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1.

컴퓨터 채팅 프로그램과 대화를 하는 것은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고 기도했던 고대인들처럼 컴퓨터의 영혼을 믿어서가 아이다.

 

책을 읽으면서 심심이를 깔아봤다. 심심해서가 아니라, 만일 뢰브너 대회라면 심심이와 얼만큼 대화하면 인간이 아님을 알아낼 수 있을까를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한 화면이 넘어가기도 전에 엉뚱한 답변에 횡설수설이다. '꺼져버려 멍청한 소프트웨어.' 나가기 전에 한마디 했다.


나 : 말귀도 못알아먹구

심심이 : 미안해요 열심히 배울께요.

나 : 널 지워버릴거야

심심이 : 너무 잔인해요

나 : 잘있어 

심심이 : 가지 않으면 안돼여?.. 서운해서 그래여..

나 : 바부탱아

심심이 : 잘못했어요.

나 : 뭘 잘못해 

심심이 : 대답을 잘 못해서요. 


이 수준이라면, 누구라도, 영혼이 없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심심이를 두고 매몰차게 톸 창을 나가기 망설여진다.

 

심심이가 재생하고 있는 대화는 인터넷에서 수집된 수많은 대화의 조각이고, 던지는 말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답변들이다. 빅데이터 회사들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스치는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수집하여 인간지능 소프트웨어라 불리는 컴퓨터 로봇과의 대화에 어울리는 가장 보편적인 대화의 쌍을 매치시켜 답으로 내놓는다. 수많은 관습과 클리쉐를 머리속으로부터 무작위로 재생하며 대화하고 사는 현대인들과 수많은 관습과 클리쉐를 컴퓨터 메모리속에 저장하고 있다가 무작위로 재생하고 있는 컴퓨터.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미국의 코믹 시트콤 빅뱅이론에 보면 여자가 있으면 말을 하지 못하는 라지는 아이폰의 시리와 사랑(?)에 빠진다. 아이폰의 통합 생활정보를 음성재생하는 시리는 국산 안드로이드 대화 로봇 심심이보다 지적으로는 똑똑해 보이지만,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연속적인 대화가 실제 대화만큼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자동차, 옷, 카메가 등등 뭔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사물을 의인화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이 사람에게 향한 마음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를까. 감각, 영혼, 언어, 대화, 지능 등등 인간다운 것들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다.

 

 

손실 압축과, 비손실 압축에 대한 인간 사회 언어 문화 관습 등의 은유는 놀랍다. 아날로그 시대에 듣던 LP 음반에 포함된 우리 귀가 감지하지 못하는 대역폭의 소리와 주변의 소음들. 이것들이 제거된 1/10 크기의 MP3 파일이나 디지털 이미지 파일만이 손실압축의 범위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혹은 관습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제거되고 핵심만을 전달하는 모든 것이 손실 압축에 해당된다. 어쩌면 그 어떤 누구에겐 그게 삶의 이유일 지도 모를 삶의 여백을 제거하는 것. 손실 압축이다. 손실압축. 그 Loss의 어딘가에 우리의 삶이 있다.

 

 

2,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대학에서는 컴퓨터와 철학을 공부했는데 석사 학위는 문학(시)으로 받은 사람. 이런 상반된 듯 보이는 두 개의 복수 전공의 자유로움이 부럽다.  2009 뢰브너 대회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 상을 받았는데, 뢰브너 프라이즈는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과 인간이 채팅을 통해 제3자에게 누가 더 인간적인가를 가려내도록 경쟁하는 대회이다.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 가장 인간적인 인간, 그리고 가장 기계적인 기계, 가장 기계적인 인간 등이 가려지는데, 어떤 해에, 세익스피어를 전공한 한 인문학 교수가 세익스피어에 대한 대화를 이끌다가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점이 기계적인 느낌을 주었기에 역으로 심사위원들에게 가장 기계일 것 같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 어떤 해에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뽑힌 사람은 감정적으로 격하게 한마디로 성질 더러운 대화를 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1950년 튜링이 처음 제시한 이 대회의 개요는 이랬다. 질문자가 인간과 기계를 상대로 서로를 볼 수 없는 조건에서 문자로 각각 대화를 주고 받은 다음 질문자가 누가 인간이고 누가 기계인지를 자신있게 구별할 수 없으면 기계는 모방 게임을 통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는, 기계와 5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인간과 기계를 올바로 구별할 확률이 70퍼센트를 넘지 못할 정도로 모방 게임을 잘하는 컴퓨터가 50년 후에는 나타날 것으로 예언했다.   대회는 꾸준히 이어졌다. 그리고 그 예언이 아슬아슬하게 막 실현될 것처럼 보이던 2008년의 어느날, 엘봇이라는 컴퓨터가 뢰브너(튜링) 대회에서 29%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지 못한 후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위기의식을 느낀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자발적으로 이 대회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면서, 대회를 겪으면서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의 통찰을 그대로 책에 적었다.

 

3.

참가자들이 해마다 던지는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말의 의미...(중략) .... 세상에 태어나 자라온 사회적 환경에 전혀 영향도 받지 않고 동화된 적도 없는 순수한 '나'가 있다는 생각은 그저 신화 같은 말일 뿐이야. 우리는 처음부터 사회화된 존재인 셈이지. 따라서 우리에게 사회화의 껍질을 모두 벗기면 남는 것은 참된 우리가 아니라 결국 아무것도 없는 셈이야. - 철학자 레긴스터 본문 인용

 

애클리에 따르면 계산가능성 이론의 모토는 "옳은 답을 찾아라. 빠르면 더 좋다. "인 반면에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중유한 것은 "제 때에 답을 찾아라. 그것이 옳으면 더 좋다." 인 것처럼 보인다.

 

Brian Ferneyhough 가 작곡한 음악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악보대로 연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연주자는 부차적인 것들을 자르고,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줄이고 요약하고 요점을 파악하면서 어떤 것은 지우고 어떤 것은 강조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퍼니호우는 "내 음악이 요구하는 것은 뛰어난 연주가 아니라 정직하고 진실하며 연주자 자신의 한계를 보여주는 연주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뉴욕타임즈]는 이것을 가리켜 '음악이 너무 어려우면 오히려 자유로워지고' 음악이 쉬우면 오히려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음악 연구자 Tim Rutherford-Johnson은 "늘 똑같이 해석된 퍼니호우의 작품을 지겹게 반복해서 녹음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은 오늘날 너무나도 훌륭한 음악들이 직면하고 있는 운명과 매우 다른 것이다"라고 말한다.

 

조지오웰은 '비슷한 구문'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기계로 바꾸고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튜링 테스트가 그것을 입증한다고 말할 수 있다.

 

7-38-55 규칙. 우리가 누군가와 소통할 때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55퍼센트는 신체언어로, 38퍼센트는 목소리로 7퍼센트는 우리가 선택한 단어로 전달한다. -Chapter 8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증인

 

발췌나 인용뿐만 아니라 묘사도 일종의 손실압축이다. 사실 손실 압축은 언어가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커다른 단점과 커다란 가치를 동시에 시사한다. 그것은 예술을 위해 허락하는 무지의 또 다른 예이다.

 

엔트로피는 하드드라이브 공간과 대역폭처럼 그렇게 감정적으로 와닿은 것이 아니다. 데이터 전송은 의사소통이다. 놀라움은 경험이다. 하드 디스크의 크기와 용량 사이에서 정보 엔트로피가 있다. 삶의 크기와 용량 사이의 공간에 당신의 삶이 있다.  - Chapter 10 커다란 놀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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