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알라딘 리커버 특별판) -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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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양적인 방대함이나 예술적 완성도,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3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서구 문학의 기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일리아스』는 신과 인간과 운명과 명예가 전쟁 속에서 뒤엉키는 거대한 이야기다.


『일리아스』가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아의 전쟁을 주로 다룬다면, 『오디세이아』는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다룬다. 두 작품은 등장인물과 신화적 세계관이 그대로 이어지고, 『일리아스』의 인물들이 『오디세이아』에서 다시 등장하거나 이야기 속에서 회상되기 때문에 일종의 후속판처럼 읽히기도 한다. 다만 『일리아스』가 피와 창과 방패와 시체가 널려 있는 전쟁터의 이야기라면, 『오디세이아』에는 외눈박이 거인과 마녀와 요정과 괴물과 죽은 자들의 나라와 사람을 홀리는 노래가 등장한다.


우리가 그리스 신화라고 하면 떠올리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 가운데 상당수가 이 작품들 속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일리아스』를 단순히 전쟁 이야기로만 분류할 수는 없다. 이 오래된 작품을 뒤져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속한 시간과 공간의 경계 밖으로 잠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다. 거의 3천 년 전 사람들에게 명예란 무엇이었는지, 가족은 어떤 의미였는지, 인간과 신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일리아스』에는 정작 트로이아 전쟁의 결말이 없다. 트로이아의 목마도 없고 트로이아가 함락되는 장면도 없다. 그 유명한 목마 이야기는 『오디세이아』에서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의 회상과 노래를 통해 뒤늦게 등장한다. 『일리아스』의 중심에 있는 것은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아킬레우스의 분노다. 사건의 발단에는 아가멤논이 전리품으로 차지한 크리세이스가 있었다. 아폴론의 사제를 아빠로 둔 크리세이스가 아빠 찬스로 풀려나자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전리품 브리세이스를 대신 빼앗아 자신의 권력을 과시한다. 격노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서 빠져 함선 근처 막사에 틀어박혀 수금을 타며 노래를 부르고 지낸다.


과연 아킬레우스가 없는 그리스 연합군은 헥토르에게 밀리고, 결국 아가멤논은 사절단을 보내 브리세이스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막대한 보상까지 얹어 화해를 청한다. 그가 삐진 이유는 브리세이스를 품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미 짓밟힌 명예를 되돌릴 수 없어서다. 자신이 싸워 얻은 전리품을 빼앗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세상 그 누구보다 압도적인 전투 능력을 가진 아킬레우스는 납득할 수 없다. 사절단의 제안을 거절한다. 3000년을 이어갈 이야기의 꾀쟁이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 무엇이 부끄러운 일이고 무엇이 자랑스러운 일인지, 무엇 때문에 죽을 수 있고 무엇을 빼앗겼을 때 견딜 수 없는지는 시대가 결정한다.


그동안 그리스군은 죽어나간다. 트로이아의 영웅 헥토르가 그리스 연합군을 몰아붙이는 동안, 신들도 그리스와 트로이아 양편으로 갈라져 서로 다투며 전쟁에 가세한다. 인간을 속이고, 창의 방향을 바꾸고, 안개를 만들고, 마음을 흔든다. 이쯤 되면 트로이아 전쟁은 인간들의 전쟁인지 신들의 대리전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전투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가문과 사연이 붙는다. 누구의 아들이고, 어느 신과 어떤 관계인지, 중간중간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종의 플래시백처럼 기능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과거와 가문을 한참 들려준 다음 그 사람이 창에 찔려 죽는 장면을 보면 죽음의 무게가 달라진다. 전장에서 쓰러지는 것은 이름 없는 병사 한 명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한 가문의 후손이다.


그 복잡한 전쟁의 한가운데에 트로이아의 헥토르가 있다. 성안으로 들어오면 헥토르는 안드로마케의 남편이고 어린 아스티아낙스의 아버지다. 안드로마케는 헥토르에게 전장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이미 자신의 가족을 전쟁으로 잃은 그녀에게 헥토르마저 죽으면 남는 것이 없다. 그런데 완전무장을 한 아버지를 본 어린아들은 투구 위에서 흔들리는 말총 장식을 무서워해 울음을 터뜨린다. 헥토르는 웃으며 투구를 벗어놓고 아이를 안는다. 전쟁터에서는 죽여야 할 적인데 성벽 안에서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와 어린아이를 둔 남편이고 아버지다. 이 장면은 적을 신나게 때려부수고 우리 편이 이기는 전쟁 이야기를 쾌감으로 소비하려는 독자에게 다른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그 헥토르를 결국 죽이는 사람이 아킬레우스다. 아킬레우스는 신적인 혈통을 가진 인간이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멸자다. 그에게는 두 개의 운명이 주어져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오래 살면 이름은 잊힌다. 트로이아에 남아 싸우면 젊어서 죽지만 영원한 명성을 얻는다.그런 아킬레우스를 다시 전쟁터로 끌어낸 것은 국가도, 정의도 아닌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다. 파트로클로스는 단순히 전쟁터에서 만난 동료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의 집에서 함께 지냈고,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빠진 뒤에도 곁에 남아 있던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갑옷을 파트로클로스에게 입혀 전장으로 보낸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는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뒤 헥토르에게 최후의 일격을 받고 죽는다. 아킬레우스는 무너진다. 그리스군이 얼마나 죽어나가든 꿈쩍하지 않던 사람을 다시 전쟁터로 끌어낸 것은 결국 단 한 사람의 죽음이었다.


헥토르를 죽이면 자신의 죽음도 곧 뒤따를 것이라고 바다의 여신인 어머니 테티스가 경고한다. 아킬레우스도 그것을 안다. 그런데도 헥토르를 죽이기로 한다. 그 순간 그는 오래 사는 삶을 포기한 것이다. 그가 전장으로 돌아간 이유는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슬픔과 분노, 복수 때문이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헥토르를 죽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 뒤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모욕한다. 헥토르를 죽인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을 만큼 파트로클로스와의 우정은 그에게 깊고 소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리아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트로이아의 함락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헥토르의 늙은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한밤중에 적진으로 들어와 아킬레우스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의 손에 입을 맞추며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에게 그의 아버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 순간 아킬레우스 역시 고향에 두고 온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한 사람은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울고, 다른 한 사람은 멀리 떨어져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아버지와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운다. 조금 전까지 원수였던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함께 운다. 분노에 사로잡혀 죽은 사람의 몸까지 모욕하던 아킬레우스가 그제야 자신이 죽인 헥토르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준다. 그리고 『일리아스』는 트로이아에서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끝난다. 헥토르의 죽음으로 전세가 바뀌어 트로이아의 패배가 눈앞에 보일 뿐, 정작 그리스군이 트로이아를 함락하는 장면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리아스』의 목적이 ‘그리스가 트로이아를 이겼다’라는 전쟁사를 들려주는 데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쟁을 일으키는 욕망과 명예, 신들의 질투와 인간의 분노, 죽음과 상실, 그리고 원수마저 결국 자신과 똑같이 아들을 잃고 아버지를 잃는 인간이라는 사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도대체 남의 여자 하나 빼앗아 오자고 그리스 전역에서 어떻게 그 많은 군대를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 메넬라우스의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아의 파리스와 떠났다고 그 많은 왕과 장수들이 왜 남의 부부 문제에 자기 목숨까지 걸까? 후대에는 이 전쟁의 실제 배경을 해상 교역로와 상권을 둘러싼 이해관계로 보는 해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신화가 전하는 전쟁의 이유는 헬레네와 명예다.


다른 신화 전승에 따르면 헬레네가 결혼하기 전에는 그리스 전역의 수많은 남자가 그녀에게 청혼했다. 누구를 남편으로 선택하든 나머지 구혼자들이 그 결혼을 인정하고 남편의 권리를 함께 지켜주자는 맹세를 하게 되는데, 그 방안을 제안한 인물로 전승되는 사람이 바로 오디세우스다. 결국 헬레네가 파리스와 트로이아로 떠나자 그 맹세가 작동한다. 당시 전사들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차지한다는 것은 단순한 사랑의 문제가 아니었다. 메넬라우스에게는 소유와 명예의 문제였고, 맹세한 사람들에게는 구속력의 문제였다. 신들 앞에서 이루어진 맹세는 거역하기 어려운 신성한 의무였다. 그래서 그들은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목숨을 건 전투에 뛰어들어야 했을 것이다. 헬레네 한 사람을 되찾겠다고 수없이 많은 젊은이가 죽지만, 정작 전쟁의 발단에 놓인 메넬라우스와 헬레네는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헬레네 자신의 입장은 무엇일까? 헬레네의 처지도 브리세이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메넬라우스에게는 빼앗긴 아내이고, 파리스에게는 차지한 여자이며, 아프로디테에게는 파리스에게 약속한 보상이고, 그리스군에게는 되찾아야 할 명예의 대상이 된다. 아프로디테의 개입은 분명하지만 처음 파리스를 따라 나설 때 헬레네 자신의 자유의지가 어디까지였는지는 모호하다. 브리세이스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고 헬레네는 신이 남자에게 약속한 보상이다.


두 사람 모두 남성들의 명예와 욕망을 움직이는 중심에 있지만 정작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서는 비켜나 있다. 여성은 전쟁을 움직이는 이유가 되지만 그들의 욕망이나 의사가 무엇이었는지는 그 거대한 명예의 싸움 뒤로 밀려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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