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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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는 거의 전 분야의 과학을 비롯하여 역사와 인류학을 총망라하는 여러 줄기의 학문을 서로 연결시켜 총체적으로 거시적으로 역사와 우주를 바라보는 학문이다. 시작은 늘 빅뱅부터다. 학문과 학문 사이에 존재하는 갭과 간극을 좁혀, 서로 연결된 관점에서 해당 학문들의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전체적으로 맥락에서 바라본다.  잴 수도 없고, 어림해서 숫자로 표기해도 그 개념조차 아득해, 억겁인 시간과 공간은 앞으로도 뒤로도 나와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순간적이고 찰라적인 존재로 만든다. 빅히스토리를 읽을 때, 안하던 사색의 틈으로 빠지게 되는 이유이다. 


우주는 넓고, 시간 또한 광할하여 빅히스토리가 다루는 것 역시 우주의 먼지만큼이다. 각각의 학문의 영역에서 아주 간략하게 빅히스토리를 바라볼 때, 당연히 각각의 디테일이 소홀히 다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빅히스토리의 창시자라 일컷는 데이비드 크리스천 역시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각기 다른 영역의 학문을 빅히스토리적 관점에서 볼 때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국내외 과학 저술 분야중 가장 잘 나가는 분야는 (내 생각에) 생명공학과 두뇌 과학 정도라고 생각된다. 간혹 우주나 물리 등을 알기 쉽게 저술한 책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지질학이라면 ? 글쎄 누가 돌덩어리에 그리 관심이 많겠는가. 내가 학교다닐 때는 지구과학이라고 불리던 과목과 연결되기 때문인지, 선뜻 지질학 관련 대중 과학서가 나온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생길 것 같지가 않다.  그게 그거 같은 돌멩이들의 이름과, 외우기도 어려운 지질연대표에 등장하는 트라이아스가니 실루리아기니 데본기니 하는 부르기도 어려운 이름과 각 시대들의 특징들이 그닥 흥미를 일으키지 않았던 기억 때문인가.


그런 인식의 지질학이 빅히스토리와 만나니 급 흥미가 생긴다. (이 책이 지질학 책은 아니며, 빅히스토리를 다룬다.) 이제껏 내가 접한 보잘것 없는 빅히스토리 독서 목록에서는 주목하지 않았던 지구적 차원의 빅히스토리가 인류 문명과 역사의 맥락과 함께 해석되어 있는 점이 흥미로왔다. 45억년의 지구적 관점의 시간은 100만년이 기본 단위이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시기는 고작 십여만년 전이라니 지구 역사에 있어서는 기본 시간 단위로 표기 불가능할 만큼 짧은 순간에 번성했을 뿐이고, 보노보 침팬치와 같은 유인원과의 분화도 겨우 5~6백만년  전이니, 우주 속 지구가 지금이 아닌 어느 다른 단위의 시간을 흐를 때 쯤이면 전혀 다른 종으로 바뀌어 있거나 사라져 있을 것을 생각하면 인생무상이 실감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맨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정말 알지 못한다.



지구는 특별한 행성이다. 지구가 어떻게 생명을 품게 되었을까. 지구 탄생 당시 태양계의  대부분이 수소와 적당햔 양의 헬륨, 그리고 극소량의 다른 모든 원소들의 배합이었던 것에 반해, 지구에는 산소, 마그네슘, 규소, 철 이 네 원소가 월등히 많고 나머지는 우주의 원소 구성에서 우위를 점하는 수소와 헬륨을 포함해서 모든 다른 원소는 극히 미량만 존재한다. 즉, ‘지구는 태양계에서 희귀한 원소들 중 몇 가지를 선별적으로 축적했다(p76)’. 그리고 그 물질들이 바로 지구 역사상 한 줌도 안되는 기간 동안 인류의 진화를 촉진하고 문명을 탄생시키고 우주를 이해하는 능력을 탄생시킨 것이다.


저자는 인간을 구분하는 많은 특징 중 도구, 인공물질, 그리고 컴퓨터 세 가지를 꼽는다. 도구는 자연적인 손과 몸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게 해주고, 인공물질은 자연물질로는 불가능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컴퓨터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석기, 유리, 컴퓨터 칩 세 가지를 예로 들며 각각이 지구가 가장 선호한 네 가지 물질 중 하나인 규소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규소는 컴퓨터 칩을 만들고, 유리를 만들고, 또 인간의 초기 도구인 석기 도구들을 만든다.  날카로운 석기 도구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물질 중 하나가 바로 규질암이인데, 지구는 규소를 축적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규질암이 있었기에 석기 시대의 도구가 가능했고, 그로 인해 촉발된 도구의 사용이 인간의 뇌와 지성이 발달을 촉진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는 철과 마그네슘과 같은 주요 원소와 우리 행성에 있는 소량의 모든 원소들에서 이산화탄소를 분리해내는 생물학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알고 있다.


생명의 탄생 역시, 다른(other) 행성과는 다른(different) 지구의 조건과 작용으로 가능해졌다는 관점을 유지한다. 진정세균과 고세균은 우리와 이들 세균이 서로 다른 것 만큼이나 다른데,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합성을 하는 것도 있지만, 철, 질소, 황에서 뽑아내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살아가는 미생물도 있다. 열수구에서 탄생한 초기 생명체가 광합성 대신 철, 질소, 황 등을 먹고 살았다. 그것들에게 산소는 치명적인 독이었기에 광합성의 부산물인 산소가 많아지자, 생태계가 교란되었다.  이것은 정말로 놀랄만하고 흥미로운 관점이다. 오늘날 산소부족과 이산화탄소 배출과 관련된 환경문제적 관점에서 볼 때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구적 관점의 시간 유닛으로 볼 때는 그렇다. 결국 ‘우리는 산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한 미생물의 후손이다(206)’.  산소는 또한 산업 문명이 크게 의존하는 엄청난 양의 철광석 만들어내게도 했다.


드문 지구 가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동물로서 공존하기까지 30억 년이 함께 걸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확률에 당첨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30억년동안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다세포 동물로의 진화가 30억년만에 일어났다는 것은,  생명이 필연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단계가 다세포 동물이 아닐 거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고, 아울러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단세포 생물일 가능성이 많다.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 역시 드문 가설이라면 산소의 발생 역시 지구에만 있는 특징이 될 거 같은데, 그렇다면 지구인보다 더 진보된 과학 문명을 이룩하여 지구로 여행한 외계인이 있다 하더라도,  산소호흡을 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지구가 무력으로 정복하고자 할 만큼 쓸모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까마득한 산소 호흡 조상이 다세로포 진화한 후, 생명체는 다양한 형태의 몸으로 진화했는데, 가장 오래된 형태는 해면동물, 산호초 , 해파리와 같은 방사대칭을 띄고, 우리 선조들은 이런 단순한 형태에서 다양하게 분화되어 좌우대칭을 몸이 되었다. 좌우대칭의 얼굴과 몸은 ‘6억년 전에 갈라져 나와 지금까지 이어져온 몸의 역사적 기록을 보고 있는 셈이다(p210)’.


지질학자가 쓴 빅히스토리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지각의 변화에 대한 내용이다. 100만년 단위의 시간 속에서 찰라에 불과한 인류의 기록 역사 속에서 지구는 당연히 정지된 것으로 보이지만, 대륙 이동은 계속되고 있는데, 끊임없이 판과 판이 서로 밀어 붙이고 멀어지고  찌그러뜨리고 새로 생성하는 동안 해양 지각이 생기고 없어지고 산맥이 형성되고 퇴적되는 일련의 작용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교과서처럼 딱딱하지만, 1444년 사하라 사막의 남쪽 경계가 되는 녹색 곶인 카보베르데에 도착한, 항해자 엔히크 왕자에게 지원을 받은 포루투갈의 탐험가들은 ‘지금은 적도 근처이지만 4억 5천만년 전인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에는 남극점이 었던 지점에 있었다(p234)’. 1960년대 초 오르도비스기 빙하의 잔해를 알제리 사하라 사막의 중심부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던 대륙이 움직일 리가 없다고 믿던 시기였다. ‘빙하의 잔해는 아프리카가 속해 있던 초대륙 곤드와나가 얼어붙은 남극점을 지나 이동하던 시기에 대한 지구의 기억이다.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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