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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맛있을까 - 옥스퍼드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의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음식의 과학
찰스 스펜스 지음, 윤신영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4월
평점 :
가스트로피직스Gastrophysics 는 미식학과 물리학 Gastronomy와 physics를 합성한 단어로 음식의 맛을 뇌과학과 심리학 등등의 과학과 융합하여 연구하는 새로운 분야로 책의 원제이디도 하다.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맛을 느끼는 조건은 뭐니뭐니해도 배고플 때 먹는 거겠지만 그런 기본적인 조건 말고도 맛 이외의 감각과 함께 결합하면서 더욱 풍성한 맛과 맛에 대한 기억을 창출해낼 수 있다.
저자의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어떤 그릇에 먹느냐 혹은 어떤 소리가 나느냐와 같은 것들을 연구한다. 요리 방식이나 재료와 같은 맛을 느끼게 하는 조건이 아닌 맛을 느끼는데 영향을 끼치는 외부적인 요소들 말이다. 먹는 일는 모든 인간에게 매일 하루에도 여러번씩 일어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다. 그 욕망은 어떠한 형태로든 해소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먹는 행동은 대개 만시간의 전문가 법칙에 필요한 수행 시간을 만족시켰을 것이며 따라서 누구든 먹는 것에 있어서는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그 전문성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개인적 기호가 기준이어서 자신만을 충족시킨다. 자기 자신을 위한 전문가인 셈이다. 내가 맛있게 느꼈다고 해서 남들도 똑같이 느끼리라는 법이 없기에 이런 학문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저자가 한국에 왔을 때 미슐랭 별을 받은 냉면집에 함께 갔다가 긴장했다단 이야기를 듣고 일단 서양과 동양의 외식문화의 차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 언급하고 저자들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영국의 팻덕 레스토랑과 스페인의 무가리츠와 엘 셀러 드 칸 로카, 스웨덴 교외의 페비켄 등의 레스토랑은 우리 같은 일반인은 꿈도 꿔보지 못할 만큼 대단히 비싼 고급 레스토랑이고 평양 냉면집은 미슐랜 스타를 받았다고는 하나 메뉴 자체가 누구든 들어가볼 수 있는 수준의 가격이 예상되는 식당 아닌가. 사실 식당과 레스토랑은 다르고 밥 한끼 제공하기 위한 일반음식점에서 맛과 분위기보다 더 많은 걸 기대한다는 게 무리다.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음식과 함께 제공하는 분위기, 소리, 식기의 질감과 색, 서비스, 음악, 냄새 등등이 얼마나 맛에 영향을 느끼느냐를 연구한 내용들이다. 이와 곁들여 그런 결과들을 실제로 구현한 실제 레스토랑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밥을 떠먹여준다는 레스토랑에서부터 연극 공연인지 레스토랑인지 구분이 갈 수 없을 만큼 식문화가 하나의 체험 문화로 바뀌고 있는 추세도 엿볼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 맛을 풍성하게 느끼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감각을 이용하는 것이다. 시각적 효과는 일반적인 레스토랑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흔히 쓰는 발법이다. 예쁜 그릇에 맛있어 보이게 플레이팅을 하고 깔끔한 식탁보릉 씌우고 무겁고 좋은 수저 세트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같은 음식이라도 무거운 식기와 커트러리 세트에 담으면 맛있어 보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분식집이나 저렴한 식당에서 쓰는 플라스틱 식기가 주방의 서빙과 설겆이 등 노동과 가격까지 줄여주는 데에는 고객에게 같은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덜 맛있게 느끼게 만드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 맛에 들이는 정성 만큼 식기류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메뉴에 붙인 이름도 맛의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심해에서 잡힌 파타고니아 이빨고기였을 때 팔리지 않던 생선의 이름을 칠레산 농어로 바꾸자 인기 메뉴가 되었다. 파스타 샐러드를 파스타를 곁들인 샐러드로 이름만 바꿔도 건강요리로 변신한다.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가짜 농장의 이름과 가짜 생산자의 이름만 붙어도 소비자는 그 음식의 가치을 더 높게 평가한다.이름과 라벨에서 브랜드와 가격까지 음식을 먹기 전에 접하는 각종 정보는 뇌의 특정 영역을 자극해 맛을 다르게 느끼게 한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우리는 모두 다른 미각의 세계에 살고 있다. 특정 분자를 후각적으로 느끼는 유전적 변이의 다양성으로 인해, 어떤 냄새에는 민감하고 어떤 냄새는 후맹인 사람들의 여러 조합으로 구성된 인간 사회는 그 유전적 변이의 다양성 만큼이나 같은 음식을 다르게 느낀다. 고수에 대한 호불호에서 특히 큰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어떤 고수에서 감귤처럼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하는 사람과 절대로 먹고는 싶지 않은 비누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극단적 차이가 유전적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맛에 대해서는 특히 쓴 맛에 민감한 집단이 있는데 진화의 역사에서 독성을 가려내기 위해 그런 쓴 맛에 대한 민감도를 증가시켰을 거라는 견해다.
또한 미뢰는 아주 낮은 온도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찬 청량음료를 실온에 두었다가 마시면 몸서리치게 달게 느껴진다고. 식품 회사들은 단맛을 내기 위해 바닐라 향을 첨가한다. 이제 아이스 커피에 그토록 많은 양의 설탕을 넣는 이유를 알겠다.
그닥 집중이 요구되는 책은 아니었으나 막상 리뷰를 쓰려니 뭐라도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어서 아쉽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거나 할 계획이라면 필수로 읽기를 권하다. 일반인에게는 매일 먹는 먹거리의 맛을 먹거리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요소로 느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