결과가 무신론자의 무아의 경지 경험 과정 중에서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인들의 영적 체험이 뇌의 특정한 신경 처리 과정일 수 있으며 그런 경험을 세속인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제시하였다.  누구에게나,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는 나의 영역이 안에 있다.

 

이 밖에도 믿음에 대한 뇌신경학적 근거를 찾기 위해 뇌의 각 부분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은 철학적 성찰과 과학적 고찰을 함께 담아 내고 있다.

 

뇌는 원인과 결과를 두개의 요소로 나눠 만일 ~하면~ 한다의 각본으로 단순화해 인지한다. 단순화 일반화 하는 신경 처리 과정은 생물학적 특성이다. 하나의 대립쌍이 성립되면 뇌는 쌍을 이루는 양자 모두에 감정적 편견을 부여한다. 대상이나 사람 관념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놓으면 하나는 선호하고 다른 하나의는 반감을 갖게 된다. 우리는 본래 생물학적으로 사람들을 집단으로 나누고 그들을 분류하고 정형화하며 그런 다음엔 그들을 차별적이고 편파적인 방식으로 평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 수준에서 안면 인식 같은 처리 과정은 뇌의 전체론적 기능에 크게 의존한다. 전체론 적으로 생각할 때는 믿음을 분석하고 비교하고 계량하고 정당화 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그저 옳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체론적 사고는 언어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신은 측정할 수도 부분으로 환원할 수도 없다. 고대 히브리어로 문헌에 따르면 신은 명명할 수도 없다. 신을 명명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모든 대상에 이름을 붙이려는 뇌의 추상화 기능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만일 무엇인가를 지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신의 능력이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기적을 찾거나 다른 증거를 찾아 다닌다. 적어도 뇌가 정상으로 기능하는 한 미지의 것을 무조건 믿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뇌과학 관련 책에서도 많이 다루는 내용이어서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기억과, 잠재의식의 처리 과정, 뇌가 발달하는 시기에 받은 영향에 대한 글 다시 새겨 읽게 된다.

 

많은 경우 기억에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야기에서 기억이 만들어진다. 기억은 서로 뒤섞여서 혼동되기도 하고 가끔 세부적으로 잘못된 내용을 포함 시키기도 한다.  이런 잘못된 정보의 조각들이 새 기억속으로 부호화되고 후에 다시 회상되면서 재차 변화되어 마침내 더 정확하게 지각했던 이전의 기억을 대체하게 된다.

 

아이의 뇌에는 특히 논리와 이성 의식 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은 물론 도처에 과잉생산된 뉴런들이 있다. 이 뉴런들의 과도한 연결은 괴물과 요정 수많은 상상이 존재들에 대한 환상과 관련이 있다. 권위에 독점적이고 교리에 엄격한 근본주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 비해 독선적 편파적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자비롭고 관대한 신에 대한 믿음이 아이들에겐 낙천성과 안정감을 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선과 악의 추상적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 연속성의 어딘가에 살고 있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추론과 감정 처리가 불가능 하다. 이런 상태에 환자는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반등 하거나 전혀 반응 하지 않거나 둘중 하나이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수치심 보다는 죄책감이 행동 교정을 위한 의지를 강화 한다.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그것은 의식하기 몇 밀리세컨드 전에 뇌 안에서 전기 활동이 일어난다. 그것은 인간이 곧 갖게 될 생각에 대해 잠재의식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일이 우리의 의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오히려 의식은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의식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 차리기까지 약 0.5초가 소요 된다.

 

* 이 글의 많은 부분은 책에서 무단 인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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