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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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몇 개 읽었는데, 영화화되었기에 가장 유명한 소설인 <속죄>는 못읽었지만, <넛셀>과 <솔라>로 작가의 저력을 인정하고 있던 바, 이 소설은 먼저 읽은 두 개의 소설보다 더 특별하고 감동적이었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여러 화려한 추천사도 이 책을 읽을 때 일었던 가슴 서늘한 감동과 회환, 그리고 지적인 여정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당연히 리뷰로도 불가능할 것 같다.  (왜 노벨상 후보에 오르지 않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가정문제 전문 법관으로 성공한 주인공은 자기 실현은 물론 사회적 성공도 이루었지만, 중년의 어느 날 남편이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이혼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결혼생활은 유지하고 싶은데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단다. 이제는 오누이가 된 와이프의 허락 하에. 이런 엉뚱하고 기발한 말이 농담이어도 쫓겨날 판국인데, 그는 피오나 판사는 물론 독자까지 설득을 하려 든다. 


중년, 혹은 노년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가정이라고 해봐야 둘 밖에 없는 고적한 공간에 찾아온 위기. 그것보다 더 매혹적인 것은 피오나 판사가 다루고 있는 법적 판결이다. 가정법의 테두리에서 생겨나는 법적 판결은 양육과 이혼 같은 사사로운 사건을 다룰 것 같지만, 상급 법원에서 다루는 일은 사회 전체의 윤리와 지적 통찰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촛불정국의 막을 내렸던 당시, 이정미 헌법 재판관의 발표에 눈물 젖었던 건 건 촛불로 하나 된 온국민의 마음을 명확하게 적확하고 확실한 언어로 재단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기본법 헌법이 대지처럼 인권의 근본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회가 썩었어도, 기본법은 우리 편이었다는 믿음, 그리하여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그것의 마지막 확인. 주인공이 하는 일은 바로 이런 기본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하는 검토하고 판단하는 일이다. 


법적 성인인 시점을 몇개월 앞둔 아이가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고 있다. 부모 역시 종교적 이유로 아이의 결정을 지지한다. 의사들은 이런 무식한 부모들 때문에 살릴 수 있는 아이의 생명을 이대로 놓을 수 없어서, 환자의 동의 없이 수혈을 허락받는 재판을 신청한다.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 없다. 아이는 이미 숨쉬기 힘든 상태지만, 똑똑하고 자기 의사가 자신의 신념에 기반하고 있음을 표현할 줄 알고, 그 신념에 대한 논리적 종교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었다. 안타까운 시간들. 이토록 장래가 창창한 아이가 단지 종교적 커뮤니티가 주장하는 낡은 성경구절의 있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에 의존해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는 인간이 최고 가치로 여기는 생명의 존중함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 소송에서 극복해야 할 요소는 차고 넘쳤다. 가치의 충돌에서 오는 상호간의 불통, 명시된 법적 자기 신체 결정권을 다시 법적 판단에 근거하여 무효화 하는 전략, 하지만 이 현명한 법관은 실로 오랜만에, 그러니까 영국 역사 소송 박물관에 전시될만한 행동을 한다. 아이를 방문한 것이다. 한 시간 남짓 아이와 솔직 담백한 대화를 나누고 나와, 드디어 결정문을 낭독한다. 그 판결문 만으로도 이 책은 소유할 가치가 있다. 


한 생명이 굽이치는 인생 행로를 걸을 때마다 만나는 터닝 포인트들이 모두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던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따스하게 품은 (종교적) 커뮤니티의 철학이라면 그 커뮤니티 외적인 삶은 마치 우리에게 죽음 건너의 세계처럼 어둡고 불확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그토록 확신하는 '순교자적 죽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게 무슨 의미일까.  판사는 고민한다. 가족에게 종교는 신산한 삶에 희망을 준 유일한 빛이자 안식이었으므로, 종교를 비난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는 이미 17세 성인에 더 가까운 나이이므로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성인의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성숙된 성인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결정할 수 있는 아이이므로..


한편 가정에서는, 남편을 붙들고 싶은 마음이 바닥에서부터 차고 올라오지만, 이성을 잃지 않는 판사는, 남편이 짐을 싸서 나가는 걸 지켜보고 열쇠를 바꾼다. 걱정했던 외로움보다 어떤 해방감 같은것도 느낀다. 하지만 목숨을 구한 아이의 변화된 모습은 피오나 판사를 새로운 국면에 위치시킨다. 아이가 판사를 스토킹하며, 그 집에서 살고 싶다고 헀을 때, 나는 피오나가 그 세상에 처음 나온 듯 종교 밖의 세상을, 아이를, 새장을 나온 새처럼 품어서 아들처럼 돌보고 살면 좋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어떤 독자들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작가도 그런 의도에서 피오나의 아이없는 삶을 하나의 실패로 규정짓지 않았던가. 


중년의 나이에 어린 아이에게서 스쳤던 순간적 욕망과 작은 행동은, 남편이 자신에게 요구했던 '뜨거운 연애'와 근본적인 면에서 어떻게 다를까. 중편적인 분량이지만 압축된 분량이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생각. 너무나도 충격적인 결말. 비통한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이 판사에게 돌 던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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