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비교적 최근작이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려 했더니 뭔가 아쉽다. 이 작가의 책을 하나도 안읽은거다. 이 작가가 데뷔를 거쳐 현재까지 쓴 소설만 해도 차고 넘치는데, 그동안 작가가 변천해 온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불쑥 책을 집어 들었다가는 뭔가 놓치는 행간이 많을 듯하다.  작가적 색채가 뚜렸한 분으로 알려져 있고, 작가에 대한 기초가 없이 작품 이해가 부족할 듯하여 초기장, 중기작 하나씩을 읽고 나서 읽기로 하고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을 골랐다.

 

 

 

 

 

소설은 1793에 제작된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에 대한 관조적 해석으로 시작한다. 마라가 끝까지 움켜쥔 펜이 차분하고 고요한 이 그림에 긴장을 부여한다.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것은 예술가의 지상덕목이다. 소설의 분위기가 딱 소설 속으로 들어갈 때 주인공의 시점으로 관찰되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같다. 갑작스럽지만 요란스럽지 않은, 긴장되지만 냉정하고 건조한 이 분위기. 

                     

 

그리고 클림트의 [유디트]와 두 명의 유디트가 등장한다.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잠든 틈에 목을 잘라 죽였다는 고대 이스라엘의 여걸 유디트, 클림트는 유디트에게서 민족주의와 영웅주의를 거세하고 세기말적 관능만을 남겨두었다. 소설 속의 두 여자는 자살에 이르는 힘든 삶의 단편에 대한 독자들과의 교감도 없이 그들의 죽음에 관능만을 남겨두었다. 한 유디트는 마약을 사기 위해 재즈를 했던 쳇 베이터의 My Funny Balentine을 들으며 그의 죽음이 자살에 가까왔다는 얘기를 듣고 충동적으로 자살도우미의 고객이 되기로 결정하고, 또다른 유디트 행위 예술가 미미는 욕조로 들어가 칼로 손목을 긋기 전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를 틀어 놓고 오랫동안 춤을 춘다.

 

 

마지막 그림은 마지막 장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과 함께 한다. 성도의 함락을 눈앞에 둔 바빌로니아의 왕이 무사들을 시켜 그의 왕비와 애첩들을 살해하는 장면이다. 냉정하게 자신의 패배를 지켜보며, 멸망해가는 바빌로니아에서 죽음의 향연을 벌이는 사르다나팔에 감정 이입을 하는 책의 화자. 자살을 부추기고 행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도움을 주는 자살도우미의 죽음의 향연이다.

 

어쨌거나 감각의 표현이 정점에 달한 젊은 작가의 작품은 독자 역시 젊었을 때에나 교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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