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재생

 

마지막 페이지에서 결국 막혔다. 아직도 감을 못잡는구나.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거구. 베로니카와  토니 사이에 40년간 한결같이 흐르던 그 철벽같은 '감'의 부재가 줄리안 반스와 나 사이에 턱 하고 나타나 가로막았다. 나 바보?  엄마가 아닌 누나라니.

 

나름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으면서 정독을 했는데.. 대체 뭘 놓친 거지. '아이가 토니의 아이일까'와 같은 가정은 감은 커녕 최소한의 근거나 논리도 없는 막장 드라마의 영향이다. 다시 머리를 굴려본다. 아이의 외형은 에이드리언의 유전자를 강하게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름도 같다. 베로니카가 미혼모 처지가 될까봐 그녀와 에이드리언 사이의 아들을 그녀의 엄마가 사라가 양자로 삼고 대신 키웠나. 마지막 장에서야 토니는 공식을 이해했다. 베이비 b는 에이드리언 a1 과 베로니카 v 말고도 토니 a2와 베로니카의 엄마인 사라부인 s라는 변수로 결정된다. 첫번째 공식 b = s - v + a1  은 포드 부인에서 베로니카가 빠지고 에이드리언이 더해졌다. 아기가 성립되려면 베로니카의 엄마로부터 베로니카가 배제되고 에이드리언이 관계해야 한다. 두 번째 공식 a2+v + a1* s = b 은 더 복잡하다. 토니와 베로니카가 연관되고 에이드리언이 가세했다가 사라의 크기만큼 곱해지데, 그 관계의 결과로서 아기가 성립된다. 원인과 결과가 바뀐다. 진실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머리속을 좀 더 뒤적거려본다.  장애를 가진 아이. 토니가 편지로 저주했던 대로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 사이의 임신'의 결과가 아니라, 토니와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의 관계가 결국은 사라의 강력한 개입으로 인해 생긴 아기이다. 세상에.. 할 말을 잃는 반전이다. 감 잡을 것도 없이, 추론할 것도 없이, 간병인의 말 그대로 베로니카의 동생이며, 토니가 생김새와 이름에서 감지했던 에이드리언의 아이가 맞는 것이다.

 

그녀가 찢어 준 일기장 사본은 '만일 토니가' 로 끝을 맺는다. 만일 토니가의 다음 장에 쓴 내용은 무엇일까. 그가 잡은 감은 무엇일까. 독자가 알고 있는 토니와 실제 토니와의 갭은 대체 어느 만큼 큰 건가?


 

헤어진 후에야 베로니카는 나와 잤다. -67쪽

 

토니의 기억 속의 그녀는 신비하지만, 도도하고, 미스테리어스한 속성을 가졌다. 거의 끝갈 데 이상의 신체적 접촉을 허락하고 충분히 친밀감을 느낄 만큼 개방적으로 행동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신체적 하나됨을 거부하다가, 헤어진 후에야 몸을 허락하는 여성이라. 오버 미스테리하잖아.   둘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해보자. 토니가 기억하는 둘 만의 관계는 '헤어진 후'였지만 베로니카의 기록 속에는 '섹스를 하고 나니 토니는 나와 헤어졌다.'  토니의 기억과는 달리 베로니카는 관계의 진전을 위해 그와 잔 것은 아닐까. 혹은 자고 나니 그동안 그녀로부터 받은 지적 열등감에서 해방되며 헤어지고 싶어졌고, 자기 인생을 나쁜놈으로 기록하고 싶지 않아서, 기억속의 생각들 섹스 후 들었던 헤어지고픈 생각들을 섹스 전에 했던 생각으로 시간 이동시킨 채 그 상태로 머리속 기억장치 한 켠에 잘 보관해 둔 것은 아닐까. 아직도 감을 못 잡는구나.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거구.
 

나는 삶의 현실에 안주했고 삶의 불가항력에 복속했다. 만약 이렇다면 이렇게 그렇다면 저렇게 하는 식으로 세월을 보냈다. 에이드리언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의 포기했고 삶을 시험 해 보는 것도 포기했고 삶이 닥쳐 오는 대로 받아 들였다. -173쪽

 

토니는, 우리 모두와 같은 소시민이다. 주어지는 대로, 닥치는 대로, 적당히 손해보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며 그렇게 살아 왔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에이드리언은 그렇지 않았다. 또 다른 의문. 에이드리언은 왜 자살하였나. 운명과 멋지게 맞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운명을 거역했다. 그게 어린 나이에 죽은 에이드리언의 죽음을 기억하는 토니의 방법이었다. 허세 덩어리의 10대를 막 통과한, 아직 미숙한 그의 시선에 스스로 우상화해왔던 영민하고 철학적인 친구의 자살은 현실에 안주하며 닥쳐오는 대로 살아온 자신에게는 영웅적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죽음마저도 미화하였을 지 모른다. 위 문장이 그 단서이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엄마를 임신시킨 20세 지적인 청년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도 60년대에,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40년 전 자신의 입으로 역사 라고했던 말을 재현시켰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34쪽, 106쪽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 스스로를 기만하는 시간의 무자비한 흐르과 기억의 오류, 소통의 부재. 역사 선생이 던진 '역사는 무어라고 생각하나'에 대한 에이드리언의 답변은 라그랑주의 이 말이었다. 이 책의 주제와 내용 전부를 한마디로 압축해주는 말이다. 반면 화자 토니의 역사에 대한 견해는 그답다.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 이 뻔하고 단순한 대답은 그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속임으로써 독자를 속였다. 

 

끝까지 나름 집중해서 읽었으나. 그 짧은 시간 중에서조차 무심히 흘려버린 이야기들 속에 놓쳐 버려 감도 잡을 수 없는 결론에 맞닥뜨렸으니. 첨 부터 다시 읽는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우리는 허세 덩어리였다.' 그 허세 속에 치밀하게 계산된 퍼즐 조각들이 있으나 찾아 맞춰야 한다. 내 참, 읽자마자 다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니.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은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2쪽

 

그 시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닭장 같은데 갇혀있는 신세라고 생각했고, 그 곳을 벗어나 우리의 인생으로 풀려날 날을 기다렸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책에 굶주려 있었고, 섹스에 굶주린 있었고, 성적표에 연연하는 아나키스트였다. 모든 정치 사회, 제도가 썩어빠진 걸로 느껴졌으나 우리는 쾌락주의적 혼돈에 기울어 있을 뿐 다른 대안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허세 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21쪽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되어 있다. 안 그런가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도와 진전에 깃든 수수께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그 단편들을. -107쪽

어릴때는 그렇게도 결정적이고 그렇게도 역겹던 몇살 되지도 않는 나이 차가 점차 풍화되어 간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젊지 않음'이라는 동일한 카테고리로 일괄 통합된다. -107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은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해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자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 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잡고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 162쪽

 

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듯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키는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183쪽

 

계속되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역사에 대한 그의 사유. 때로 지적 허영의 극을 달리는 듯하지만, 처음엔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떻게 전개될 지, 시간과 기억에 대한 어떤 사연을 어떤 형태로 품게 될 지 기대되면서도, 유쾌하고 위트있는 유머와 냉담함 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왔다. 그러나 그들이 역사시간에, 영어 시간에, 그리고 함께 몰려다니며 나눈 청춘의 권태들이 한편으론 복선이자 암시였고, 거대한 역사를 암축하는 말이자, 동시에 개인의 역사를 풀어 나가는 단서들이 되어졌다.

 

함께 휴가를 보내자는 말이 한두번 오갔지만, 아무래도 둘다 상대 쪽에서 계획을 짜고 티켓과 호텔을 예매하길 바랬던 것 같다. - 100쪽 

 

독자, 우리는 토니가 경험하고, 기억하고, 얘기하는 그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만을 통해, 토니의 성격을 짐작할 수 밖에 없다.  1부에서는 대개 그의 기억과 혹은 그의 사유에 의지하여 그의 성품을 더듬어 나간다. 베로니카가 그를 대했던 태도, 베로니카의 가족이 그에게 했던 말들. 에이드리언만큼 지적이지 않으나 그를 좋아하고, 성적 접촉에 대해서는 베로니카의 의사를 존중하고, 조금은 내성적이고 표준에서 크게 모나지 않은 성품으로 인식한다. 노년이 된 2부에서도 어느 정도 쯤은 이러한 견해를 부정할만한 단서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혼의 직접적인 사유는 아내의 외도였고, 딸 수지와도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에이드리언의 유서와 맞닥뜨리고, 베로니카와의 서신과 와이프와의 만남이 번갈아 가며 묘사되면서 조금씩 그의 본질에 다가가게 된다. 말하자면, 개인적인 혹은 이성적 만남과는 전혀 관계없는 40년만의 재회에서 베로니카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스캔하고 판단한다. 전와이프와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지면서도 사랑이나 우정에서 있을 법한 헌신적인 마음은 없다. 점점 찌질함이 눈에 띈다.


되감기, 다시 재생

 

베로니카의 집 치즐히스트를 방문한  과거로 페이지를 넘긴다. 오우 마이 갓. 베로니카의 엄마 사라는 분명 토니를 유혹하고 있다. 그에게 내뿜던 예술적 감각은 교태이고 베로니카를 시기하고 험담하면서 그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장면이 이제야 가시화된다. 난 대체 무얼 보고 있었는 거니.  부엌에서도 현관문에서도 그를 향할 땐 어디에고 기대어 섰고, 그에게 비밀스런 웃음을 보냈고 손을 흔드는 동작 마저 은밀했다. 더 엽기적인 건 그의 가족들 모두가 그녀의 그런 행각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토니를 시험하듯 지켜보고 놀렸다는 사실이다. 어머니가 멋진 분이시라는 토니의 말에 베로니카의 아버지는 베로니카에게 너 라이벌이  생긴것 같다고 했다가, 가만있자 그럼 나에게도 라이벌이 생긴거네. 새벽에 총질하게 생겼다는 농담. 어쩌면 그 새벽 토니와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의 산책은 토니를 시험하기 위한 가족의 계략이었으며, 산책 이후 베로니카가 보여준 친밀함은 시험을 통과한 데 대한 보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기묘한 가족은 토니에게 각자 윙크를 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농담을 하거나 은밀하게 기대어 서서 각기 다른 메시지를 보냈고, 어느 선에서는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토니, 아직도 감을 못잡는 구나. 그 치밀하게 계산된 복선을 읽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이다. 감이 없는 건 토니보다 나을 게 없다. 이 얼뜨기는 유혹을 감지하지도 못했으니, 베로니카에게 신뢰를 쌓았을지언정 한심한 건 어쩔건가.


빠르게 되감기

 

이제 다시 40년 후로 돌아와 사라와 토니의 관계를 뒤돌아보자. 그녀는 토니에게 유산?으로 500 파운드의 적은 돈을 남겼다. 그가 기계적으로 반복 재생하는 40년전 치즐허스트에서의 기억에는 단지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에게 부당하게 하대받았다는 사실만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유언에 적혀진 사라의 글씨체는 그가 딱 일주일동안 알고 지냈던 별종 여자를 상기시켰다. 사라의 유서가 주는 토니와 사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단서는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그때 가족들의 행동에 대해 사과한다. 정도 뿐이다. 그녀가 왜그러는지는 몰라도 여기엔 에이드리언이 죽기 마지막 몇달을 사라 여사와 함께 지냈고, 그녀가 보기에 행복했다는 말을 왜 베로니카가 아닌 베로니카의 엄마 사라가 토니에게 남겼는지, 그리고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왜 그녀의 소유였는지에 주목했어야 했다. 여기 이 편지에 이미 에이드리언과 사라와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가. 나는 토니의 기억에만 의지한 채, 이 큰 복선과 암시를 계속해서 놓치며, 그와 한패가 되어 고인의 유품인 일기장이 법적 소유주인 토니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적 입장만을 고수했던 것이다.

 

우리는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아프고 불리한 기억은 뇌의 선택적 기억 메카니즘에 의해 지워짐으로써 상처에서 회복되고 일상으로 복구되도록 진화해왔다.  기가막힌 자기 기만이다. 사라의 유언을 계기로 베로니카와의 인연을 뒤돌아 본 토니는 그녀와의 교제를 멸시와 굴욕으로 받아들였고 오랜 세월동안 그의 개인적 삶의 기록에서 삭제해 왔음을 깨닫는다. 이것이 후에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던진 저주의 편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 까닭임을 단단하게 지지한다. 그는 그 옛날 역사 시간에 역사를 '승자들의 거짓말'이라고 정의했고, 역사선생님은 이 말을 패자들의 자기기만이라고도 할 수 있음을 기억해 냈다. 그는 그녀를 버렸거나 혹은 버림받도록 행동했고 그녀와 에이드리언을 저주했고 그리고 그녀를 머릿속에서 지웠고, 그의 개인적 역사에 그들의 스토리의 배경속에서 흐려져갔다.


토니, 그는 대체 누구인가. 점점 더 오리무중이다. 중편에 더 가까운 짧은 책을 몇 일을 걸려 읽어 내고는, 앞뒤 왔다갔다 하며 심리 추리전을 벌이다가. 결국은 끝까지 다시 읽는다. 토니 이제 당신은 혼자야. 전처 마가렛의 이 말을 다시 읽었을 때에야, 내가 놓친 토니의 성격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다시 토니가 기억하고 있던 베로니카가 토니에게 했던 말들의 배경을 유추해본다. 관계가 어디를 향한다고 생각해? 넌 개자식이야. 우린 고인물이 아니야. 그렇구나 베로니카는 토니와 좀 더 신뢰있는 관계를 원했을 것이다. 토니는 합의된 섹스에 진전된 관계 혹은 책임 문제가 뒤따른다면 차라리 수음을 택하는,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전처와 휴가를 가고 싶지만 자신이 비용 부담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역시 돈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맙소사. 독자가 의지해온 1인칭 화자 토니의 성격은 그 스스로가 규정한 자기 자신일 뿐이다. 그의 자아로 쓰여진 글을 통해 다시 그의 밖으로 나와 객관적으로 그를 봐야 한다. 이걸 메타1인칭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뻔뻔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베로니카를 진정 사랑했던 걸까? 그는 40년 후, 자신이 그리 비열하고 유치한 저주의 편지, 심지어는 온갖 욕설과 함께 쓴 편지를 확인하고, 기억에서 지웠던 낯선 40년전의 자신과 마주한 후에도, 뻔뻔하게 내가 너를 사랑했었던 거라고 생각해? 라고 묻는다. 게다가 엉뚱하게도, 자신의 이메일 제목과 내용을 지워버리지 않고 그 상태로 답장을 한 것에 대해 로맨틱한  기대를 갖는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사람들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 삶이 실제 우리의 사랑,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165쪽

 

내가 기억하는 것과 남이 나에 대해 기억하는 것 사이의 괴리감은 때로 사람을 섬뜩하게 한다. 내가 기억하는 그 순간의 기억을 상대방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선하게 살았다고 믿고 있는 기억 속의 내가 어떤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상처를 주었는지, 그 행위의 작은 날개 짓에 받았을 지 모를 아주 작은 영향을 통해 벌어질 지구 건너편의 허리케인 같은 원인과 결과. 믿기 쉽고, 편한 것들만 골라서 기억하는 인간의 뇌의 편리함이, 사람을 우울에서 벗어나게 하고 긍정적 마인드를 높일 수 있다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허위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를 일이다.


한번 더

 

반납하기 전에 다시 펴든다. 아무데나. 베로니카와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본다. 이론. 헤어지고 나서야 베로니카는 나와 잤다. 이 말만 철썩 같이 믿었고, 그 밑에 수두룩 쌓인 무수한 행간을 모두 다 놓쳤다. 토니 그는 개자식이다. 우리 관계가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40년 후 그는 자신이 그토록 무례했음을 자각한 후에도 베로니카에게 묻는다. 내가 너를 사랑했다고 거라고 생각해? 베로니카가 바란 건 대단한 게 아니었을 게다.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 정도 쯤. 집에 데려가서 그 기이한 가족과 어머니의 유혹에 토니를 노출했던 것도, 섹스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 시험하는 테스트 쯤이었을 것이다. 그건 강간이나 다름없었어. 미리 알려줬어야 했어. 그러니까 베로니카와 헤어졌다는 건, 관계에 대한 베로니카의 추궁이 부담스러워 헤어질 생각이었다는 뜻이고, 펍에서 그녀를 만나 집으로 가서 섹스를 하기 전까지 입밖으로 낸 적이 없는 토니 혼자만의 생각이었다는 걸 알아차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섹스를 하고, 그리고 나서 이별을 통보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토니가 섹스를 한 후 헤어졌다는 그 빤한 남자의 속성에 대한 울분이 아니다. 토니의 확신이 담긴 한 마디 헤어지고 나서야 베로니카는 나와 잤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둘 사이에 나눈 다른 모든 상황들은 자연스럽게 중요성을 잃고, 토니의 주장에 끌려 모호하게 사라져버리면서 베로니카는 비상식적이고 기묘한 여자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승리자의 거짓말 이자 패배자의 자기기만 이라는 토니의 학창 시절의 주장처럼, 토니의 자기 기만에 의해 중요한 모든 사실들은 들으면서 흘려보내고, 잊혀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퍼즐 맞추기는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는 대화와 스토리와 인생을 대할 때, 어떤 단어를 핵심적으로 캐치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경로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어야 한다. 별 시답지 않은 은유를 은유가 아닌 사실로 철썩같이 믿어버릴 때, 은유가 아닌 사실들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이야기의 무엇을 캐치하고 무엇을 버릴까.

 

100마디의 언어 중 실제로 머리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단어가 1개의 단어라면, 99개의 단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핵심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놓치는가. 1개의 단어와 관계하는 또 다른 100개중 1개의 단어들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얽혀, 실제와 다른 희미한 무언가를 확신하는 지점에서 자아가 지속되는 것일까. 책은 아직도 내게 있다.

 

예약도서가 도착했다는 알림음과, 대기자가 있는 이 책의 반납 기일이라는 문자가 교차한다. 겉표지를 벗겨낸 발가벗은 책 표지엔 아무 감정도 실려있지 않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무한한 세계에서 내가 캐치하는 단어, 내 시각 정보가 뇌 인지 신경의 사슬에 걸려들어 망각이라는 강을 건너기 전까지 어떤 기억 체계에까지 닿아 그것이 다시 기억으로 형성되기까지의 모든 필터에 통과된 그 아주 작디 작은 마이크로 세계에 나 자신 자아 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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